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을 줍고 고래를 기다리는 사람들

 요새 꽃도 다 지고 이제 연두 초록이 마음까지 환하게 밝힐 때입니다. 저도 마음이 한자리에 못 앉아 있는 심정이 되어 주말에 남해바다엘 다녀왔는데, 그 뻘밭에서 뭔가를 줍는 아낙네들을 발견하고 문득 이가림 시인의 시 「바지락 줍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이번에 소개해드립니다. 이가림 시인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1966년 동아일보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시집으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등이 있습니다.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
하루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을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
                                                -이가림, 「바지락 줍는 사람들」

  파리에서 남쪽으로 50km쯤 떨어진 퐁텐블로 숲 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 바르비종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은 화가 밀레와 루소가 각각 1849년과 1846년에 정착하여 소위 ‘바르비종파’라는 자연주의 화파를 태동시킨 곳입니다. 밀레는 바르비종의 극한 가난 속에서 땅을 갈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만종」 「씨 뿌리는 사람」 「양치는 소녀」 등의 작품으로 형상화 했습니다. 「만종」은 하루의 고단한 노동이 끝나고 저녁 기도 종소리가 들려오자 젊은 부부가 마주 서서 기도를 드리는 경건한 풍경으로 우리가 시골 이발소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림입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서 나오는 순수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그림이지요.
  이가림의 「바지락 줍는 사람들」은 시로 그린 또 하나의 「만종」인 셈입니다.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 하루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아름답고 거룩한 풍경화가 「바지락 줍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삶의 진정성, 혹은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호미를 든 아낙들이 하루종일 개펄에 나가 일하다가 붉은 저녁노을이 물들 때까지 바지락을 캔 것입니다. 구릿빛 얼굴에다가 뻘물에서 온몸을 빼내며 애쓴 하루치의 노동이 삶의 진정성, 삶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가 이런 가슴 뭉클한 삶의 감동을 노래하지 않고 무엇을 노래하겠습니까?  
  ‘개펄’은 한자말로 간석지(干潟地)로서 갯가의 개흙이 깔린 벌판으로 간조와 만조의 차가 큰 해안 지형에 발달합니다. ‘갯벌’은 조수가 드나드는 모래톱이나 그 주변의 넓은 땅을 가리킵니다. 개흙(개펄)과 모래(갯벌)가 핵심어입니다.

  그렇게 바다 개펄에서 바지락 줍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바닷가에 앉아서 바다 너머 먼 곳에서 무언가 희망 같은 것이 도래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고래를 기다리며」라는 시가 그런 경우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196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대구매일신문에 「낙동강」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바닷가 우체국』 등 여러 권이 있고, 동화집 『연어』로 유명한 시인입니다.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한때 고래잡이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폐장한 장생포 바다에 간 시인이, 그 방파제 끝에 앉아서 고래를 기다립니다. 그러자 누군가는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하고,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인은 그 말에 서러워져서 바다 끝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이 실상 기다리는 것은 고래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실제 고래를 기다린다기보다 고래로 대변되는 삶의 시원성, 순수성, 야생성의 어떤 순결한 마음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는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기다릴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 가슴을 그득 채워줍니다. 젊었을 적에 우리는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사냥’을 노래하며 절망의 끝에서 늘 새로 일어서곤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순수가 아니었던가요? 그러기에 기다려도 오지 않고, 기다림에 무척 지칠 때, 동해바다든 서해바다든 달려가서 자신의 ‘고래’를 발견하는 일도 좋고, ‘고래’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스스로 ‘고래’가 되어보는 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파도’는 큰 물결을 가리키는데 큰 파도를 우리말로는 ‘너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파랑주의보라고 할 때 ‘파랑’은 작은 물결과 큰 물결을 가리키는 말로 ‘파란’이라고 합니다. 기상예보 중 하나인 파랑주의보는 폭풍현상이 없이 해상의 파고가 3m 이상으로 예상될 때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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