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보면서...

얼마 전 친구들과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다. 

태극기로 목도리나 두건을 만들어 쓰고 사진을 찍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그 사진을 카톡에 올렸더니 금방 댓글이 붙었다. ‘태극기 부대인 줄 알았다.’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라 사랑이 되새겨져야 할 태극기를 보면서 극우들의 광란적 시위가 먼저 떠오르다니. 태극기의 이미지 훼손이 심각함을 느꼈다.

소위 태극기부대라 불리는 극우 정치 집단이 시위 때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 태극기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켰듯이 정치적 행위에 의해 좋은 이미지가 왜곡되거나 오염된 사례가 적지 않다. 

독재정권 시절의 ‘국민총화’, ‘유신’, ‘사회정화’ 등 좋은 의미의 말들이 독재의 합리화에 오남용되면서 개념이 오염되어 이제 이 말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동무’라는 그 아름답고 친숙한 말도 이념이 다른 북한에서 즐겨 씀으로써 남한에서는 ‘친구’라는 말로 거의 대체되었다.

정치 집단들의 자기 포장을 위한 언어 오염은 ‘엄마부대’와 ‘개혁의 딸들’에서 극에 달한다. ‘엄마’와 ‘딸’, 듣기만 해도 뭉클한 사랑스런 말이 묻지마식의 맹종적인 편향된 정치 집단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에 분노가 치민다. 그래도 엄마와 딸은 말 그 자체의 보편성과 위력이 워낙 강해 이미지 훼손에 의한 언어 사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단어는 ‘국민의 힘’이다. 

권력의 부패를 응징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민주주의 수호를 상징하는 것이 ‘국민의 힘’인데 보수정당의 이름이 ‘당’자가 빠진 ‘국민의힘’이니 만일 이 정당이 잘못하여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국민의 힘’당이 아닌 ‘국민의 힘’이란 단어의 사용을 꺼려할 것이다.

더구나 ‘국민의 힘’은 현재 국민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여당이다. 애초에 ‘국민의 힘당’으로 했어야 한다. 영어 명칭에는 ‘PEOPLE POWER PARTY’로 당(PARTY)이 들어있다. ‘시대전환’도 ‘시대전환당’이 맞다. 

정당 이름에 그 정당이 추구하는 좋은 이미지의 보편적인 언어와 정치 집단이라는 ‘당’을 붙임으로써 설사 질타를 받아도 정당이 받아야지 좋은 이미지의 보편적 언어에 싫은 감정이 반영되어 그 언어가 퇴색되지는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당 이름에 ‘당’과 함께 주로 사용된 언어로 ‘자유’, ‘민주’, ‘공화’, ‘정의’, ‘진보’,‘국민’ 등은 아직도 많이 사용되는 사랑받는 언어들이다. 

어릴 때 ‘빨갱이’는 나쁘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빨간색의 예쁜 꽃을 싫어할 때도 있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국민들의 애증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좋은 이미지의 국민적 상징이나 보편적 언어가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시 태극기부대가 떠오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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