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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25)귀농인 최한솔 님의 ‘날마다 웃음꽃’
최한솔 귀농인

 

 얼굴에 웃음이 짙게 묻어나는 것일까. 사람들이 나를 보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묻는다. 
어떤 분은 애인이 생겼냐고 묻는다. 손사래 치며 아니라고 해도 언제 결혼할 것인지 미루어 짐작해 묻기도 한다. 갓 서른을 넘긴 청춘이니 그분들 눈에는 여자친구나 애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 모양이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믿지 않으려고 하신다. 그분들 기대나 바람, 추측대로 애인 때문에 웃음꽃이 피면 좋으련만 그건 아니다.
 
 내가 날마다 웃는 것은 가족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담양으로 귀농하기 전까지 나는 비교적 오랫동안 혼자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도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했고, 대학 입학 후에는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떨어져 살아야 했다.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의무복무가 아니 장기근무를 선택 했기에 가족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외로웠다. 하지만 외로움을 달래기보다는 초급 간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군대생활을 오래하고 싶었지만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 소재의 모 기계화사단에 몸담고 있었는데 조만간 통폐합된다고들 했다. 우리 부대로의 통합이 아닌, 다른 부대로 우리 부대가 흡수된다는 것이었다. 계속 군대에 남아있어야 하는지 고민했고 결국 전역을 택했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동안 반추해본 군대생활은 외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환경이 바뀐다 해도 그런 삶에 큰 변화가 없을 듯했다. 내 성격 때문인지도 몰랐다.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고 외로움을 달랠 성격이 아니라 미래가 암담했다. 
  

버섯 재배사

전역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보았으나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일자리를 찾아 기를 썼지만 자리가 없었다. 마냥 놀 수는 없어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군대에 남을 걸 하는 후회가 저절로 떠올랐다. 아르바이트로 평생 먹고 살 수는 없어 귀농을 결심했다.
어머니께서 담양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셨는데 어머니를 도와줄 겸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귀농길에 올랐다. 농사가 힘들다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머니와 함께 일한다는 자체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떨어져 살면서 겪었던 외로운 나날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니를 도와 표고버섯 재배에 나섰다. 그때가 2020년 3월이었다. 
 
 버섯에 문외한이라 어머니가 시킨대로 했다. 7시 반쯤에 일을 시작해 6시까지 하고 마무리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때에 따라 더 늦게까지 하기도 했다. 수확한 버섯을 공판장까지 날랐다. 공판장에서 만난 분들에게 버섯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기술을 습득했다. 나는 그 시간이 즐겁고 기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판장까지 가져가지 않는다. 농장을 순회하면서 공판장으로 가져가는 차가 있기 때문이다.
공판장으로 가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버섯을 직접 돌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버섯을 보는 눈도 높아졌다. 손길이 많이 갈수록 품질이 좋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품질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아직 버섯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확신이 섰다.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로 이어지는 게 농사라는 것도 정절하게 느꼈다.
 

수확한 표고버섯

가족과 함께 일하니 매일 얼굴에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다. 가족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도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날이 많다. 나 때문만은 아니다. 여동생까지 함께 일하고 있으니 어머니는 마냥 행복해 하신다. 소득을 떠나서 가족과 함께 같은 일을 한다는 자체에 크게 흡족해 하신다.
 표고버섯은 나에게 아니 우리 가족에게 터닝 포인트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귀농이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정년이 없고, 마음 편하고, 시간 조절을 융통성 있게 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군대보다는 몇 배는 나은 듯하다. 그래서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어린 모양이다.
여동생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귀농을 결심했다. 아직 팔팔한 청춘이 하우스 안에서 주유장천 시간을 보내면서도 힘든 기색이 없다. 오히려 일을 즐긴다. 확실한 귀농인이 되려고 청년창업농까지 준비하고 있다. 동생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재배사 안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 가기를 바란다. 날마다 웃음꽃이 만발하기를 바란다. 애인이 생겼냐고, 언제 날 잡을 거냐고 농담 비슷한 말을 들어도 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하기를 바란다./강성오 전문기자

※최한솔 귀농인은 91년생으로 금성면 덕성시목길로 귀농했다.
(연락처 : 010-4207-4414)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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