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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기념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38화)양진영 작가

<38화>사발의 마음

유시문에 대해서는 좀 전에 오윤겸이 넌지시 운을 떼어 놓았다.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은 물론 새 쇼군의 취임을 축하하는 뜻도 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포로 송환이 더 중요하다, 한데 여기에 와 보니까 왜인 주인이 돌려보내기는커녕 피로인을 협박하거나 숨기고 있어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데려갈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 쇼군의 유시문이 없으면 사실상 쇄환이 불가능하고 이 경우 조선과 일본의 양국 관계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니 쇼군에게 진언해서 최소한 본인이 귀국을 희망하는 조선인이라도 데려가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였다. 마사즈미도 이해가 됐는지 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고 돌아가서 네 명의 집정과 타협해서 건의해 보겠다는 답변까지 했었다.

    “흐흑.”몽린은 돌연 얼굴을 움켜쥐고 오열했다. 격정이 넘쳐 어깨가 파도를 치듯 출렁였다. 마사즈미는 젊은이가 갑자기 달려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어깨를 뒤로 젖혔다. 
“로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이번에 꼭 귀국하려는 욕심에 이 정호다완을 가져왔고 쓸데없이 말이 많았습니다.”
“…….”
“하오나 저는 이 정호다완으로 차를 마실 때마다 진실로 이 사발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이것은 제게 호소합니다, 정말 자기가 나고 구워진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자기 몸을 이룬 황토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자기가 맡았던 흙 냄새, 들었던 바람소리, 들이마셨던 솔 향기가 미치도록 그립다고, 차를 마실 때마다 제게 애원합니다.”강우성은 저 친구가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땀방울로 뜨뜻해지는 듯해 두루마리 자락을 들어 목을 닦았다. 
“로주님. 이 찻사발이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해 천대 받고 있으나 나리가 소지하고 다회에 다니시면 곧 명성을 얻어 대명물의 반열에 오를 것입니다. 이 그릇은 분명 정호다완이고 제 눈에는 그중 가장 뛰어난 오오이도가 분명합니다. 나리가 다회를 열어 오리베나 엔슈님을 초청하시면 그분들이 금방 이 그릇을 알아보실 것입니다.”
“…….”
“그러면 이 사발도 제 주인을 찾게 돼 기뻐할 것입니다. 부디 이 사발의 마음을 받아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오윤겸은 종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몰라 눈만 껌벅거렸다. 마사즈미는 예의 그 찌르는 듯한 눈초리로 몽린을 쳐다보았다. 젊은이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가늠하는 듯했다. 전국시대가5백 년 넘게 지속돼 매일 싸움터에 나가야 하는 왜인은 손자병법이 처세술이었다. 손자는 오직 이기는 것이 관심이었으니 승리한다면 방법은 어떤 것이던지 정당하다고 했다. 그는 시계편에서 전술의 기본은 적을 속이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왜인은 남을 속이는데 능했다. 마사즈미가 모시는 이에야스도 남을 속이기로는 일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다. 본래 주군이었던 히데요시의 자식까지 속여2년 전에 그를 죽이고 오사카성을 차지했는데 그 간계를 권한 신하가 마사즈미였다. 그 역시 속임수에 능한데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직설적으로 나오는 몽린이 수작이 의아했다.조선은 손자병법 대신에 성리학을 가르쳤는데 이 학문은 신의가 최고 덕목 중 하나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남을 속이지 마라고 배운 몽린은 마사즈미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사발에 빗대 호소했는데 뜻밖에 그의 정직함이 마사즈미를 감동시켰다. 그가 천천히 부채를 부치면서 말했다.
“으음. 사신께서는 좋은 젊은이를 데리고 가시겠소. 야스하루 곁에 두기에는 아까운 젊은이요.”좀 어두웠던 오윤겸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대신께서 이 사발을 받아주시는 것이오? 감축 드리오. 모든 것에는 그것에 맞는 격이 있는 법. 이 금덩이 같은 사발은 대신 같은 분이 소유해야 격이 맞다고 보오.”
“사신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꺼이 받겠소. 유시문이 내려지면 야스하루 저택에 사람을 보내 이 젊은이를 빼내는 것이 좋겠소. 칼 밖에 모르는 그 자는 고집이 세서 유시문을 보고도 딴청을 부릴지 모르니까.”몽린은 문득 사발이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슬픈 곡조는 아니었다. 기쁨의 울음소리 같았다. 몽린은 찻잔을 닦는 수건으로 정성껏 정호다완을 닦았다. 금빛 보자기에 그것을 싸면서 조선을 떠나 수십 년간 왜국을 떠도는 그 사발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빌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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