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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43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43화)

                              13. 1596년 9월

  “아씨 마님, 또 여기 계셨어요? 몸도 성치 않으신데 그만 내려가십시다.”
능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민경이를 바라보았다. 성치 않은 몸으로, 허적허적 수리동산을 오르는 민경이에게 더 이상 아씨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아씨라고 호칭할 수 없을 만큼 민경이가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발에 잡힌 물집이 아물 새도 없이 눈만 뜨면 수리동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는 민경이가 안쓰러웠다. 마님이라고 불러야지 최소한의 도리를 다한 듯했다. 
  
능주는 용안에서 다녀온 뒤 보고 차, 집에 들렀으나 민경이는 집에 없었다. 당연히 수리동산에 있을 줄 알고 갔는데, 그곳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봉산 방청매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집에서 삼십 리 떨어진 방청매는 수리동산보다 장성이 더 가까웠다. 덕령이가 한양에서 담양으로 내려올 때 장성으로 넘어올 것이라 판단하셨으리라.
  “능주 아저씨, 내일 저하고 한양으로 가실까요?”

능주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한양은 능주도 딱 두 번밖에 다녀오지 않았다. 심부름 때문이었는데, 혼자 몸으로 다녀오는데도 열엿새 걸렸다. 그 머나먼 길을 여자가 간다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여자가 한양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가더라도 가마를 타거나, 달구지를 타고 갔을 텐데 가마도, 달구지도 없었다. 게다가 몸도 만신창이지 않은가.
 

  “그런 몸으로 한양까지요?”
능주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장군님께서 곧 풀려나실 거예요. 몸도 성치 않으실 텐데, 모시고 와야지요.”
민경이 의지가 워낙 강해 보였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듯했다. 
  “풀려나신다면야 당연히 모시고 와야지요.”
능주는 말끝을 흐렸다. 한양까지 길이 멀어서가 아니었다. 민경이의 몸이 성치 않아서도 아니었다. 걷지 못하면 업고라도 갈 것이다. 민경이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데 한양보다 더 먼 거리인들 가지 못할까. 하지만 풀려난다는 보장이 없기에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부사님께서 그러셨어요. 함께 압송당한 곽재우 장군도, 최담년 장군도, 홍계남 장군도, 고언백 장군도 풀려나셨다고. 정탁 우의정께서 우리 장군님을 풀어달라고 임금님을 설득하신다 하시고, 이기 이조판서, 유영경 관찰사, 우리 고모부님께서도 장군님의 무고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신다 하셨으니, 곧 풀려나실 거예요.”

민경이 얼굴에 기대감이 한껏 묻어났다. 어제의 축 늘어지고 핼쑥한 표정과는 달랐다. 오늘 담양 부사에게 기별을 들은 모양이었다. 능주가 용안에서 담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장군의 압송 소식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민경이가 담양 부사를 찾아뵙고 상소를 부탁한 것도 회자되었다. 부사는 민경이가 다녀간 뒤 바로 말을 잘 타는 장졸을 한양으로 보내 전·후 사정을 알아오라고 했다. 그는 한가위 차례도 지내지 못하고 즉시 말을 몰고 올라가 8월 16일 한양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고, 18일 내려와 보고했다. 8월 4일 1차 친국이 있었고, 정탁, 이기, 유영경이 나서서, 심문을 연기할 것을 청했고, 8월 8일 2차 친국 후에, 최담년 장군 등을 풀어주었고, 한가위 기간에 친국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부사가 보고받은 내용이었다. 그걸 민경이에게 모두 전해주었다. 
  
민경이는 왜 기대가 큰지 능주에게 차분히 말해 주었다. 장군의 매형인 김응회도 압송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지만, 장군의 충성심이 어떤지를 의연히 주장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가며 장군이 반역할 분이 절대 아니라고 구구절절하게 밝혔다고 했다. 김응회가 목숨 걸고 주장할 정도라 신뢰가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주장이라는 점이 마음 한 구석에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민경이는 김응회보다는 정탁 우의정에 대한 믿음이 크다고 했다. 
  
민경이가 정탁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전란이 터지자 임금이 피신하기로 했을 때, 대부분 대신들이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함경도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탁은 군사력이 왜군에 비해 열세이므로 명나라와 가까운 평안도로 가서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임금은 정탁의 의견을 따라 평양을 택했다. 많은 대신들이 피신했음에도 정탁은 몸 사리지 않고 임금의 호종 행렬을 이끌었다. 왜군이 평양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자, 임금이 있는 원조정과 세자가 있는 분조로 조정을 나누었다. 임금이 요동으로 망명할 것까지 대비한 것이었다. 

정탁은 세자를 모셨다. 이런 공 때문에 우의정으로 승직했다. 전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정탁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전란 중에는 조선으로 파병한 명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송응창을 영접했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군영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 정도 인물이니 발언권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는 것이었다. 덕령이를 형조좌랑으로 임명받을 수 있게, 충호장이란 직함을 받을 수 있게 추천한 이도 정탁이었다. 곽재우, 유정대사 등이 포상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한 이도 정탁이었다. 정탁이 덕령이를 추천했으니 정탁이 반드시 살려낼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의 압송 때 들은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 때문에 해상으로 물자를 수송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진 왜군은 장군을 제거하려고 계략을 꾸몄다. 왜군이 언제, 어디를 경유해, 어디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렸다. 이 정보를 들은 임금은 장군에게 출정을 명했고, 장군은 계략이라고 판단해 출정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 이순신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해 국문을 했다. 국문이 어찌나 혹독한지 몇 차례 국문이 이어지면 죽을지도 몰랐다. 2차 국문이 있기 전에 정탁이 나서서 이순신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벌을 내린다면 앞으로는 능력 있는 자들이 나라를 위해 힘을 쓰지 않을 거라며 호소했다.

이에 임금이 백의종군을 명하며 이순신을 살려주었다. 이순신을 절체절명에서 구한 이가 정탁이었다는 것은 조선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 정탁이 덕령이의 구명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한 것이다. 국문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민경이에게는 크나큰 희망이었다. 민경이는 그러한 연유로 장군이 꼭 풀려나리라고 믿었다. 정탁 대감이 장군과 함께 추천한 곽재우 장군이 풀려났다는 소식에 한껏 부풀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것 참 잘됐구먼요. 언제 출발하실란가요? 말씀만 내리시면 바로 여장을 꾸리겄습니다요.”
능주가 고무된 표정으로 말했다.
  “발에 물집이 아물면 바로 출발하시도록 하시죠. 이런 발로 한양까지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아요.”
  “당연히 어렵지요. 물집이 잡힐 때까지 인자부텀 여기 오지 마시와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으니, 발 관리 잘해서, 하루빨리 장군님 모시러 가야지요.”
  “잘 생각하셨구먼이라우. 그람 인자 내려가시지요.”
  “아니에요. 기왕 올라왔으니, 조금만 더 있다 내려갈게요. 먼저 가서 쉬세요. 용안까지 다녀온 여독이 덜 풀리셨을 텐데.”
  “쇤네는 팔팔합니다요. 안 쉬어도 됩니다요.”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봅니다. 아직도 기력이 넘치신 걸 보니.”
능주는 모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민경이가 이런 농담을 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덕령이가 기병한 이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작거려도 말이다. 
  “아매도 산을 많이 타서 그런가 봅니다요. 이런 날을 대비하려고 석청을 따러 다니게 하셨는가 봅니다요.”
능주도 농담 삼아 말했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럼요. 대감마님과 아씨마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당께요.”
  “저는 그렇지 않아요. 장군님께서 워낙 좋아하셔서 아저씨께 부탁드린 거지, 그런 생각은 추호도 못했어요.”
  “허허, 그럼 장군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봅니다요.”
  “혹시, 우리 장군님이 걷는데 불편하시면 능주가 좀 업어주실 수 있지요?”
  “그렇다마다요!”
  
능주는 문득 광옥이가 떠올랐다. 그동안 민경이 입에서 광옥이를 업어달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광옥이를 용안까지 데리고 가기 전에도 그런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광옥이도 생전 처음 먼 길을 걸었고, 비탈지고 좁은 산길까지 걷느라 다리에 물집이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아실 텐데도 찜부럭도 없었다. 민경이가 광옥이의 체력을 믿었는지도 몰랐다.

사실 광옥이는 시종일관 사내대장부처럼 늠름하고 당당하게 걸었다. 쉬었다 가자는 말을 능주가 먼저 꺼냈다. 산에 오르내리며 다져진 능주보다 광옥이 걸음이 빨랐다. 갈림길에 접어들지 않는 이상 언제나 광옥이가 앞서 걸었다. 능주는 허겁지겁 광옥이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었다. 그런 체력 때문이 아니라면 오직 덕령이 생각 때문인지도 몰랐다. 먼 길 가는 것 보다야 혹독한 심문으로 고초를 겪고 있을 덕령이 때문에 광옥이가 뒷전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그렇게 해주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합니다.”
  “그런데요, 아씨 마님?”
민경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을 업어달라는 말은 한 번도 하신 적 없으시다는 거 아셔요?”
  “그랬나요?”
  “그렇다니까요?”
  “광옥이는 근행석이 많이 업어주었잖아요?”

능주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민경이가 근행했을 때 따라간 광옥이가 혼자 놀다가 지치거나, 돌이 따사로우면 근행석 위에서 잠들곤 했다. 그걸 근행석이 업어주었다고 표현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틀린 표현 같지도 않았다. 아무튼 민경이 얼굴에 화색이 돋고 조급증도 사라진 것 같아, 안심이었다. 이 정도라면 민경이가 혼자서도 집으로 돌아오기에 무리 없어 보였다. 능주는 민경이를 남겨둔 채 뒤돌아섰다. 비탈길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척 경쾌했다. 석청 몇 단지를 봇짐에 지고 내려올 때보다 더 가벼웠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능주는 마당에 서서 민경이가 안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민경이가 덕령이를 데리러 한양까지 간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진 후라 아낙들이 한두 명씩 마당으로 들어섰다. 노자에 보태라고 은전 몇 닢을 건네주고, 요기하라고 마를 가져오고, 주먹밥을 싸 오고, 고구마며, 배, 단감, 사과 등을 가져와 쭈뼛쭈뼛 건넸다.
  
  “한양을 버리고 몽진한 임금이 어찌 우리 장수를 반역죄로 몰 수 있당감?”
  “그랑께 말이여! 적반하장도 유분수랑께.”
  “말이사 바른말이제. 우리 장군님 같은 분이 팔도에 어디 있기나 하당감요?”
  “너무 출중해서 조정에서 시기, 모함했다고들 안혀?”
  “그런 간신배들을 싹 잡아다 족쳐야 쓴디, 어만 우리 장군님만 잡아다가 뭔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겄당게라우.”
  “임금님이 1등공신으로 호종한 신하를 더 많이 뽑았담서?”
  “누가 아니래? 도망갈 때 호위하는 게 무신 공신이라고!”
  “클메 말이여. 싸우는 족족 왜군을 쳐부순 이순신 장군님하고, 가마 옆이나 따라갔던 신하들이 어떠코롬 같은 1등공신이 될 수 있다요?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요?”
  “괜히 우리 새끼만 의병으로 갔다가…….”

아낙들이 정신없이 흉을 보았다. 자식 생각에 눈물을 훔친 아낙도 있었다. 집안에 들어선 아낙들은 너나없이 전란에 식구들을 잃었다. 의병에 가담하여 전투 중 목숨을 잃었으니, 몽진한 임금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임금님을 흉보는 사이에 민경이가 방에서 나왔다. 아낙들이 입을 닫고 민경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민경이가 댓돌 위에 가지런히 있는 혜를 신고 아낙들 곁으로 다가서서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우리 장군님을 풀어주실 거잖아요? 저는 그거면 되었네요.”
  
민경이 말에 아낙들은 더 이상 흉을 보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고, 장군님 꼭 모셔오라고, 장군님만 살아오신다면 자기들이 먹여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민경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능주도 덩달아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옴을 느꼈다. 민경이가 아낙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분들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는지, 오래도록 손을 마주 잡았다. 

이윽고 대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또 다른 아낙들이 몰려들었다. 손에 보자기나 꾸러미들이 들려 있었다. 그들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꾸러미를 민경이에게 건넸다. 고구마 같은 먹을거리가 대부분이었다. 민경이가 너무 많다고 사양했지만, 아낙들이 기어이 능주 손에 쥐어주었다. 능주는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한사코 건넸으니까. 능주의 양팔이 축 쳐졌다. 인심의 무게 때문이었다. 아니, 민심의 무게 때문이었다. 민경이는 늦게 들어선 아낙들의 손을 또 일일이 마주 잡으며 감사함을 전했다. 덕령이의 무사귀환과 먼 길 떠나는 민경이를 걱정하는 말이 마당에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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