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과 고통의 연단

안녕하십니까? 엊그제 춘분이 지났습니다. 날씨가 한결 포근해졌습니다.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산수유, 매화, 살구꽃 등이 한꺼번에 피더니 벌써 목련도 지고 벗꽃이 꽃망울을 맺었습니다. 철이 지난 감은 있지만 오늘은 저의 시 <매화 곁에서>라는 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바람 치는 날이면 
저물녘이면 
나무는 제 가지를 윙윙 울리어 
얼어붙는 꽃자리를 깨우던 것이 

눈 내리는 날이면 
새벽녘이면 
떡가루 붓듯하는 눈발을 입고 
순은의 눈꽃송이 피우던 것이 

잉걸처럼 이글거리는 
마음 날에는 
참새 외톨 날아 앉는 그 무게로도 
가지는 그렇게 휘이더니만 

쓸쓸하고 그립고 외롭기로야 
그 무엇보다 한 뼘쯤은 더 높아서는 

대한 지나 장독 깨는 추위를 밀고 
가까스로 터뜨린 
연분홍 몇 점! 

네가 없어 홀로 보는 
그 꽃 속에서 
오늘은 한 시인이 태어나느니 

정녕코 씩씩하긴 씩씩하여서 
내 사랑도 향기 넘쳐 
네게 닿으리
                                                - 고재종, 「매화 곁에서」 

  세상에 고통의 연단 없이 꿈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신약성경 로마서에 보면 믿음의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인 요셉, 다니엘, 여호수아 등은 눈에 띄는 허물을 발견할 수 없지요. 허물없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성경은 그들의 허물에 대해 침묵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광야의 연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노예와 감옥이라는 광야를 통과했고, 다니엘은 풀무불과 사자굴의 위협을 통과했으며, 여호수아는 오랜 기다림의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우수 경칩도 전에 장독 깨는 추위를 깨고 연분홍 꽃 몇 점을 밀어 올리는 매화도 겨울의 삭풍과 한설을 이겨냈습니다. 삭풍 치는 밤마다 나무는 제 가지를 윙윙 울리어 얼어붙는 꽃자리를 끝없이 깨웠습니다. 한설 치는 새벽녘이면 떡가루 붓듯 하는 눈발을 순은의 눈꽃송이로 바꾸었습니다. 쓸쓸하고 그립고 외로운 마음을 그 우듬지로 한 뼘쯤 밀어 올리며 나무는 끝내 눈 속에서도 연분홍을 터뜨렸습니다.
  
  광야의 연단이 없는 인생은 약합니다. 광야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넘어졌다가 일어설 힘이 없습니다. 광야가 없으면 광야의 시간 이상으로 그의 삶에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많은 선각자들이 바로 삶의 광야에서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고 삶의 대전환을 이루어 위대한 생을 창조하게 됩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대학 시스템에 의문을 품고 박사학위 공부를 그만둔 뒤 미국의 경제 대공황시기에 ‘고학력 백수’로 전락했지만, 지금까지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마음껏 읽는 ‘전작독서’로 세계적인 신화학자가 됩니다. 빅터 프랭클린은 뛰어난 유대계 신경정신과 의사였지만 1944년 10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고른 수용소복 호주머니에서 유대교 기도문을 발견 한 뒤 그것을 신의 계시로 인식한 뒤 끝까지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써서는 나치의 실상을 폭로하고 세계적인 신경정신과 의사가 됩니다. 

폴 고갱은 증권회사 선물 중개인으로 성공한 직장인이었지만, 1882년 프랑스 주식 대폭락과 고용불안 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결국 타이트로 이주한 뒤 세계적인 화가 대열에 합류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연이은 소설의 성공으로 명성을 구가했지만 조국 독일의 전쟁도발에 비판적 글을 썼다가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  찍힙니다. 그 때문에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지만 꿈속 체험을 바탕으로 『데미안』을 집필하여서 세계적인 소설가가 됩니다.

자연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 분석심리학 창시자 카를 융, 사회개혁가이자 정치가인 마하트마 간디, 가치 투자가이자 최고 경영자인 워런 버핏,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 등도 삶의 광야를 거치며 일생일대의 삶의 대전환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인간들이 되었습니다.

  매화는 그 삭풍한설을 온몸으로 견뎌냈기에 미처 봄이 도착하기 전 그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풍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향기에 취해 사람들은 벌써 봄마중 나가는 데 들떠 있습니다. 이 시에서 ‘꽃자리’는 꽃이 달려 있다가 떨어진 자리를 가리킵니다. 비슷한 음의 ‘꽃자루’는 직접 꽃을 붙이고 있는 짧은 자루를 말하지요. 또 ‘꽃부리’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 이는 꽃잎 전체를 이르는 말로 한자어로는 화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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