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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44화)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44화)
                              13. 1596년 9월

가을 햇살은 따사로웠다. 가을걷이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들녘 곳곳에서 황금물결이 넘실거렸다. 바람이 불었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니 빨리 결실을 맺으라고 독촉하러 다니는지도 몰랐다. 고개 숙이고 서 있는 벼들이, 도미노처럼 몸을 숙였다가 바른 자세를 잡았다. 전란이지만 침공을 당하지 않아 유래 없는 풍년이라고 농부들은 희색이 만연했다. 들로 향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했다. 능주 발걸음도 가벼웠다.

바람은 황금 들녘을 지나 능주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시원했다. 민경이 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그동안 발 관리를 잘 한 모양이었다. 한양까지 가는 데 무리 없어 보였다. 정 힘들어하면 먹을거리를 낯선 이에게 나누어주고 민경이를 업어서 가면 될 것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업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치솟곤 했다.
  
고서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구지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달구지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민경이가 근행했을 때, 근행석을 달구지에 싣고 올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니, 영락없었다. 저 달구지에도 돌이 실려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광옥이가 떠올랐다. 근행석 위에서 잠에 빠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얏, 얏, 기합을 내지르며 죽검을 휘두르던 광옥이, 민경이가 죽검을 잡지도 말라는 불호령에, 낫을 들고 대밭으로 가서 죽검을 만들어 등 뒤에 숨기고 슬금슬금 돌아오던 광옥이, 사내대장부가 장차 큰일을 하려면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당차게 말했던 광옥이, 민경이가 장군을 걱정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버님은 꼭 살아오실 테니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했던 광옥이, 용안현으로 떠날 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민경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돌아보지 않고 의연한 척하며 걷던 광옥이, 그때 들썩이던 어깨, 민경이가 새로 지어드린 옷을 한참이나 갈아입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던 광옥이, 곧 어머님께 달려갈 테니 건강하게 계셔야 한다고 꼭 건강하셔야 한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해달라던 광옥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능주는 광옥이가 그리웠다. 
근행석 위에 올라 죽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능주도 죽검을 들고 광옥이랑 대련을 해보고도 싶었다. 덕령이와 인경이가 대감 댁 뒤뜰에서 대련했던 것처럼 말이다. 석청을 따러 갈 때도 함께 다니고 싶었다. 석청을 따는 데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광옥이가 산 정상에 발을 딛고 서서 세상을 호령하는 호연지기를 키웠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화랑들도 산을 누비며 호연지기를 키웠다고 했으니 광옥이도 그랬으면 싶었다.

덕령이는 무등산 지왕봉에서 바위와 바위를 뛰어 건너며 무술을 연마하고 체력과 담력을 길렀다고 했다. 덕령이의 핏줄을 물려받은 광옥이가 못할 리 없을 것이다. 수련 중 광옥이가 목말라하면 봇짐을 풀어 단지에서 꿀을 꺼내면 될 것이다. 산속 어디에 물이 있는지 구석구석 알고 있으니 그리 가서 청미래덩굴 잎으로 물을 떠먹이면 될 것이다. 
  
왜 진즉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웠다. 가슴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기회는 있을 것 같아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광옥이가 돌아오면 어느 산에를 먼저 오를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가까운 무등산에 먼저 오르고, 다음으로 추월산에 오르고, 그 다음에는 병풍산, 강천산, 동악산, 백아산, 선운산, 불갑산, 지리산……. 상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광옥이가 훨씬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도련님은 어떤 인물이 되고 싶으셔유?”
전란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광옥이가 일곱 살 이었을 때 능주가 물었다. 광옥이 옆에 죽검이 있었고, 옷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임금님을 지키는 충신이 될 거에요.”
광옥이가 호기롭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무예 수련에 열심이군요.”
  “환벽당에서 배우는 논어 공부에 비하면, 무예 수련은 찰나에 불과해요.”
  “소인은 논어가 뭔지 잘 모르옵니다만.”
능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서 중 하나랍니다. 공자님 말씀이 많이 들어 있는데, 공자님께서 그러셨어요. 마음만 먹으면 효도는 개나 소도 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효도를 하라는 말씀이지요. 충도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개나 소, 누구나 충을 할 수 있지만 진정성이 일도 없는 충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진정한 충을 실천하려고 공부 중이랍니다.”
  “도련님은 틀림없이 훌륭한 충신이 되실 거구먼유.”

능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인 신분에 그럴 순 없었다. 마음뿐이었다. 
광옥이가 충신이 될 거라는 확신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광옥이의 드높은 기개 때문이었다. 덕령이 집은 터의 기운이 워낙 강했다. 손님들이 자고 가려고 사랑채에 누웠다가도 기에 눌려 벌떡 일어나 줄행랑치듯 한밤중에 집을 나가곤 했다. 아침까지 자는 경우는 열에 한 명 정도였다. 능주는 가장 기가 약하다는 구석방에서 기거하면서도 벌떡 벌떡 잠에서 깨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날이면 아침에 얼굴이 푸석했다. 몸도 찌뿌듯했다. 

광옥이는 달랐다. 
광옥이 방은 기가 가장 강하다고 했다. 그 방에서 자면서 한 번도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으로 식은땀을 흘리지 않았다. 아침이면 편안한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면서, 아주 잘 잤다고 했다. 사람들은 덕령이 기가 워낙 세서 강한 집터의 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민경이도 장군님 못지않기에 기운을 이겨내고 편히 살 수 있다고들 했다. 사람들의 평처럼 기의 세기로 본다면 광옥이가 한 수 위이지 싶었다. 아침이면 두 사람보다 광옥이의 화색이 더 밝았다.
  
두 번째는 광옥이 체력이었다. 
덕령이네는 소문난 장사 집안이었다. 덕령이야 몇 백 리 너머까지 소문이 나돌 정도로 익히 알려졌지만, 손 위 누이도 만만치 않았다. 누이가 남장을 하고 덕령이와 씨름을 했는데 누이가 이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누이가 힘이 약했다면 그런 소문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덕령이는 남매가 특출한 장사인데, 광옥이 또한 그러했다. 또래 아이들하고 씨름을 했는데 덩치가 두 배나 커 보이는 상대를 시작하자마자 눕혀버렸다. 그 아이는 다시 붙자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백중날이었다. 
백중은 과일이 풍성한 계절의 복판에 있었다. 백중은 시쳇말로 머슴들의 날이라고 했다. 주인이 머슴에게 용돈을 주며 하루를 쉬게 했다. 머슴들은 마치 자기들의 날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것처럼 백중을 즐겼다. 머슴들이 너나없이 돈과 힘을 소진했다. 장에 나가 물건을 구입하고, 씨름을 하고, 힘자랑을 했다. 성촌마을 머슴들은 백중날이면 하는 습속이 있었다. ‘들독’ 들기였다. 들독 들기는 마을 가운데 자리한 당산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누가 가장 힘이 센지 보려고 당산나무 아래에서 빙 둘러 진을 치고 힘자랑을 구경했다. 

7살 광옥이도 사람들 틈에서 자리 잡고 구경했다. 들독은 다양한 크기로 준비되었다. 가장 큰 것은 이백 근, 그 다음은 백오십 근, 그 다음은 백 근, 그 다음은 오십 근 순으로 되어 있었다. 낮은 들독부터 들어 열 걸음 이상 걸어야 통과했음을 인정받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결승에서 서른세 살의 용이와 스물아홉의 영태가 만났다. 결승은 같은 무게의 들독을 들고 누가 더 멀리 옮기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렸다. 이백 근짜리 들독은 덕령이 외에 그 누구도 들은 적 없었다. 잡기 불편하게 돌이 둥글둥글해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태는 백오십 근짜리 들독을 들고 낑낑거리며 서른일곱 자를 옮겼다. 상기된 얼굴로 이를 앙다물고 힘을 쓴 용이는 스물여섯 자를 옮겼다. 

승부가 결판났다. 사람들은 영태에게 열렬한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를 건넸다. 이 순간만큼은 영태가 영웅이었다. 영태 주인은 영태에게 세경을 올려주겠노라며 좋아했다.
어른들의 힘자랑이 끝나자 열 살 이하의 아이들이 흉내를 냈다. 아이들은 오십 근짜리 들독을 들어보려고 시도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가 포기하면 다른 아이가 들독 앞에 자리 잡고 들기를 시도했다. 실패, 또 실패, 또 실패였다. 실패의 연속이었고 이제 들독을 들어보려는 아이가 없었다. 
그때 광옥이가 슬금슬금 나가 오십 근짜리 들독 앞에 섰다. 광옥이가 들독 앞에 서자 이목이 집중되었다. 광옥이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들독을 들었다. 겨우 무릎 높이로 들고는 바로 내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영태가 우승한 것보다 더 큰 환호성이 터졌다. 일곱 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틀림없이 아버지를 뛰어넘을 장사라고 감탄의 말과 기대감과 칭찬이 자자했다. 

달구지가 점점 가까워졌다. 
달구지가 무겁게 오는 듯했다. 아니 달구지를 끄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그렇게 무거워 보일 수가 없었다. 봉두난발에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데다 피투성이었다. 몰골이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터벅터벅 가까이 다가왔다.
  “아주버니!”
민경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김응회였다. 
거지나 진배없는 모습이지만 분명히 김응회였다. 그는 초점을 잃은 듯한 흐리멍덩한 모습으로 걷더니 민경이의 등장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장이 뒤집어질 것 같은 역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능주는 섬뜩한 예감이 온몸에 스치는 것을 느꼈다. 민경이도 그런 듯했다. 김응회를 일으켜 세울 생각도 않고 불길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주저앉은 김응회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정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처남이라고……. 김덕령 장군이라고……. 하얗게 질린 민경이가 급히 천을 들어 달구지를 살피고는 이내 혼절하여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능주도 천을 들어보았다. 주검이었다. 
머리가 없는 시신이었다. 김응회가 입은 옷보다 더 갈기갈기 찢어진 옷에는 피딱지가 두텁게 붙어 있었다. 하얀 옷인지, 적색인지 구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손등이나 팔, 다리, 종아리, 어깨처럼 옷 밖으로 드러난 신체의 모든 부위의 피부가 홀라당 벗겨져 있었다. 양쪽 정강이뼈가 부러져 반듯해야 할 다리가 꺾여 있었다. 그런 시신에서 진물이 흘렀다. 썩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처참했다. 모골이 송연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기가 힘들었다. 능주가 참혹한 주검을 먼저 보았다면 민경이처럼 혼절했을 듯했다. 민경이가 혼절했기에 얼마나 끔찍할지 조금이나마 짐작했고, 그 덕에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능주는 의병의 시신을 수습해와 장사를 지내는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충격을 받았다. 온전한 얼굴이 아니라, 귀와 코가 없었다. 왜군들이 전과로 삼으려고 귀와 코를 벤 것이었다. 정말이지 끔찍했다. 귀와 코가 없는 시신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을 감으면, 아니 눈을 떠도 떠오를 것 같았다. 영원히 눈을 감는 그날까지 떠오를 것 같았다. 끔찍해서 보고 있기 힘들었다. 저절로 몸이 떨렸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능주는 정신을 차리고, 민경이를 들쳐 업었다. 
김응회도 간신간신 몸을 일으켰다. 김응회가 달구지 손잡이를 들려다가, 멈칫했다. 오, 이런! 김응회는 짧게 탄식하고 몸을 숙였다. 허리 숙여 조심스럽게 김응회가 들어 올린 건 덕령이 머리였다. 덜컥거리며 오는 동안 머리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달구지가 멈추었을 때의 경사 때문에 땅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민경이가 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경이가 보았다면 어떤 반응이었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민경이가 그리워서였을까, 광옥이 때문일까. 억울해서인지도 몰랐다. 덕령이는 눈을 뜨고 있었다. 형형한 눈빛이었다. 진물이 흐를 정도로 썩어가는 얼굴이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능주는 김응회에게 눈을 감겨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응회가 손으로 덕령이 눈을 감기려 했다. 하지만 감기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감지 않았다고 했다. 행여나 부인이 감겨드리면 감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등에 업힌 민경이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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