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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 추월산 길라잡이(42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42화)
                              12. 1596년 8월

한가위 아침은 고소한 냄새로 시작되었다. 집집마다에서 노릇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돌샘에서는 아낙들이 줄을 서서 대기했다. 돌샘 물로 두부를 써야 맛도 좋고, 모양도 잘 나온다고들 했다. 어떤 아낙은 대바구니를 이고 부리나케 걸었다. 방아가 없어 옆집으로 방아를 찧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고샅에는 겅중겅중 뛰며 어머니를 따르는 아이도 있었다. 한가위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했다. 하인들의 표정도 더없이 밝았다.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능주 아저씨도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저런 표정일 것이다. 민경이는 미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걸음을 재촉했다.

담양부사 댁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부사 집안도 역시 분주했다.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리고, 마루에서 전을 부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소한 전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이곳 역시나 들뜬 표정과, 경쾌한 걸음으로 곡간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우물 가로, 우물가에서 마루로, 하인들이 바삐 다녔다. 한가위 날은 다른 무엇보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 움직임이 민경이의 등장에 일시에 멈추어졌다. 다들 민경이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민경이는 대감마님을 뵈러 왔다고 알리고, 기다렸다.

 “부인께서 이른 아침부터 어인 행차십니까? 얼굴이 퀭한 걸 보니 무슨 일이 있으시군요. 어떤 일입니까?”
담양부사가 정중하게 민경이를 사랑채로 안내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민경이는 다른 남자와 마주한 적 없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염치 불구하고 따라 들어갔다. 머뭇거림도 없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고 민경이는 속으로 놀랬다. 나에게 이런 면모도 있었나 싶었다. 
  “장군님께서 반역죄로 압송당했다 하옵니다.”
  “반역죄로요? 언제요?”
부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민경이는 약간이나마 희망이 생겼다. 반역죄로 판명이 났다면, 변서로 고지를 했을 테니 지금쯤 담양 부사가 모르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칠월 스무닷새 날 체포당하셨다 하옵니다.”
  “이런…….”

부사가 깊은 한숨을 토했다.
  “장군님께서 반역하실 분이 절대 아니잖아요?”
민경이가 물었다.
  “아무렴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지요.”
부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방도를 찾아보십시다. 먼저 전후를 파악하고 상소를 올려보겠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저도 상소라도 부탁하려고 서둘러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기병을 부탁했으니, 당연히 상소를 올려야지요.”
  “그래서 부사님께 먼저 찾아뵈었습니다. 긴히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긴한 부탁이라니요?”

민경이는 허리춤에서 패물 보자기를 꺼내 부사 앞으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부사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자기에게 내민 줄 알고 손사래까지 쳤다.
  “대감마님께서 관찰사를 찾아뵈셨으면 해서요. 관찰사님께서 우리 원경 아우가 효심이 깊다고 어여삐 여겨 조정에 천거까지 해주셨습니다. 장군님이 원경이 매형이라는 것도 잘 아실 테니 찾아뵈시면 어떻게라도 도와주실 겁니다. 관찰사님께 그냥 부탁드리기 뭐해 준비했으니, 말씀 좀 잘 해 주십시오.”
  “그건 저도 잘 알지요. 허나 부인께서 직접 찾아뵈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 생각도 했습니다만, 장성 현감님을 찾아뵈려고 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상소를 올려야 더 나을까 싶어 찾아뵈려는 겁니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대감마님께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서둘러서 관찰사님을 찾아봬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등을 떠밀었으니 당연히 서둘러야죠. 장성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말이라도 내 드릴까요?”

부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쓰럽고, 급한 마음에 민경이가 여자라는 걸 깜빡 한 모양이었다. 민경이는 말 타는 거라도 배워놓을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탈것을 관장하는 관리였으니 배울 여건은 충분했다. 하지만 민경이는 여자였다. 아무리 때를 써도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장에 올라간 적도 없고, 한가위라 들떠 있을 텐데, 노에게 말을 끌게 할 수 없잖습니까?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보아하니 식전인 것 같은데, 식사라도 하고 출발하시지요.”
부사가 밖을 향해, 희원이 있느냐, 하고 불렀다. 쇤네를 찾으셨습니까? 하는 하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녀에게 밥상을 차리도록 시킬 모양이었다. 민경이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거듭 부탁드린다고 정중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사 집에서 나온 민경이는 수리동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장성으로 떠나기 전에 덕령이가 오는지 저 멀리까지 살펴보고 갈 생각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민경이를 알아보고 허리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한가위를 맞아 인사 차 부사 댁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표정도 있었고, 퀭한 얼굴로 아침부터 부산하게 다니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표정도 있었다. 민경이는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말없이 고개 숙여 답례하고 수리동산으로 향했다. 수리동산에 오르기 전에 장군봉을 보았다. 까마귀가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담양 부사와 관찰사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까마귀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거벼워진 건 사실이었다.

경사진 길을 오르는 길옆에 산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한가위를 맞아 벌초한 탓에, 하나 같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벌초 더미에서 야릇한 풀 내음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싫지 않았다. 후손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봉분을 향해 넙죽, 큰절을 올렸다. 아직 어린아이는 큰절을 따라한다고 엉덩이를 한껏 올리고 절했다. 어떤 산소에서는 둘레둘레 모여 앉아 음복을 하기도 했다. 덕령이와 광복이가 있다면, 우리 산소에서도 저기처럼 제사를 지내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조상님께 죄송한 마음이 솟구쳤다. 덕령이가 돌아온다면 뒤늦게라도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경이는 시선을 거두고 언덕으로 향했다.
  아!

민경이는 갑자기 두근거렸다. 
저 멀리 산기슭에서 누군가가 움직였다. 혼자였다. 삼삼오오 성묘하는데 그만 유독 혼자서 담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덕령일지도 몰라 손바닥으로 채양을 만들어 눈썹에 붙이고 보았다. 너무 멀어서 구분하기 어려웠다. 걷는 속도를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민경이는 시선을 붙박아놓고 살폈다. 그는 담양으로 오다가 산으로 방향을 틀어 잡풀이 우거진 산소로 향했다. 그곳은 덕령이 조상이 묻힌 곳이 아니었다. 그가 성묘를 하기 전에 낫으로 벌초하는지 우거졌던 잡풀이 하나둘 사라지고 깨끗한 봉분의 면적이 점점 넓어졌다.

아무리 봐도 덕령이가 아니었다. 덕령이가 풀려나 한양에서 담양까지 걸어왔다면 기진맥진해 있을 것이다. 장사라지만 문초를 받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런 몸으로 남의 산소에 벌초할 리도 없고, 벌초할 이유도 없었다. 갑자기 맥이 풀렸다. 다른 기척이 느껴지는지 한참이나 보았지만 혼자인 사람은 없었다. 덕령이가 무리 지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 무리의 움직임도 눈여겨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산소로 향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민경이는 휘청이며 경사진 길을 내려왔다. 걸어서 내려온다기보다, 아래에서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미끌어지듯 걸었다. 가다가 휘청, 중심을 잃어 풀을 손에 잡았다. 하필이면 가시덤불이어서 손에 잔가시가 박히고 약간의 피가 흘렀다. 잔가시를 빼고 입술로 피를 빨아 땅에 뱉은 다음 다시 길을 내려갔다. 언제나 그랬듯 내려서서도 시선을 멀리 던졌다. 낮은 평지라 그렇게까지 멀리 보이지 않았다. 덕령이라고 생각되는 남자의 움직임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민경이는 장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봉산 방화동에 다다르니, 방청매가 눈에 들어왔다. 산은 낮아도 탁 트인 벌판에 우뚝 솟은 산이라 멀리 보일 것 같았다. 방청매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지 살폈다. 땔감용 나무를 하러 다니는 오솔길이 나 있었다.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삼백 여정도 걸었을 무렵, 풀숲에서 갑자기 장끼가 퍼드득 날아올랐다. 민경이는 깜짝 놀라, 저절로 걸음이 멈춰졌다.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장끼나 다른 짐승이 또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라, 시야를 부채꼴로 던져가며 걸음을 옮겼다. 고라니가 풀숲에서 갑자기 달아났다. 이미 수상한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몽성산, 불태산, 추월산, 병풍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양에서 담양으로 오려면 장성을 거칠 것이다. 장성 쪽으로 멀리 시선을 던졌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만 하나같이 성묘객 일색이었다. 비린내 나는 생콩이라도 있다면 바로 씹어 먹을 정도로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조갈도 느껴졌다.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마을 우물에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길을 재촉했다.

땀벌창이 된 몸으로 미시가 다 돼서 비아에 접어들었다. 비아에서 잠시 쉬었다가  마흥제에 겨우 다다랐는데, 못재가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못재를 넘어야 장성이 나올 것이다. 돌 위에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 홍색의 화문단 혜를 벗었다. 발에 물집이 생겨 걷는 게 불편해서였다. 민경이는 버선을 벗어 물집을 확인하고 다시 버선을 신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걸었던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 광주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버지가 달구지를 태워 주웠다.

문득 아버지가 그리웠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달구지를 바로 내주었을 것이다. 그럼 발에 물집도 생기지 않았고, 더 일찍 장성으로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신다고 해도 민경이를 알아볼지 의문이었다. 봄볕에 타면 딸의 얼굴도 몰라보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을임에도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다. 체감으로는 봄볕보다 강한 듯했다. 거의 온종일 걸었으니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렸을 게 뻔했다. 

민경이는 혜를 신고 일어섰다. 물집 때문에 따갑고 불편하지만, 덕령이가 받을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 덕령이는 생사의 기로에 있을 게 아닌가. 그런데 물집 정도로 길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다시 길을 걸었다.

못재를 오르를 때는 발에 생긴 물집이 터졌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허기도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어제 덕령이의 소식을 들은 후부터 끼니를 걸렀다. 허기지고, 기진맥진한 몸에, 물집이 터진 발로 재를 넘는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민경이는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 시라도 늦으면 덕령이에게 큰일이 터질 것만 같아서였다.

민경이는 어칠비칠 오르막길을 걸었다. 발바닥에서 심한 쓰라림을 느끼면서도 시선은 멀리 두었다. 행여나 덕령이가 올까 봐 발밑을 보고 걸을 수 없었다. 민경이는 연신 헛방을 디뎌 휘청, 중심을 잃었다. 그때마다 바로 중심을 잡고 헐근거리며 잿마루에 올라섰다. 숨을 고를 염도 없이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장성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민경이가 두리번거리며 찾는 건 덕령이었다. 아무리 시야를 넓혀보아도 덕령이는 보이지 않았다. 

내리막길은 오를 때보다 더 힘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자갈을 밟으면 여지없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땅을 짚고 곧장 일어섰다. 역시나 시선은 최대한 멀리 두었다. 다시 자갈을 밟았다. 또 엉덩방아를 찧었다. 땅을 짚고 벌떡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민경이는 그래도 시선을 발 앞에 두지 않았다. 또 자갈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다시 걸었다. 엉덩이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걸음을 재촉했다. 또 자갈에 중심을 잃었다. 이번에는 꼬리뼈에서 둔탁한 느낌이 전해졌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덕령이는 뼈마디가 바스러졌을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쯤이야. 민경이는 이를 앙다물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걸음걸이는 어정어정, 휘청휘청, 흔들흔들했다.

“현감님 댁을 좀 알려주세요.”
민경이는 지나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부탁했다. 하지만 선뜻 알려주지 않았다. 새까만 얼굴에, 재를 내려오면서 미끄러진 통에 치마 엉덩이 부분이 흙투성인데다, 퀭한 얼굴을 보고 말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누더기 옷이었다면 비렁뱅이 취급할 기세였다. 어떤 이는 옷 때문에 현감의 애첩이라도 되는지 생각했다가, 꼴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현감에게 버림받아 미쳐버렸다고 생각한 듯했다. 어떤 이는 어정어정 걷는 것을 보고 중풍에 맞은 환자로도 취급했다. 

“만재야, 의원님 좀 모시고 오너라.”
장성 현감이 황급히 말했다. 민경이는 묻고 또 물어 어렵게 현감 댁을 찾아갔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 안방 앞에서 현감을 부르자, 현감이 문을 열고 나와 민경임을 알아보고는 크게 소리친 것이었다. 다들 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현감의 지시에 서른 후반의 하인이 행랑채에서 황급히 나왔다. 입에 음식이 들은 듯 입을 오물거리며, 예, 하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말릴 틈도 없었다. 현감은 만신창이가 된 민경이를 급히 사랑채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직접 이부자리를 펴 주며 좀 누우라고 했다. 민경이는 누울 수 없었다. 덕령이가 반역죄로 압송되었다며, 담양 부사에게 했던 것처럼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는 탈진으로 쓰러졌다.

민경이가 눈을 뜬 건 새벽녘이었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어 사위가 고요했다. 살짝 몸을 움직여 보았다. 묵지근한 느낌이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몸을 일으켰다. 다리 전체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발바닥에서도 쓰라림이 느껴졌다. 민경이는 슬며시 문을 열고 도둑고양이처럼 소리 나지 않게, 엉금엉금 마당으로 나왔다. 보름달이 서산에 떠 있었다. 달을 보고 덕령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손을 비비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문득 덕령이가 갇혀 있다는 옥에서도 달이 보일지 궁금했다. 창살 사이로 보일 것 같았다. 덕령이가 잠들지 못하고 달을 보고 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옥에서 풀려나 보름달빛을 밟으며 내게로 다고 오고 있을 것이다. 덕령이의 앞길을 훤히 비춰달라고 달을 보고 다시 빌었다. 

집으로 돌아온 민경이는 부엌으로 들어가 깨끗한 사발을 찬장에서 꺼냈다. 하얀 사발이었다. 사발을 들고 돌샘으로 소리 나지 않게 걸었다. 발소리에 개가 짖으면 부정이라도 탈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뿐사뿐 걸었다. 유령의 걸음 같았다. 돌샘에 도착한 민경이는 역시나 소리 나지 않게 소세를 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사발에 물을 받았다. 사발을 두 손으로 고이 들고 집으로 향했다.

민경이는 등 뒤에서 비추는 달빛의 그림자와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돌샘 물을 조왕 주발에 옮겨 담고 부뚜막 토대에 경건한 마음으로 올렸다. 손을 비비고 절하며 덕령이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조왕신이시여. 정묘생 김덕령이 억울하게도 누명을 쓰고 하옥되어 있사옵니다.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고 세를 모아 기병했는데 역모죄로 몰렸다 하옵니다. 그분이 절대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백방으로 호소하였지만 아직 풀려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조왕신이시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성을 드리는 저를 어여삐 여기셔서 덕령이를 보살펴 주시옵소서. 덕령이가 없다면 저에겐 어제도 없었고, 오늘도 없으며 내일도 없사옵니다. 조왕신이시여 오직 바라옵니다. 신께서 살피고 보호하여 주시기를. 민경이는 자기 목숨을 갈구하듯 정성껏 빌었다. 

지극정성에도 덕령이가 풀려나지 않자 민경이는 자기의 행실에 부정 탈만한 것은 없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았다. 행여나 부정 탈까 봐, 부뚜막에 걸터앉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악담은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부뚜막에 함부로 발을 올려놓은 적도 없었다. 조왕신의 심기가 불편할까 봐 언제나 부엌을 청결하게 했다. 부엌에서 부정 탈만한 행실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동안 기도를 올렸던 행적을 곱씹어보았다. 달님께 빌 때도 정갈한 몸으로 경건하게 빌었으니 딱히 부정 탈만한 짓은 없어 보였다. 다음 기도 대상인 미륵바위를 생각했다. 미륵바위를 떠올리자, 불현듯 스쳐간 게 있었다. 

민경이가 여덟 살 때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개선사에 있었던 연등회를 보러 갔다. 그날 관불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겨주면서 소원을 비는 것을 보았다. 민경이는 그때 기억 때문에 마음에 걸린 게 있었다. 미륵바위에 빌기만 했지, 한 번도 씻어준 적이 없다는 사실에, 매우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고 자책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하옥된 덕령이를 위해 지금 민경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뿐인데, 기도에만 치우쳤다는 후회가 가슴 가득 차올랐다.

조왕신께 비는 동안, 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경이는 밥을 안칠 생각도 없이 물동이를 이고 바로 개선사로 향했다. 어귀에 다다라 돌샘으로 물을 길으러 가는 아낙과 마주쳤다. 아낙이 민경이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물은 능주가 길어 나르곤 했으니, 물동이를 인 민경이가 생경했을 터였다. 물이 필요하면 돌샘으로 갈 텐데,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아낙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덕령이가 역모죄로 옥에 갇혀 있다는 소문이 퍼진 탓에 상종하기 꺼린 것이다. 민경이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선사로 바삐 걸었다. 

개선사에 도착해, 석간수를 물동이에 받아, 바가지로 물을 부어 가며 미륵부처를 성심껏 씻겼다. 깨끗한 솜으로 미륵바위의 물기를 닦은 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덕령이의 무사귀환을 빌기 전에 그동안 한 번도 씻겨드리지 못한 불경함에 대한 사죄를 했다. 앞으로는 올 때마다 씻겨드리겠다고 미륵바위에게 약속하고 기도에 들어갔다. 의금부에 갇혀 있는 덕령이를 보살펴 주시라는 입속말이 오래도록 미륵바위 앞에서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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