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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칼럼(5)/ 죽녹원 우송당의 소 울음소리정호 사무국장(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담양뉴스는 기획취재 【슬로시티 담양 미래 전망은?】 보도와 관련해 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실무책임자인 정호 사무국장의 칼럼을 통해 슬로시티 담양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해 몇 차례(월2회) 칼럼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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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사무국장(프로필)

· 담양군 슬로시티사무국 국장
· 담양군자치분권추진협의회 위원
· 담양교육참여위원회 위원장
· 전남도교육참여위원회 미래혁신교육특별위원회위원장
· 대숲교육공동체 대표 
· 창평향교 장의
 

담양이 초행길인 국악 작곡가 김영동 선생 내외와 함께 죽녹원에 들어선 시간은 오전 9시였다. 대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다다르니 우송당이다. 우송당은 조선 개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 담양국씨 집안의 채웅이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설움을 창작 판소리 열사가를 통해 저항했던, 항일운동가 박동실 명창에게 소리를 하도록 배려한 곳이다. 

이곳에서 박동실은 동편제 같기도 하고 서편제 같기도 한 담양소리를 만들어, 동료 후학들과 함께 기울어진 조선의 운명을 노래했다. 우송당 마당에는 박동실이 담양에서 만든 열사가 중에 안중근 열사가가 소리 비로 서 있다. 안중근이 1909년 하얼빈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심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이듬해 이루어진 한일병탄을 막고자 했었던 조선 최후의 장렬한 저항을 박동실은 소리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윤봉길 열사가와 유관순 열사가 등을 작창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꽉 막힌 조선의 항일해방투쟁에 기름을 붓고 억눌린 민중들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갑자기 담양군민의 노래가 생각났다.    
“추월산 맑은 정기 이어 가꾸며/ 철마다 푸른 대숲 절개도 곧다/ 우리는 터를 닦는 세기의 일꾼/ 이룩하자 빛난 고을 뭉친 힘으로/ 아아 드높다 저 구름 자유의 낙원/ 대 바람 일렁이는 평화의 담양”  
‘자유의 낙원, 평화의 담양’ 박동실이 꿈꾼 세상이 이러했으리라. 죽녹원 우송당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박동실의 가락이요 음색이었다. 소 을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새끼가 팔려 간 날, 하루종일 애절하게 울어대는 그 소리. 박동실의 소리가 그랬다. 

우송당의 방문을 열었다. 권하경 명창이었다. 새벽 6시부터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단다. 권 명창은 박동실제 판소리보존회장을 맡아 우송당을 전수관으로 쓰고 있었다. 금성면 학동 출신으로 남산에서 득음을 했는데, 담양남초와 담양여중, 광주예고와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대에서 박동실제 심청가로 우리나라 판소리 1호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동실이 낳은 자식, 담양소리의 맥을 잇는 보물이다. 최근 단가 ‘죽향가’를 작창하여 신임 담양문화원장 취임식 날 담양군민에게 바치는 헌정공연을 했다. 
담양소리의 대표적 인물은 조선 후기 8 명창 중 새소리로 유명한 이날치와 박동실을 꼽을 수 있다. 창작판소리 윤상원 열사가를 작창한 임진택 명창에 따르면 박동실은 세계적 음악가인 통영 출신 윤이상에 버금가는 거목이라고 평가한다. 담양을 넘어 우리 민족 음악의 자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송창근 작시, 권하경 작창의 ‘죽향가’를 들어보자.
“죽향이라. 금성산성 담양호를 둘렀으니 추월산 영봉에 올라 동녘하늘 명월일세. 영산강 발원지 용소가 날리니 백룡이 노니는 곳인가. 백진강이 굽이굽이 대전평야 풍년되어 만세만세 만만세 영화를 누리는구나. 삼인산 신령님은 병풍산을 둘러앉아 무등산 내려 볼 제 서기를 모아 날으니 죽녹원 청죽 곧은 마음 담양의 싱징이라 만덕산 정맥이 장원봉으로 흘러내려 상월정 수남학구당 경연소리 선비의 고장이어라. 이서의 낙지가는 가사문학의 효시오. 유희춘의 미암일기는 인간사의 도리일세. 이날치 박동실은 국악예술의 극치요. 담양의 자랑이어라. 담양의 팔경 오방길 따라 독수정은 충절의 상징이요. 식영정 송강정 환벽당 소쇄원은 자연의 으뜸이요. 가사문학의 태반일지어라. 일동삼승 노니는 선비들 청죽의 굳은 절개 으뜸이로다. 면앙정길 황금 들녘 불대산 멀리 해가 지면, 영산강 습지길 갈대꽃 방울져 세월이 진다. 얼~럴~럴~ 죽향이야 좋을시구 죽향이로다.” 

북채를 든 김영동의 장단에 맞추어 죽향가를 부르는 권 명창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인생을 바꾼 영혼의 스승 박동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권 명창은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대선배이자 작곡가인 김영동 선생 앞에서 월북한 박동실의 제자로 살아온 운명적인 삶을 토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시 박동실제 심청가를 혼신을 다해 쏟아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주겠다고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이가 환생한 듯했다. 야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마음이 심청이의 마음이었을 테고, 죽음을 불사하고 노래한 박동실은 안중근의 마음이었으리라. 빼앗긴 나라 조선의 민중이 바로 봉사 심학규였다. 우리는 심학규가 눈을 뜨는 대목에서 해방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 만만세’를 외쳤다. 

이날 나는 죽녹원 우송당의 소 울음소리에 해방의 눈물을 흘렸다. 대숲의 새들은 위로를 하듯 떼창을 부르고 있었다. 청아한 새소리는 평생 고달픈 노비로 살면서 자유를 갈구했던 이날치의 소리 아니었던가? 죽녹원이 일순간 해방구가 되었다. 권 명창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그만 울어, 우송당에 박동실과 이날치 명창 등 담양소리기념관도 짓고, 죽녹원을 담양문화예술해방구로 만들면 될 것 아니여’,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가수는 노래를 하고, 춤꾼은 춤을 추고, 시화전도 열고, 마당극도 하고, 창작소리축제도 하믄 될 것 아니여’  
‘그려. 우선 작은 창작소리축제부터 해보자구. 이날치 밴드도 부르고, 전국의 젊은 퓨전 국악인들 다 불러 모아 창작판소리대회를 한 번 열어 보자구. JTBC와 협의하여 방송차 대라고도 하고, 돈이 부족하믄 담양이 고향인 카카오 김범수한테도 찾아가 보자구.’”

‘자유의 낙원, 평화의 담양’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강가로 나왔다. 영산강은 말없이 서해로 흐르고 있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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