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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말과 행동이 무척 조심스러운 세상박환수(본지 칼럼위원)

살다보면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을 가입할 때면 충분히 설명을 들었고 이해했다는 자필서명에 나의 신상정보를 들여다보고 이용해도 된다는 문서에까지 시키는 대로 서명을 한다. 나중에 불만을 얘기하고 민원을 제기할 수 없도록 미리 나의 발을 묶어 놓는 조치를 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전화를 하면 지금부터 대화를 녹음한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먼저 전달된다. 녹음되고 있으니 말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 일상생활을 살다보면 알지도 모르는 곳에서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온다. 자기들끼리 나를 이리저리 팔아넘기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지만 서명을 하고 동의를 해주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편안하게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은 것이나 전화 통화 내용이 녹음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싸움에는 꼭 녹취여부와 진위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법정 싸움을 한다.

개인 간에도 감정싸움을 하다보면 ‘다 녹음해 해놓았다, CCTV확인하면 다 나온다’로 협박을 한다. 믿고 지내던 사람과 사적으로 무심코 나누었던 얘기들이지만 언론기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고 국민의 알 권리나 공인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세상에 까발린다. 그 대상의 신분이 높고 유명한 사람이면 반응효과가 커서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은 항상 취재의 먹잇감이 되고 있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저 내가 지지하고 좋아하는 호불호를 놓고 갈라져 싸우게 된다. 

3년 전 은밀하게 진행하려던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국회에 출석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의 핸드폰 문자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청와대 고위직의 문자 내용이니 기자로서는 증거가 명확한 특종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 이처럼 고성능 카메라를 이용한 취재활동은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만들지만 이제는 오히려 노출을 이용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런 세상이니 우리의 일상이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차량을 운전하면 도로에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가 나를 추적하고 있다. 그뿐인가 수천만대의 자동차가 블랙박스를 달고 나의 활동을 녹화하고 있다. 등산을 가도 유원지를 가도 마트를 가도 골목을 지나가도 내 머리위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다. 농촌이나 시골동네 길이라고 예외가 없다. 요즘 CCTV는 성능이 좋아서 주야를 막론하고 얼굴이나 차량번호 정도는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녹화되고 있다. 웃는 소리지만 과거 물레방아 간에서 은밀히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은 이제 이해하기 어려운 해묵은 과거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꼼짝 마라’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거리에 물건을 두어도 누가 가져가지 않은 분실물 실험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한국은 매우 치안이 안정된 나라라고 칭찬하고 있다. 착한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하지만 지나친 감시수단의 부가적 효과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사생활 보호를 떠나 이제 세상은 말조심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옛말에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말조심을 가르쳤지 않은가.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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