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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천년 특별기획Ⅰ/ 담양의 근대건축물(2)-담양읍 고택

만석꾼이 살았던 고래등 같은 담양읍 고택(古宅)

담양뉴스는 '2018 담양천년 특별기획'으로 <담양의 인물> <담양의 마을탐방> <추억의 우리동네> <담양의 근대건축물> <담양, 꼭 알아야할 100가지> 등 '담양 알기'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이번호에는 <담양의 근대건축물> ? ‘담양읍의 고택(古宅)’ 편을 게재합니다.
 <담양의 근대건축물> 편에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담양 지역사회 여러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던 근현대기 건축물로써 보존가치가 높은 것을 발굴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담양의 고택(古宅)
●김인기 古家(담양읍 객사리) : 담양의 만석꾼 부자宅
●김재호 古家(담양읍 천변리) : 천석지기 독림가宅
●김동호 古家(담양읍 천변리) : 자유당시설 국회의원宅
●국쾌남 古家(담양읍 천변리) : 담양 국씨 명문가宅
●정용도 古家(담양읍 지침리) : 담양의원 창업주宅

구한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과 6.25동란후 1950년대 말까지 담양읍에는 천석꾼, 만석꾼이 살았던 고래등 같은 와가(瓦家), 고택(古宅)이 즐비했다.
그만큼 당시의 담양은 호남의 곡창지대로 기름진 땅에서 거둬들인 곡식으로 창고를 가득 채우고 고래등 같은 와가(瓦家)에서 호의호식 하며 살던 부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세상도 급속히 변해 당시 천석꾼, 만석꾼 가문의 영광도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그 흔적마저 잊혀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더 늦기전에 과거 담양을 호령하던 천석꾼, 만석꾼 부호들의 본가를 찾아 아직 남아있던 고택(古宅)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본지 취재에 의하면, 담양읍에는 현재 담양의 만석꾼 부자 김인기 古家(담양읍 객사리)를 비롯 천석지기 독림가 김재호 古家(담양읍 천변리), 자유당시절 국회의원 김동호 古家(담양읍 천변리), 담양국씨 명문가 국쾌남 古家(담양읍 천변리), 담양의원을 창업한 정용도 古家(담양읍 지침리) 등 5곳의 고택(古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 일제 강점기 온 나라가 알아주던 담양의 갑부 국채웅 선생의 고택 우송당을 비롯해 원형이 전부 또는 일부 훼손된 몇 채의 고가옥(古家屋)들이 더 있지만 외형과 내부의 개조가 많아 이번 고택 취재에서는 제외했다.

본지가 ‘2018담양지명 천년기념’ 기획특집으로 보도중인 <담양의 근대건축물> 에 소개된 지역의 문화자산들은 그 자체로 우리가 보존해야 할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향후 담양군 등 관계당국의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 따라서 더 늦기전에 현존하는 담양의 고택을 비롯한 지역내 다양한 근세 및 근대 문화자산이 더 이상 훼손, 망실되지 않고 잘 보존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인기 古家

김인기 古家는 담양읍 객사리에 있다. 1920년대초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古家의 주인은 당시 담양의 만석꾼 부자집으로 유명했다. 현재 김인기 씨는 고인이 됐고 따님인 김병순 씨가 친정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담양읍 천변리 소재 김재호 古家 주인(부친 김병준)과는 한집안 일가이다.
古家의 전반적인 배치는 지금도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지만 일부는 떼어내 다른 사람이 소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솟을 대문과 사랑채, 중문과 안채 2동, 행랑채 등의 고가옥이 남아있어 아직도 과거 위풍당당한 만석꾼 부잣집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다. 현존 담양읍 고가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서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재호 古家

김재호 古家는 부친인 김병준 씨(1901년생)가 건축한 고택이다.
김병준 씨는 일본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도의원을 지냈으며 해방후 독립촉성회를 거쳐 담양읍장을 지냈다. 그의 생존 당시에 규모로는 천석지기 정도의 지방유지 였다고 한다. 이 집은 1920년대에 지어진 古家로 본래 행랑채, 사랑채, 안채, 창고 등 5동의 와가(瓦家)를 갖춘 8칸 접집으로 와가마다 대청마루, 방 3개씩이 딸린 규모가 상당한 고택이었다. 또한 고즈넉한 古家와 함께 각양각종의 꽃과 나무로 정원이 잘 가꾸어진 수목원을 갖춘 아주 특별한 古宅이었으나 지금은 본채와 행랑채 등 일부만 남아있다.
현재의 주인 김재호 씨(아들 김창구씨)는 부친에 이어 독림가로 잘 알려져 있고 담양군 농업기술자협회장 등을 지냈다. 앞서 소개한 김인기 씨(딸 김병순 씨)宅과는 작은집 증조할아버지 관계로 가까운 일가이다.

●김동호 古家

김동호 古家는 주인 김동호 씨(1904년생)가 건축한 고택이다.
그는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의사 출신이지만 관변단체와 정당 활동을 통해 당시 민주당 담양군당위원장, 초대 담양군수를 비롯 자유당시설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관계로 유명한 고택이다.
담양읍 천변리 중앙파출소 뒤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지붕의 기와를 개량형 판넬 기와로 갈아 옛 모습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와가(瓦家) 또한 건축 당시엔 문간채, 사랑채, 안채 등 양반 명문가의 형태로 지어졌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본채 단 한 동만 남아있고 김동호 씨의 아들 김병래 씨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쾌남 古家

국쾌남 古家는 담양 국씨 명문가로 잘 알려진 고택이다.
해방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고택은 부친 국정완 씨가 관직에 있으며 지었던 고택으로 당시엔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본채, 창고, 정원 등을 갖추었고 재력은 약 8천석지기 규모의 부잣집 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고택에 살던 국쾌남 씨(1922년생)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해방후 군정청 통역관을 지낸 후 광주에서 대한극장을 경영하는 등 사업에 종사했으며 영화제작에도 관여했다. 정치활동에 나서 제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국쾌남 씨 소유로 있던 이 고택은 10여년 전에 소유권이 바뀌어 현재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며 솟을대문과 사랑채, 정원, 창고 등이 남아 옛 모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안채로 알려진 와가 한 동은 오래전에 별도로 쪼개져 소유권이 바뀌었는 바, 최근에 사찰 ‘무량사(정각 스님)’가 입주해 포교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용도 古家

정용도 古家는 1950년대 담양읍에 ‘담양의원’을 개업한 정용도 씨(1915년생)가 거주하던 가옥으로 지침리 구,해동주조장 건너편에 있는 고택이다.
이 고택은 솟을대문, 문간채, 사랑채, 안채, 창고동 등 전형적인 양반가 형태로 지어졌고 정원도 잘 가꾸어진 와가(瓦家) 였으나 오래전에 일부가 헐려 현대식 건물과 빌라가 들어서 옛 모습을 상당히 잃었다. 집을 지을 당시의 위세를 증명하듯 현재까지도 솟을대문이 당당히 서 있다.
정용도 씨는 경성제국대학(현.서울대) 의학부를 이수하고 전라남도 상이군인정양원 의무과장 등을 지낸 후 고향 담양에 돌아와 담양읍 천변리 구.해동주조장 인근에 ‘담양의원’을 열어 별세하기까지 수십년간 담양군 의료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지난 2002년에 ‘담양군민의 상’ 본상을 수상했다.
이 고택은 정용도 의사가 별세한 후 아들 정성연 씨에게 상속됐고,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현재는 며느리가 고택을 지키며 살고 있다. / 장광호 편집국장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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