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년 함양박씨 박이홍이 개척한 집성촌 

▲마을전경

오늘은 이전에 창평면사무소 근무하는 지인이 추천해준 절산마을로 갔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언젠가 와 본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비슷한 분위기의 마을인가? 하며 먼저 나와 기다리시는 이장님을 만나 마을을 돌았다.

마을 이름은 절산(節山)마을로 98세대 130명이 거주하는 아주 큰 마을이다. 
딸기하우스 농사짓는 4농가 외에 대부분은 전통농사를 짓는다. 마을주민의 70%는 함양박씨 자작일촌(自作一村:한집안끼리, 또는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한 마을을 이룸)이고 30%는 이주민이다. 

▲경로당 마을주민들

이 마을은 1520년경 함양박씨 박이홍(朴以洪)이 마을을 개척했다. 박이홍은 담양부사를 지낸 박이관(朴以寬)의 동생으로 조광조의 제자이다. 중종 1507년 중랑시 생원과에서 전국 100명 중 3등으로 합격해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으며 기묘사화 전에 바른 의견을 상소하자 모리배에 의해 모함을 당해 파직당한 뒤 창평으로 와서 어머니를 모셨다.  이 마을은 또 담양군수를 지낸 박준식 군수(재임 1991.1~1991.7) 고향마을 이기도 하다.

▲마을 도내기 샘

이장님과 함께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마을 입구에 있는 도내기(도내기: 창틀 위쪽의 홈통을 창짝 넓이보다 더 깊이 파낸 고랑으로 창을 끼우거나 뺄 때 쉽게 하기 위해 만든다. ) 샘이었다. 이 우물은 지금도 물이 잘 솟아나고 있으며, 기둥으로 자연목을 사용한 우물 지붕이 자연미가 있고 독특해서 좋았다. 바로 옆에 천마정(天馬亭: 마을옆 산의 형세가 천마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천마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 옆의 느티나무도 400년이 넘었는데 아주 건강한 모습이어서 이 마을의 기운이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경로당에 가보니 60대는 입식 방에, 7~80대는 좌식의 방 이렇게 두 공간이 있었는데 두 방을 합해서 20명 정도 어르신들이 나와 계셨다. 7~80대 어르신들이 계신 방에는 대전·해남·상남·학댕인·범재·남면 댁이 계셨다. 어르신들께 마을자랑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함양박씨 집성촌이라서 좋고 싸움이 없고 서로 우애가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이 경로당은 좁은 광장을 넓히고 조경 등 환경을 개선하고자 1998년에 군비와 주민, 그리고 출향인의 헌금으로 지어졌다. 마을은 골목길도 넓고 집터와 집의 규모도 다른 마을에 비해 큰 편이라서 풍요롭게 느껴졌다. 

마을 바로 앞 도로를 걷는데 자동차 3대 정도가 왕래할 정도로 길이 넓어서 이장님께 여쭈니 최근에 마을주민이 땅을 기부해주셔서 1/3가량이 더 넓어졌다고 했다. 마을 정면 앞쪽에서 보니 이 마을은 해곡리 앞으로 나 있는 유해곡길에서 500미터 가량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 포근한 느낌이 들고 조용했다. 또 멀리는 무등산·월봉산·만덕산이 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전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이 마을이 큰 마을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충효문

조금 더 가니 함양박씨 월영당(月影堂) 박이홍의 후손 장경·인경·계업·광업, 그리고 함양 의인 박씨를 기리는 충효문(忠孝門)이 나왔다. 
장경과 인경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 아래에서 군량미를 담당하는 참봉 벼슬을 했는데 그 업적을 기려 숙종 23년(1684)에 왕명으로 정려각(건축기념물)이 세워졌다. 이후 열녀 한 분과 광업·계업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충효문으로 명명하여 보존되고 있다. 위의 분들이 이장님의 12~13대 할아버지들이시라고 설명하는 이장님의 표정에서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한옥이 3채가 보였다. 모두 사당인데 절산사(節山祠)는 박이홍·박이관을 모시는 사당이고 나머지 두 곳은 소문중 사당이라고 했다. 절산사의 솟을대문은 그 아름답고 웅장함이 사람의 눈을 끌만 해서 사진에 담았다.

▲절산사(사당)

마을 끝자락에 폐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창평 북초등학교로, 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한때는 800명의 학생이 다닌 적이 있었다. 지금은 흰 건물만 남아 철 대문으로 잠겨있는데 예전에 마을주민들이 손수 일구었을 학교가 개인에게 팔렸다니 아쉬움이 컸다. 마을의 역사적인 공간으로 재탄생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안타까웠다.
학교 바로 앞에 절산수계원공적비가 있었는데 함양박씨 문중 사람 중에서 숲을 지키기 위해 애쓴 분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마을 주변 숲에서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들이 건강하게 보존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옛 창평북초교

마을 맨 앞쪽까지 걸어 나오니 월영당공 정자와 신도비(神道碑: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 동남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가 있었다. 신도비는 후손들이 세웠는데 설명판을 읽어 보니 한 사람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월영당공 정자는 후손들의 헌금과 행정지원으로 세웠다니 후손들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려는 마음이 읽혀졌다.

긴 시간 동안 동행하면서 많은 설명을 마다하지 않은 박갑식 이장님은 도시에서 살다가 귀향한 지 10년이 되었다. 현재 6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으며 5년 전 마을규약도 만들었다. 또 매년 보름에 당산제도 모신다. 이장님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오는 분이 있으면 이장님이 식사 초대해서 마을 생활을 위한 여러 가지 꿀팁을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이주민 절반 이상과는 소통이 잘 된다. 마을이 커서 힘드시겠다고 했더니 바로 그렇다고 하셨다. 행정에 의뢰해서 마을을 2개 정도로 나누어 달라고 하면 어떻겠는지 묻자 마을 문중 어르신들이 “가족과 친척을 나누면 안 된다.”고 반대하셔서 못한다고 했다.

마을 곳곳에 유적이 있어 볼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풍부한 절산마을은 정말 귀한 보배를 만난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또 이장님 설명 덕분에 이곳에 남편 지인이 살고 있어 몇 년 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 그래서 와본 것 같았구나!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다시한번 잘 보존되어있어 아름다운 ‘100년 넘은 육송 군락지’를 감상했다. /양홍숙 전문기자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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