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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지역밀착형 기사/귀농일기(28)귀농인 노진원 님의 ‘표고버섯, 그리고 알파’

 

 돌이켜보니 귀농을 한 건 운명인지 싶다. 
농촌 출신이라 농사가 낯설지 않지만 예전에는 귀농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장흥군 관산면이 고향인 내가 아무 연고도 없는 담양에 터를 잡으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담양에서의 표고버섯 재배는 정말로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용인대학교를 졸업하고 함평에서 체육교사로 4년 정도 근무했다.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근무한 것이었다. 남들은 공무원이라고 부러운 시선을 보내곤 했지만 나는 심한 회의감이 들었다. 공무원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사표를 내고 용인으로 올라갔다. 
용인에서 선배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선배 밑에서 도장 운영을 배워 용인에다 태권도 도장을 차렸다. 3년 정도 운영하고 나니 운영에 자신이 생겼다. 고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어 광주로 내려와 도장을 차렸다. 처음에는 100평짜리에서 시작을 했는데 입소문이 나서 관원이 급속히 늘어났다. 100평 규모의 도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어 180평짜리 도장을 하나 더 운영했다. 
  
 체육교사나 태권도 관장이나 가르치는 건 비슷하지만 얽매인 신분이 아니라는 점이 좋아 열과 성을 다해 지도했다. 관원이 늘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관원들의 만족도도 높고, 학부모들의 칭찬도 자자해서 내심 공무원을 포기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괜히 사표 썼다는 후회도 가끔 생겼다.
그렇게 11년을 운영했는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출산율 저하로 갈수록 관원이 줄어들었다. 유소년들이 배울 운동도 다양해진 것도 한 원인이었다. 인근에 검도, 요가, 합기도, 무에타이 등을 지도하는 도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으니 관원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대의 흐름인 듯했다.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을 할까. 나는 수시로 생각했다. 하향 곡선을 그리는 도장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 없어, 할 만한 일을 찾았다. 생각 끝에 지인을 따라 다녔다. 지인은 농촌에 농자재를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인을 따라다니다 보면 농촌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틈나는 대로 지인을 따라 농촌 곳곳을 돌아다녔다. 휴관일이면 농가에 들어가 일손을 거들며 내가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정보를 습득했다. 그렇게 3년 정도 준비 기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작목은 블루베리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과일 자체가 좋았다. 내 입맛을 사로잡았고, 가격도 괜찮아 보였다. 두 번째는 깊은 노하우가 없어도 재배가 가능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블루베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작기 때문이었다.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두 달을 제외하면 소득원이 없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틈새 작목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딱히 떠오른 것도 없었다. 
  

표고버섯 재배
노진원 귀농인 생산 '표고버섯'

 결국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로 굳혔다. 표고버섯을 선택한 건 지인 영향이 컸다. 지인과 절친한 분이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모든 노하우를 알려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나는 그 말에 힘입어 표고버섯 재배에 뛰어든 것이었다. 연고가 없는 담양에 터를 잡은 이유도 그분 때문이었다. 배우려면 가까이 있어야 했기에 담양으로 터전을 옮긴 것이었다.
처음에는 200평 하우스 1동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4동을 관리하고 있다. 2015년에 귀농해 지금까지 표고버섯만을 재배했으니 7년째다. 지금까지 표고버섯만을 재배했는데 앞으로는 작목을 추가해볼 예정이다. 그동안 들인 노력에 비해 소득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하고 싶은 작목은 과수다. 노지에서 재배하는 과수가 아닌, 하우스 내에서 재배 가능한 과실수를 식재하고 싶다. 어떤 과실수를 심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표고버섯으로 결정할 때처럼 하우스 내에 과실수를 식재한 선도 농가를 찾아다니며 정보를 탐색하고 있다. 아마도 내년이면 하우를 지어 과실수를 식재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자주 내 삶을 돌아보곤 했다. 내가 역마살이 끼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도 있었는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함평에서 용인으로, 용인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담양으로. 직장인의 발령이라면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할 수 없겠지만 자의적 판단의 결과라 오만 가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상념 끝에 다짐한다. 이제 더 이상 터전을 옮기지 않겠노라고. 그러기 위해 나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중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귀농을 했으니 농작물을 자식처럼 애지중지 하련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듣기 싫을 정도로 발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강성오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74년생 노진원 귀농인은 2015년 담양읍 미리산길로 귀농했다.(연락처 : 010-9942-8582)

아내와 함께 재배하는 표고버섯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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