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학의 정립이 필요할 때

어느 지역을 알고자 할때 요즘의 접근 방식은 인터넷으로 클릭하면 된다. 
나이든 이들은 네이버에, 젊은 층은 구글에서 유투브로 옮겨 탔다. 좀 더 체계적인 앎을 원하는 이들은 서적을 뒤적인다. 운이 좋아 검색창에 나온 정보들이 정확하고 고급진 것들로 채워진 경우도 있지만 주마간산 격으로 겉만 훑고 지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정보의 검색과 이를 활용한 기획서나 보고서가 쭉정이로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과업은 했기에 그냥 넘어간다.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표피만으로 어느 공간이나 지역을 재단하게 되는 버릇이 생겨나면 진짜 고갱이는 소멸되고 만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라는 아프리카에서 온 말이 이렇듯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최근 책방에 이러 저런 책들이 입주해 오고 있다. 
서울에서 경기에서 춘천에서 화순에서 과일 상자에 꽁꽁 묶어서 자신을 채워주었던 지역학 관련 책들이 속속 당도한다. 책이 접혀진 부분에서 밑줄에서 찢어져 나간 부분에서 나는 이 책을 보았던 이들의 마음 한편을 읽어낸다. 더불어 그가 살아오며 세상에 던졌던 언어들을 더듬어 본다. 그때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던 것들의 연유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느낄때 나는 시공을 넘어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산천이 사람을 키운다고 하는데 그 키워온 양식은 바로 전승의 기술과 언어와 문장의 기록이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에서 고향 코모리를 나가 도시에서 일하던 우유타가 다시 돌아와 농삿일을 하는 게 대견한 이치코가 질문을 던진다. “넌 잘나갔잖아. 그래서 도시에서 취직도 하고, 그런데 왜 돌아왔어”, “도시에서는 언어가 달라. 사투리 같은 것 말고, 자신의 몸으로 직접 해보며 그중에서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을 표현하지 않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 하고 타인이 만든 것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기만 하면서도 잘난 척 하지. 하지만 코모리 사람들은 달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책임지며 말하고 있잖아. 여길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 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 오셨구나 라고” 이렇게 말하는 구절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살아온 내력이 구성한 몸의 기술과 언어의 기술이 갖는 힘, 그 힘을 알아버린 청년이 있는 코모리는 결코 지방소멸이나 세대갈등 같은 것은 없을 것 같은 희망까지.

앎과 놂과 삶이 공생하는 여느 지역이건 누대로 살아온 이력들이 내려온다. 그것을 받아서 책자안에 담아온 것이 향토사이다. 담양 향토사의 최전방에는 돌아가신 이해섭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그 후방에는 몇몇의 애제자들이 계셨다. 하지만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큼직한 어려움이 따랐다. 가장 우선은 누가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원하는가에 따른 것이다. 행정은 그것이 문화원의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문화원이 가진 업무에는 한계가 지워진다. 어르신 문화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이 이미 재갈이 물려진 상황에서 지역학에 천착하라는 것은 다른 사업을 내리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가장 적격한 곳은 문화원에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거나 아니면 담양군문화재단에 새 업무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도시를 향한 담양군의 노정이 문화특화지역 사업이나 폐산업시설 문화공간화 사업 등을 통해 이미 오래전 발동이 걸린 상황이었다. 작년의 도전이 그 첫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전국 최초의 인문학도시가 되는 순간부터 담양의 첫삽은 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반이 되어야 할 담양만의 고유성과 가치를 담은 도서관과 연구인력이 미비한 현실이다. 토대가 구축되어야 훗날을 도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선뜻 담양학의 정립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일에 무감한 척 한다. 아무래도 먼저 나섰다가는 모든 짐을 덤터기로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문화도시와 관련한 전략중에서 지역학 분야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공론장을 펼쳐내는 기법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정 문화도시가 전국에 지정되도록 지역문화진흥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30개 도시에 그칠지 아니면 확산될지는 지역으로부터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문화부의 차례가 남아있다. 그렇기에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담양이 지닌 자원들을 다시 하나씩 호명하고 엮어내고 활용하며, 그에 상응하는 인력과 커뮤니티를 발굴하고 응원하는 것이 화급한 실정이다. 

도시와 관광에 종속되어 변화에 민감한 담양이었지만, 느릿하면서도 여유롭게, 하지만 강단지게 살아왔던 선조들의 지혜를 법고창신의 마음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시금석은 담양학의 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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