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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26)귀농인 김옥빈 님의 ‘약방의 감초’
김옥빈 귀농인

  할 일이 없으면, 돈도 더 들어가고 생활도 방탕해지기 쉽다. 의지가 어지간히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그렇다. 나 역시 그런 축에 속했다. 백수와 같은 삶이었다. 눈을 뜨거나 감기 전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이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무료하게 있을 수 없어 누구를 만나서 술 한 잔 할 것인지 저절로 머리를 굴리곤 했다. 그렇게까지 머리를 쥐어짤 일도 없었다. 빈둥거리는 또래가 많았으니까. 마음이야 누구 못지않은 청춘이지만 현실에선 우리 또래의 일손을 필요로 한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쉽게 만남이 이루어지곤 했다.
  만나면 생산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없었다. 과거에 한 가락 했던 경험을 과장스럽게 지껄이거나 남에게 들은 무용담을 자기가 한 것처럼 각색한다거나 자녀 이야기, 손자 손녀 이야기 등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 자리에서야 희희낙락했지만 뒤돌아서면 후회가 그렇게 크게 남을 수 없었다. 또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구나. 내일은 만나지 말아야지. 헤어진 직후나, 늦은 밤까지 후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그들과 어울리곤 했다. 
  
 끊을 필요는 없지만 줄일 필요는 있었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너무 자주 어울린 탓에 과감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 하나가 있는데, 딸에게 짐도 되기 싫었다. 딸은 번듯한 직장을 잡아 근무하고 있으니 부모가 짐만 되지 않으면 딸의 장래는 걱정이 없지 싶었다. 백수 삶도 싫고, 딸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이었다. 일이 없으니 빈둥거리는 식간이 많을 수밖에 없고, 돌아서는 발길이 후회로 비척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는다 해도 할 일이 없으면 생활 패턴에 변화가 없을 게 분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비생산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일한 수단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어떤 일이 나에게 가장 맞을까. 적절한 일을 찾으려고 내 삶을 돌이켜보았다.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광주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조경 면허를 가지고 조경업계에서 반 평생을 보내다시피 했다. 세상이 그렇듯 조경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제 살 깎아먹기까지도 서슴지 않은 모습에 더 이상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미련이 남았지만 과감히 정리했다.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고 매형이 귀농을 권유했다. 조경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니 농사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는 말로 설득했다. 할 일을 찾고 있던 참에 들은 말이니 혹, 했다. 농사를 지은 경험은 없었지만 매형 말처럼 농사가 두렵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귀농을 결심했다. 담양으로 귀농한 것은 전적으로 매형의 충고가 컸다. 매형은 담양이 고향인데 매형 마을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여러 모로 힘을 써 주셨다.
  
 감초를 재배한 것도 매형 때문이었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 고민할 때 매형이 감초를 권유했다. 교직자인 매형이 농사 정보를 나보다 훤히 꿰고 계셨다. 매형도 퇴직 후에 귀농이나 귀촌할 예정으로 미리 알아본 탓이었다. 매형의 권유에 감초를 심기로 하고 감초 생산지를 찾아다니며 견학을 했다. 감초를 재배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은 농장에는 갈 수 없지만, 내 귀에 들어오면 어쨌든 다녀와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면서 견학한 끝에 시험재배에 들어갔다. 담양으로 본격적으로 귀농하기 전에 시험재배를 하여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었다. 2년 간 시험재배를 한 후 자신감이 붙어 담양으로 터전을 옮겼다. 2019년 1월에 담양으로 터전을 옮겼고, 그해 800평 규모의 하우스에 감초를 심었다. 
  감초 농사는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800평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하루가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몸은 늘 피곤에 절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방탕한 일을 청산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딸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확신 때문에, 마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누구를 만나 시간을 때울지 고민하는 것도 없이 오직 일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덩달아 건강까지 좋아졌다. 

감초 재배

짧은 기간이지만 감초 재배에 탄력이 붙었다. 앞으로 규모를 더 늘릴 생각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거울 삼아 내년에는 파종을 서두르려 한다. 5월과 6월에 파종한 감초에서 죽은 게 많이 나왔다. 제때 파종해야 손실이 적은데 나는 그 적절한 시기를 4월로 보고 있다. 내년 4월이면 어느 정도나 재배 면적이 늘어날지 가늠할 수 없다. 농지 구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규모를 꾸준히 늘려갈 것이다. 매형이 나를 귀농으로 이끌었으니, 매형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해주고도 싶다. 언젠가는 매형도 귀농일기를 쓰기를 바란다. 매형의 일기에는 성공 스토리가 묘사되기를 바란다. 매형에게 약방의 감초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김옥빈 귀농인은 2019년 봉산면 독서골 마을로 귀농했다.(연락처 : 010-3898-1658) /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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