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1592년 6월 (24화)

  “그 전에 아버님이 오실지도 몰라. 할머니가 건강하셔야 아버님께서 흡족해하지 않겠어?”
 민경이는 한사코 따라나서려는 광옥이를 애써 뿌리치고 수리동산으로 향했다. 찜통 같은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타구니 언저리가 씀벅거렸다. 며칠 전부터 생긴 땀띠에, 옷이 스치면 자기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세상을 녹일 듯한 더위에다, 며칠 간 땀을 너무 흘린 탓에 민경이는 걷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덕령이를 생각하니, 이것은 고생도 아니었다.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덕령이는 의병들과 전장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맨 몸으로 걷는 것도 힘든데, 무겁고 두툼한 갑옷 차림으로, 민경이는 들기도 힘든 창검을 들고, 매복해 있을지도 모르는 왜군을 경계하며 이동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언제 왜군이 공격할지 모르니 쉬는 것조차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수천의 의병들이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말을 타고 가는 장수, 무기와 군량이 가득 실린 달구지를 끄는 소나 말, 수송병들, 군기를 든 기병들, 누구 하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긴장하며 행진하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진 듯했다. 그 무리의 앞에서 늠름하게 걷고 있는 덕령이가 땀벌창에 젖은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라도 넉넉히 보낼 것을. 여벌을 다섯 벌 챙겼지만 어쩐지 부족한 것 같았다.
  
 민경이가 수리동산에 도착할 때는 비를 맞은 듯 옷이 흥건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민경이는 소나무 아래로 갔다. 그곳에 두 명의 아낙이 와 있었다. 낯선 여인이었다. 하녀 차림이었다. 민경이의 등장에 잠깐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손부채를 하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남편이나 가족 중에 전주로 기병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가 전장에 나가셨나요?”
 동병상련이 느껴져 민경이는 더 어두워 보이는 아낙에게 물었다. 민경이보다 족히 서른은 넘어 보였다. 적어도 오십은 넘어 보였다.
 “서방님이 나가셨구만유.” 
 중년 아낙이 죽을상을 지었다.
  “나이가 상당히 드셨을 텐데, 걱정되시겠습니다.”
  “나이 때문에 걱정은 안 해요.”
  “그럼요?”
  “이태 전에 일사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거든유. 그늘에 있어도 이렇게 숨이 컥컥 막힌디, 괜찮을랑가 모르겄네유?”
  
 아낙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민경이는 아낙이 조총 소식은 듣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조총의 위력을 들었다면 일사병 따위는 걱정거리도 아닐 것이다. 아낙에게 조총에 대해 들은 바를 전하고 싶지만, 괜한 걱정을 추가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민경이는 전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저 멀리에서 기척이 있는지 톺아보았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 턱에서 툭 떨어졌다. 민경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손부채도 하지 않고,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눈썹에 대고 먼 길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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