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7. 1593년 8월 (제29화)

  “나리.”
  “또 왜 그러신가?”
  “어머님만 조상이 아니잖아요? 시묘살이 중이라도 아버님과 여러 조상님께 차례상은 올려야지요. 한가위 날 하루만이라도 집에 오셔서 차례를 지내시는 건 어떨는지요?”
민경이는 기대했다.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덕령이가 집에 오면 다시 한 번 진중하게 부탁할 요량이었다.
 “안 그래도 요 며칠 그것 때문에 고민했소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상 중인데 어디를 가려하느냐고 내게 벌을 주신 것 같구려. 이렇게 말이요.”
  덕령이는 불에 덴 왼팔을 보았다. 민경도 따라 보았다.
  “잠깐이라도 안 될까요?”
민경이가 사정조로 말했다. 
  “광옥이도 있고, 덕호 아우도 있지 않소? 내 몫까지 대신해서 정성껏 차례를 지내라고 전해주시게나.”
  
그렇게 말하고 덕령이는 다시 망치질을 했다. 그 어떤 말로도 덕령이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한 민경이는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차례도 끝나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민경이는 뒤숭숭했다. 방에 틀어박혀 있기가 싫었다. 방에 틀어박혀 귀뚜라미, 여치, 쓰르라미 같은 벌레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쩐지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오라버니와 대련했던 뒤뜰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덕령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경이는 뒤뜰에 귀를 기울였다. 보름날마다 하는 습관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풀벌레의 울음뿐이었다. 풀벌레 울음에 허전함을 느껴 문을 박차고 나갔다.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은쟁반을 걸어 놓은 듯 맑고 깨끗해 보였다. 어찌나 맑은지 달빛에 한기가 묻어나는 듯했다. 민경이는 보름달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있다고들 하는데 거짓말이 분명했다. 아무리 봐도 덕령이 밖에 없었다. 덕령이가 한가위인데도 집에 오지 못해 미안해하고 있었다. 얼굴은 핼쑥해 보였다. 시묘살이 중이라고 죽으로만 연명해오던 덕령이였다. 팔에 화상까지 당한 몸이었다. 지금 덕령이는 무등산 중턱에 있을 것이다. 능주와 몇몇 장정들과 함께 주검동에서 무기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불편한 여막 생활로 피곤할 텐데도, 화상으로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시간이 촉박하다고 밤늦도록 주검동에서 무기를 제작한다고 했다.
  “화상은 좀 어떠신데요?”
다음날 아침, 조반을 가지러 온 능주에게 물었다.
  “나리께서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요. 그 팔로 오늘 오십 근짜리 철병도를 완성했다니까요!”
능주가 기별을 전했다.
  “오십 근 짜리나요? 화상 입은 몸으로요? 그걸 어떻게 들어요?”
  “나리잖아요? 숟가락 들듯 하신다니까요?”
민경이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화상이 정말로 심각한 정도가 아닌지, 민경이가 걱정할까 봐 둘러댔는지 몰라도 마음이 놓였다. 죽으로 세 끼를 때운 탓에, 힘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내일은 이백 근짜리 쌍철추를 만드실 거라 하셨습니다요.”
  “이백 근짜리를요?”
 
민경이는 자기도 모르게 말끝이 높아졌다. 쇠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고, 만들기도 쉽지 않겠지만, 화상 입은 팔로 그 무거운 무기를 어떻게 만들지 걱정이 앞섰다. 힘이 장사라는 건 알지만 무모한 것도 같았다. 그만큼 왜군을 무찌르고 싶은 열망이 넘쳐나는 것으로 보았다. 형의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충의 정신이 불타올라 부상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그 무거운 것을 휘둘러야 하는데, 수척해졌다는 말이 가슴에 박혀,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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