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38화)
                              10. 1595년 4월

능주는 순간 움찔했다. 듣고 보니, 떡배에게 위험을 강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낭떠러지에 떨어졌을 때의 참혹한 장면이 떠올랐다. 능주는 진저리를 쳤다. 석청을 딸 욕심이 너무 앞선 것이 화근이었다.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 자기 혼자서는 석청을 딸 꿈도 못 꾸었고, 다른 꾼들을 부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면서 떡배를 비웃었다는 생각에 능주는 저절로 목소리가 낮아졌다.
 
 “설마 내가 동상이 그러기를 바라겄는가? 장군님께서 동상 부모님 때문에 목숨 걸고 약조했고, 또 그 약조를 지키려고 기병을 하셨는디, 동상이 그걸 모른 것 같아 부애가 나서 언성을 높였당께.”
  능주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약간 떨구고 있었다.
  “어찌 그 은혜를 모르겠습니꺼? 그걸 잊었다면 사람도 아니지예! 그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저도 예? 어떻게든 석청을 따보려고 궁리 중임니더. 석청을 빨리 따야 행님이 사향노루 사냥을 도와줄 거 아입니꺼?”

떡배가 말끝에 힘을 주었다. 목소리의 크기로 자기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어쨌든 오늘 석청을 딸 것이고, 방법을 궁리 중이라는 말에 더 이상 떡배를 몰아 부칠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의기투합해서 석청을 따는 게 훨씬 생산적이었다.
  “궁리하고 있다고?”
  “행님,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꺼?”
  “뭔디?”
  
능주는 표정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보다 밑에서 올라가는 게 덜 무섭다 아입니꺼? 칡넝쿨을 저 바위 위에 있는 소나무 밑동에 묶어 안전줄로 삼고, 밧줄을 밑동에 걸어서 양쪽 끝을 바닥에 내립시더. 한쪽 끄트머리는 행님 허리춤에 묶고 한쪽 끝은 제가 밑에서 당기면 어떻겠습니꺼? 행님이 칡넝쿨을 잡고 올라갈 때 내가 당겨주면 훨 수월할 거 아입니꺼? 행님 몸도 가벼우니 마, 제가 너끈히 올릴 수 있겠습니더!”
  
떡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위에서 내려올 생각만 했지, 밑에서 올라가는 방법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떡배가 서서히 줄을 풀어주면 내려오는 것도 수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능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시도하는 방법이라 자신이 없었다.
  “와, 저를 못 믿어서 그렇습니꺼?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하지 마입시더!”
  “처음이라 자신이 없어서 그라제, 동상을 못 믿어서가 아니여.”
  “행님은 칡넝쿨에 매달려 석청을 따고, 내는 행님이 필요한 도구를 줄에 매달아 올리고, 필요 없는 도구는 다시 내리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예? 아무튼 결정은 행님이 하이소.”
  
떡배는 시선을 돌려 산새를 살폈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줄을 타고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능주는 고민에 빠졌다. 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도, 줄에 매달려 올라가는 것도 위험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능주는 왜 지금 석청을 따야 하는지,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몇 번이나 물었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덕령이는 목숨 걸고 전장으로 나갔는데, 그런 덕령이에게 해드릴 만한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령이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싸우러 갔지만, 나라가 없으면 자기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 결국은 자기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덕령이에게 석청을 전하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게 뻔했다. 암벽을 오르는 위험은, 전장에서 왜군과 싸우는 것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보다 떡배가 제안하는 방법이 나을 듯했다. 만에 하나라도 떡배가 줄을 놓아버리거나, 힘을 쓰지 않는다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랐다. 오르기 전에 떡배와 충분히 교감하고, 치밀한 작전을 짜야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없다면 위험을 자초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둘은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밧줄이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떡배 허리춤에 끝을 묶어 놓고 힘을 쓰기로 했다. 도구는 망태기에 담아 올리고, 사용하고 나면 바로 내리기로 했다. 능주가 올라가서 다시 말하겠지만 올리는 순서도 정했다. 훈연기는 올라갈 때 가져가고, 망치와 정, 단지 순으로 올리기로 했다. 둘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칡넝쿨을 엮었다. 중간 중간 칡넝쿨을 잡고 둘이 힘껏 잡아당기며 튼튼한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떡배는 밧줄과 칡넝쿨을 어깨에 메고 직벽을 멀리 돌아, 직벽 위의 소나무로 향했다. 밧줄은 오랏줄이었다. 두껍고 튼튼해 능주 같은 사람 세 명을 한꺼번에 매달아도 버틸만큼 튼튼했다. 떡배가 소나무로 오르는 동안, 능주는 마른 나뭇가지와 소나무 생 이파리를 구해왔다. 능주는 훈연기에 부싯깃을 넣고 부싯돌로 불을 붙여 부싯깃에 옮겼다. 부싯깃에 불이 붙자 마른 나뭇가지를 불 위에 올렸다. 훈연기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능주는 떡배가 올 때까지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자주 마른 나뭇가지를 훈연기에 보충했다. 떡배가 소나무에 칡넝쿨을 묶어 아래로 내리고, 밧줄도 소나무 밑동에 걸어 양 끝을 바닥으로 내렸다. 직벽 높이는 얼추 마흔 척 정도고, 석청은 직벽 중앙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었다. 
  
떡배가 돌아오자 능주는 훈연기에 생 솔가지를 넣어 연기를 피웠다. 둘은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이동해 능주는 밧줄 끝을 가슴팍에, 떡배는 허리춤에 묶었다. 능주는 훈연기를 망태기 담아 어깨에 메고 칡넝쿨을 타고 절벽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능주 혼자 힘으로 오르는 느낌이었다. 
  “힘을 쓰는 거여, 쓰는 척하는 거여?”
  “지금 죽을 둥 살 둥 쓰고 있다 아입니꺼?”
떡배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능주가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떡배는 기를 쓰고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 그래도 떡배 힘이 능주에게 오롯이 전달되지 않은 건 소나무 밑동에서 일으킨 마찰 때문이었다. 능주의 몸무게로 생긴 마찰이 떡배의 힘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제 키 높이에 올랐고, 앞으로 세 배는 더 올라가야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턱도 없을 것 같았다. 이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떡배에게 밧줄을 풀어 달라 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내가 위에서 도구를 몽땅 들고 내려갈 텐께, 밑에서 서서히 줄을 풀어줘야 겄네.”
  능주는 바닥에 있는 짐을 모두 챙겨 망태기에 담았다.
  “괜찮겠습니꺼?”
  떡배 눈이 한껏 확장되었다.
  “뭐, 그 방법밖에 더 있는감?”
  “사람을 더 불러서 따면 어떻겠는교?”
  “석청 위치를 노출시키자고?”
능주는 정색했다. 석청꾼들 사이에서는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였다. 그건 불문율이었다. 능주는 석청을 발견해도 천이 묶여 있거나, 산에 없는 물건이 놓여 있으면 처음 발견한 사람의 표식이라고 인정하여 함부로 따지 않았다. 그런 불문율을 모두가 지킨 건 아니었다. 능주가 표식을 해 놓은 석청도 다음 해에 가면 이미 누가 따간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능주는 일행 없이 혼자 다니는 걸 선호했다. 두서너 명이 짝을 이뤄 산에 오르는 꾼들에 비해 작업 능률은 떨어지지만 마음은 편했다. 옥신각신 다투며 분배하지 않아도 되고, 석청의 위치가 노출될 확률도 낮았다. 
  
  “위험한 거보다, 그기 낫지 않겠습니꺼?”
  “동상이 있는디, 뭔 걱정이여? 함 해보드라고.”
  “까짓 거 마, 한번 해보입시더! 죽기야 하겠습니꺼?”
떡배가 호방하게 말했다. 능주는 떡배 말에 묘한 힘이 생겼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하는 정체불명의 오기 같은 것도 생겼다.
하지만 이내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죽기야 하겠냐는 말에, 문득 떡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씨를 찬찬히 뜯어보던 그 얼굴이. 능주가 죽기라도 한다면, 떡배가 아씨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광옥이가 없는 틈에 욕을 보일지도 몰랐다. 광옥이가 없으면 낭패 아닌가. 그렇게 호언장담하더니 이제 와서 벌침을 핑계로 댄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의구심이 솟구치자 굳이 석청을 따야 하는지 갈등이 일었다. 능주는 떡배가 눈치 채지 않고 떡배 표정을 살폈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행님요? 와 미적거리십니꺼? 나를 믿지 못하겠다 이겁니꺼?”
  떡배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동상을 왜 못 믿어?”
  “얼굴에 그렇다고 써졌는데예?”
  “내가 어디를 봐서 동상을 못 믿겄는가? 젊은 나이에 벌써 눈깔이 삐었는갑네.”
  “그럼 빨리 땁시더. 빨리 따고 물이 나오고, 밤에 잘 수 있는 석굴을 알려주셔야지예? 그란다고 안 했습니꺼?”
  
능주는 난감했다. 하지만 결심했다. 석청을 따기로. 떡배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석청을 따지 않으면, 민경이가 실망할 것이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능주는 이를 앙다물었다. 내려갈 때, 떡배가 잡는 밧줄에 의지하기보다는 칡넝쿨에 더 의지할 생각이었다. 칡넝쿨을 엮으며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칡넝쿨은 믿음이 갔다. 설령 떡배가 줄을 놓더라도 칡넝쿨을 이용해 천천히 내려오면 될 것이었다. 능주는 이를 앙다물고 절벽 위로 올라갔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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