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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6주년 기획/【대나무】(2)특집/ 대나무, 담양의 보물로 남을까?

담양뉴스는 올해 창간6주년을 맞아 대나무골 담양의 대표적 특산물이자 부존자원인 【대나무】를 특집기사로 재조명 한다.
담양뉴스가 창간6주년 특집으로 진행하는 【대나무】는 ‘대나무, 담양의 보물로 남을까’ 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에 걸쳐 연속 보도할 예정이며 담양의 대나무, 그리고 대나무산업이 우리 담양에 가져다 준 다양한 혜택과 더불어 향후 대나무산업의 미래전망을 살펴볼 방침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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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은 지난 2002년 민선 3기 들어 <대나무신산업> 정책을 통해 오랜기간 침체됐던 우리지역 대표적 부존자원인 <대나무>를 새로운 지역특화 소득사업으로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이후 20년 가까이 담양의 대나무와 대나무산업은 ‘죽녹원’을 필두로 한 관광산업 발전과 더불어 대나무 소재를 활용한 ‘대나무신산업’ 활성화로 우리 담양의 지역 브랜드 가치를 대내외에 크게 상승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민선 8기 담양군정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점에서 지난 20여년간 주요정책으로 추진해왔던 <대나무>가 연속성을 갖는 담양군의 주요정책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담양군이 그동안 대나무숲 확대, 조성에 심혈을 기울여왔으나 최근들어 관내 곳곳에서 대나무숲을 훼손하는 개발행위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 과연, 우리지역 특산물이자 부존자원인 대나무가 담양의 보물로 계속 남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민선3기 이후 민선7기까지 대단히 영향력 있는 지역발전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부(富)를 창출한 담양의 부존자원 <대나무숲>의 지속가능한 보존 여부와 함께 <대나무>에 대한 가치 재조명을 통해 군민들의 관심과 지역사회 여론을 새롭게 환기시키고자 한다. 

②담양 대나무와 죽세공예, 그 유래와 역사

▲죽물시장(1970년 11월)

담양은 죽림(竹林) 조성에 가장 알맞은 환경과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굵고 질이 좋은 대나무가 많이 생산된다. 당연히 죽제품이 다양한 생활도구로 활용되었고 죽세공예가 크게 발달하게 됐다. 
이로 인해 대나무 주산지가 된 담양은 예로부터 12개 읍면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마을마다 대밭이 자리하고, 집집마다 죽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가구가 대부분 이었다. 대나무와 죽세공예로 생계를 이었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주요 소득원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담양에서는 대나무밭을 살아있는 금을 캐는 ‘생금밭’ 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또 죽세공예가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왕성하게 발전하던 시기에는 대나무와 죽제품으로 부(富)를 축적한 사람들도 많았다. 

▲죽물시장(1989년11월)

담양읍지인 <추성지(秋成誌)>에 담양 죽세공예의 기원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수백년전 전주에서 살던 김씨 노부부가 담양읍 향교리로 이사와 농한기를 이용해 참빗을 만들기 시작함으로써 담양 죽세공예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담양과 대나무와의 역사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가장 오랜 문헌기록 중 하나는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각 지역의 공물이 정리되어 있어 지역마다의 산업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담양에서는 가는 대, 왕대, 오죽, 화살대 등이 공물로 기록되어 있어 여러 종류의 대나무가 생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대나무로 만든 물레, 바늘상자, 삿갓, 죽석, 바구니 등이 생산되었고 조선말과 구한말 시대에는 만주와 몽고까지 수출도 했다. 
1916년에는 담양에는 참빗을 만드는 진소계(眞梳契) 조직이 만들어졌고, 1919년에는 참빗조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후 1926년엔 산업조합이 탄생하면서 담양 죽세공예 산업의 규모가 커지게 되고, 193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죽제품의 상품화가 이뤄지게 된다. 
1940년대 이후는 서구문화의 영향에 따른 사회의 격변기로 인해 담양의 죽제품산업이 활기를 띠었으며, 1947년 미국에도 선을 보였다. 이어 1954년에 시카고 국제박람회에 출품하고 1964년에는 뉴욕엑스포에 담양산 죽제품을 수출까지 하게 되었다. 

▲죽물시장(1996년)

담양의 죽세공예산업은 1960년 들어 정부의 향토특화산업 지원과 담양죽세공예센터가 담양읍에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는 담양죽세공예산업진흥 10개년 계획이 수립돼 저변확대를 위한 죽세공예경진대회가 매년 개최되는 등 담양 죽세산업의 활발한 발전이 지속됐다. 이 시기에 담양에서 생산한 죽세공예품으로는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바구니, 소쿠리 종류를 비롯 평상, 탁자, 의자 등의 가구류, 담뱃대, 용수, 조리, 키, 부채, 대베개, 삿갓 등 일상용품 들이었다. 
이외에도 대나무의 외피에 인두로 낙죽을 하거나 오색물감을 들여 부녀자용 가방, 반짇고리 등 화사한 무늬의 치장용구를 만들기도 했다. 또 단소, 퉁소, 피리 등 악기를 만들었고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서 엮은 발, 채상, 갓양태 등 세공품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장식용 화살통, 각종 장신구, 대자리, 죽도, 침대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용되는 모든 물품들이 죽세공예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 당시가 바로 대나무밭을 ‘생금밭’ 이라 부르며 죽세공예가 담양경제를 주름잡던 시기이다. 시골농가에서도 대바구니와 소쿠리를 만들어 죽물시장에 내다 팔면 언제든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야말로 담양의 죽물시장이 전국의 여느 시장에도 버금가는 수많은 상인들과 큰돈이 오고가는 활력이 넘치는 담양경제의 활황기였다.
이 같은 죽물시장의 활성화, 죽세공예산업의 활황기를 맞아 담양죽세산업을 기반으로 한 관광소득사업의 접목을 시도하는 차원에서 1981년 당시로서는 세계유일의 죽물박물관이 담양에 설립됐다. 

▲만성리 맹종죽 대나무숲

하지만, 이렇듯 담양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 돈줄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죽세공예가 산업발전과 시장경제 변화의 추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면서 8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하게 사양길에 접어드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들어서는 프라스틱제품의 출현과 중국, 동남아 등 수입산 죽제품이 밀려들면서 담양의 죽제품 생산은 현저하게 침체되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는 시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 20여년간 담양의 죽세공예산업은 급속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수백년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죽세공예의 전통과 기술은 물론 장인들의 명맥이 끊기고 전수자마저 없는 암흑기에 빠져들고 만다.
이처럼 담양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죽세공예가 장기간 침체기를 겪으면서 죽세산업은 담양경제의 한 축에서 아예 잊혀져 가는 듯 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민선3기 담양군이 추진한 ‘대나무신산업화 정책’ 이 바로 그것이다.
담양군의 ‘대나무신산업화’ 정책은 대나무를 활용한 다양한 신상품의 연구,개발로 이어져 기존의 죽세산업 분야는 물론 농업분야, 식품 및 의약 분야, 건축인테리어 분야, 관광분야 등에 접목되고 그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담양 대나무산업 제2의 부흥기를 열게 되었다. /장광호 편집국장

■ 특집기사 연재 
1. 담양뉴스 창간6주년 특집 【대나무】 담양은 왜 대나무로 유명한가?
2. 담양뉴스 창간6주년 특집 【대나무】 담양 대나무와 죽세공예, 그 유래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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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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