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세상읽기
칼럼/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추억들박환수 칼럼위원

쌍교가는 길에 전남도립 송강고등학교가 있다. 
항상 그렇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숲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어릴 적 그 초등학교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광주댐이 생기기 전, 저 멀리 식영정을 거쳐 송강정에 이른 증암강은 학교 앞에 백사장을 만들고 그냥 먹어도 되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맞은 편 학교는 소나무 숲에 가려 교문을 들어서야만 나무판자로 지은 학교를 볼 수 있었다. 학교 운동장은 느티나무 플라타너스 포플러 숲속에 그리고 울타리는 탱자나무로 둘러싸인 호수와 같았고 어린 학생들은 숲속에 묻혀 자라는 진주들이었다. 

봄이 오면 숲이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여름이면 매미가 울고 한여름에도 숲 그늘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봄가을 운동회 날이면 온 동네가 모여 숲속의 잔치가 벌어졌고 냉차장수부터 엿장수까지 장사치들도 대박을 치는 날이었다. 가을이 되면 노란 탱자가 울타리에 주렁주렁 달리고 하늘 끝까지 치올라간 포플러 나무의 노란 잎들은 운동장 바닥을 노랗게 색칠해 놓았다. 이제 그런 추억의 모습은 이제 볼 수가 없다. 소나무 숲은 도로공사에 밀려났고 학교 숲들이 사라진 현대식 학교건물은 삭막함을 넘어 슬프기도 하고 안타까움도 든다.

프랑스어를 전공하다보니 가을이 오면 가끔 이브 몽땅(Yves Montand)이 부른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을 감상하며 프랑스 시어(詩語)가 주는 감미로움을 느끼곤 하였다. 
‘~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제가 잊지 못했다는 것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 여기에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낙엽(落葉 Les Feuilles Mortes )’까지 외우다보면 어느새 아리따운 여인과 노란 은행잎 위를 걷는 묘한 황홀감마저 느낀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 가을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시인으로 만든다. 

가을이 오면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내 머릿속은 포플러 노란색의 그 숲속에 뛰놀곤 한다. 사라진 포플러의 자리는 이제 노란 은행나무가 가을의 꽃처럼 자리잡고 있다. 길가 은행나무는 노란 양탄자를 깔아 놓아 발로 툭툭 차보기도 하면서 어린애처럼 신나게 길을 가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은행나무를 동강내 버린 학교가 있다는 담양뉴스의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 잘랐을까. 가을이 되면 낙엽 쓰는 것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구린내 나는 열매의 냄새가 싫었을까. 노란 은행잎을 학생들과 함께 감상하며 동시(童詩)도 써보게 하고 같이 빗자루 들고 은행잎을 쓰는 선생님의 모습이 더 정답지 않을까. 몽둥이처럼 흉물이 되 버린 은행나무를 보면서 어린애들이 무슨 감정을 가졌을까.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달렸기에 예쁜 것이며 꽃이 없었다면 그냥 잡초처럼 짓밟히고 잘려 나갔을 것이다. 나무도 나무답게 자라고 보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힘들게 키운 나무를 잘라내는 것은 일순간이나 다시 복구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자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이제 담양을 운영하던 군수도 내년이면 바뀐다. 그렇다고 그동안 가꿔온 생태도시 담양의 모습이 잘려간 은행나무처럼 동강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12년을 가꿔온 흔적들을 지울 때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할 정도로 신중하기 바란다. 후산리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600년이 넘도록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담양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