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45화)  
                              14. 1596년 10월

  “아씨 마님, 제발 정신 좀 자리셔유. 이제 그만 가시잔께유!”
능주가 애원조로 말했다.
  “장군님이 올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기다려야지요.”  
수리동산에 오른 민경이는 장성 쪽으로 시선을 붙박아 놓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씨…….”
능주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민경이는 오늘도 해가 이울 때까지 수리동산에서 덕령이를 기다릴 것이다. 
  “우리 장군님은 돌아가신 게 아니에요. 아직 살아 계실 것이고, 반드시 돌아오실 거예요. 오늘 올지도 모르는데, 뫼시고 같이 들어가야지요.”
  
능주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민경이를 보았다. 오늘도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덕령이의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나 지났을 것이다. 겨우 기력을 회복한 민경이가 칩거 중인 김응회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김응회는 덕령이가 억울하게 화를 당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말하기 좋아했던 예전과 달리 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민경이가 그의 입을 열려고 했다. 함께 압송당하고, 옥살이하면서 함께 문초를 당했으니 잘 아실 거 아니냐고, 아시는 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김응회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지, 수시로 진저리를 쳤다. 도무지 입을 열지 않으려는 김응회에게 여러 날 찾아갔다. 그날도 아침 일찍 찾아가 하도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김응회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8월 4일, 첫 심문이 있었다. 임금님이 직접 주재한 친국이었다. 
정탁, 이기, 유영경 등은 심문을 미루자고 했다. 윤두수는 즉각 심문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은 심문에 들어갔다. 함께 압송해온 곽재우, 최담년 등과 대질 심문을 하고 임금이 신료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을 살려줄 도리가 없는지를. 유성룡이 먼저 나섰다. 이 사람이 살 도리는 없습니다만, 아직 그대로 가두어 두고 그의 일당을 국문한 뒤에 처리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했다. 판의금 최형이 즉각 반박했다. 그는 살인을 많이 했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며 조금도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즉시 형신해야 합니다. 다른 신료들이 나섰다. 정탁, 이기, 유영경이 형신을 미루자고 또 건의했다. 정언 김택룡이 최형을 거들고 나섰다. 국가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즉시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임금이 형신을 명했고, 정강이를 맞아 덕령이는 정강이뼈에 금이 갔다. 
  
8월 8일 2차 심문이 있었다. 역시 임금이 주재하는 친국이었다. 
정강이뼈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덕령이는 심문장으로 끌려갈 때 반듯하게 걸었다. 임금은 최담년, 과재우, 금응회, 등에게 경위를 물었다. 임금은 친국 후 덕령이만 남기고 석방을 명했다. 덕령이에게 또다시 형신이 가해졌다. 무지막지한 매질에 정강이뼈가 바스러졌다. 바닥에 피가 낭자했다. 그래도 비명 한 마디 지르지 않는다고, 덕령이가 독하다고 신료들이 쑥덕거렸다.
  
8월 18일. 한가위가 끝나고 3차 형문이 있었다. 임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령이는 매질을 당하면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꿈에도 반역을 도모한 적 없습니다. 강하게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덕령이에게 낙형이 가해졌다. 벌겋게 달군 인두로 팔을 지졌다. 치지직, 살 타는 소리가 났다. 냄새도 났다. 사람들이 고개를 외로 돌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충정으로 왜군을 물리쳐 조선이 천년만년 영구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덕령이 말은 허공에 산산이 흩어졌다. 가차 없는 매질이 정강이에 집중되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댕강 부러졌다.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사람들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8월 19일 4차 형문이 있었다. 
덕령이는 절뚝거리며 형문장으로 끌려갔다. 임금은 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령이는 바른 자세로 고했다. 죄가 있다면 적장을 목을 베지 못한 것뿐입니다. 덕령이 다리를 불에 달군 인두로 지졌다. 치지직. 치지직. 살이 익고, 타는 소리와 냄새가 더 심해졌다. 사람들이 코를 막고 돌아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덕령이가 입을 열었다. 왜장의 목을 베 온다고 수차례 호언장담했는데 지키지 못한 것이 지금도 천추의 한입니다. 혹독한 매질이 또 정강이에 쏟아졌다. 왼쪽 정강이마저 댕강 부러졌다. 바지가 온통 벌겋게 물들었다. 
  
8월 20일. 5차 형문이 있었다. 
날마다 이어진 형문에도 덕령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형문장으로 갈 때는 아예 걷지 못했다. 질질 끌려갔다. 임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이 지경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반역은 당치도 않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다만 노모를 봉양하지 않고 형과 함께 기병한 것이고, 시묘살이도 채 끝내지 못하고 나를 구하려고 서둘러 종료한 것이 죄라면 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덕령이 말을 귀담아 듣는 이가 없었다. 온몸에 인두가 가해졌다. 지글지글 피부가 익었고, 인두에 껍질이 붙어 몸과 피부가 분리되었다. 인두가 지나는 곳마다 피가 철철 흘렀다. 상의마저 벌겋게 물들었다. 사람들은 차마 볼 수가 없어, 처음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8월 21일. 6차 형문이 있었다. 
옷에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덕령이는 질질 끌려가면서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눈동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왜장이 눈앞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씹어 삼킬 기세였다. 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기다리는 부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 어찌 반역을 꿈꾸겠습니까. 형님께서 금산성 전투 때 전사하셨는데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형님의 원수도 아직 못 갚았는데 어찌 반역을 꿈꾸겠습니까? 임근은 덕령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6차 형문이 이어지는 동안 덕령이는 살려달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덕령이에게 매질과 인두질이 이어졌다. 살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가 천지에 진동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코를 막지도 않았다. 인상도 쓰지 않았다.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임금이 명했다. 즉시 참형에 처하라고. 
  
8월 23일. 형문장에서 망나니의 칼춤이 이어졌다. 
망나니가 날이 시퍼렇게 선 칼에 입으로 물을 뿌리며 덕령이의 목에 칼을 몇 번 가까이 대었다가 멀리 거두며 춤을 추고, 목을 겨누었다가 거두어 다시 춤을 추기를 반복했다. 덕령이는 눈을 감고 집행을 기다릴 뿐이었다. 어떤 구차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망나니가 힘차게 목을 내리쳤다. 덕령이는 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덕령이 머리가 땅바닥에서 펄떡펄떡 뛰었다. 눈은 감지 않았다. 눈빛이 형형했다. 그날, 마침내 김덕령 장군이 죽었다고 임금에게 보고되었다.
  
김응회는 차마 21일과 23일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민경이에게 전하지 못했다. 민경이에게는 덕룡이가 옥사했다고만 전했다. 단만 이런 말을 민경이가 없는 틈에 능주에게 들려주었을 뿐이었다. 민경이는 장례 중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도무지 살아갈 의지가 없어 보였다. 머지않아 죽을 것만 같았다. 민경이가 죽더라도 사실이나 알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능주는 김응회에게 들은 내용을 민경이에게 가감 없이 전했다. .
  
  “장군님이 옥사하셨다고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참형이라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으셨잖아요? 옥사하셨다면 머리가 없을 리 없잖아요? 왜군을 모조리 소탕해야 하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이제나 저제나 하며 가족이 기다리는 게 부담스러워 아주버니에게 거짓말을 시키셨을 거예요.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 돌아가신 걸로 하시라고. 그래서 왜군의 시신을 보내신 게 분명해요. 왜군이 아니라면, 다리를 부러뜨리고, 껍질을 홀라당 벗기고, 목을 벨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잔인무도하게 죽일 필요가 없을 거잖아요?”
  “아씨…….”

능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덕령이 머리가 분명히 있었지만 바로 혼절한 탓에 민경이가 보지 못했다.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엉뚱한 확신을 하고 있었다. 덕령이 시신이 맞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민경이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살천스럽게 맞받아쳤다. 
  “우리 장군님이 아니라는 확실한 이유가 있잖아요? 왼팔의 화상 흉터가 없었잖아요? 장군님은 분명히 왼팔에 화상을 당하셨잖아요?”
  “아씨…….”
능주는 고개를 꺾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응회가 장군의 시신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사실 능주도 누구 시신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온통 피투성이에 썩어가는 중이라 얼굴을 판별할 수 없지 않은가. 피부가 죄다 벗겨졌으니 특징인 왼팔의 흉터를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주검동에서 무기를 만들 때 왼팔을 불에 달궈진 쇠붙이에 덴 적이 있었고, 석청으로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아 있었기에 능주는 확인 차 시신의 왼팔을 살펴보았다.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짓이겨져 있어 확인이 불가능했다. 양 정강이가 부러졌으니 키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옷에는 피딱지가 범벅이라서, 민경이가 지어준 옷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김응회가 왜군의 시신이라고 했다면 능주도 의심의 여지없이 믿었을 것이다. 
  “진짜 장군님이라면 선산으로 모셔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잖아요?”
  
능주는 깊은 신음을 토했다. 대역 죄인이라고 김씨 가문에서 덕령이를 선산에 모시지 못하게 하여 선산에서 떨어진 곳에 안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역죄인이라도 산소 근처에라도 안장해야 하는데, 십 리나 떨어진 곳에 안장을 했으니 민경이는 덕령이가 아니라고 믿었다. 민경이는 여자라 장례문제에 간섭할 수 없었고, 문중에서 쉬쉬하여 장례를 치른 통에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말이 장례지 사실은 장례 절차를 무시하고 안치하기에 급급했다. 그렇다고 민경이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장례를 치르지 않았으니 민경이가 진행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민경이가 혼절할까 봐 시신은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막았다. 

온갖 시도에도 덕령이가 눈을 감지 않자 민경이에게 눈을 감기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민경이의 몸 상태를 이유로 묵살 당했다. 그것도 엉뚱한 확신을 갖게 하는데 한몫했다. 해서 민경이는 덕령이가 아직도 옥에 갇혀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
  “관찰사님이나, 담양 부사님, 장성 현감님도 상소를 올렸을 거 아닙니까? 변방에서도 상소가 올라오는데 임금님께서 반드시 살려주실 거예요.”
  
상소 역시나, 사실대로 전해드려야 하는데 너무 실망할까 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음에 능주는 답답증이 올라왔다. 김응회가 그랬다. 대역죄인을 두둔하는 게 두려워서 아예 상소를 올리지 않았거나, 올렸는데 도중에 분실했거나, 조정에 전해지기 전에 윤두수 일당이 가로챘는지 몰라도, 어쨌든 상소가 조정에 전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씨…….”
능주는 민경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동안 다양한 말을 건넸으나 민경이가 믿지 않았다. 
  “올해 초에도 장군님이 압송당하셨는데, 임금님이 말까지 하사하며 석방하셨잖아요? 이번에도 그러실 거예요. 장군님이 말을 타고 오고 계실지도 몰라요.”
  
덕령이가 한 번 석방된 것은 사실이었다. 
1595년은 명나라와 왜가 한창 강화협상 중이라 전쟁은 소강상태였다. 전쟁이 없으니 의병들의 군기가 느슨해졌다. 장군은 왜군과 싸우지 못해 불편한 심기였다. 군기라도 제대로 다스리고 있어야 했다. 군기를 엄히 세우려고 첩보 전달을 지체한 병사를 처형했다. 윤근수의 노비를 처형한 적도 있었다. 노비가 윤근수를 믿고 자주 군율을 어겼다. 윤근수는 노비를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장군은 끝내 처형했다. 1595년 10월이었다. 병사를 죽인 일로 1596년 초에 체포된 적이 있었다. 사헌부에서는 임금에게 치국하고, 죄목을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정탁, 김응남은 장군의 석방을 권유했다. 임금은 장군을 석방하며 말까지 하사했다. 민경이는 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씨 마님, 오늘 해가 졌으니 장군님께서는 여각에서 주무실 겁니다. 주무시고 내일 오실지 모르잖아요? 오늘은 그만 내려가셨다가 내일 다시 오십시다요.”
능주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이미 해가 자취를 감추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스름 저녁이었다.
  “장군님, 어서 오시와요. 날이 저물어도 장군님은 오실 수 있잖아요?”
  민경이가 한양이 있는 북쪽을 보고 말했다.
  “아씨 마님, 내일 다시 오시잖께요?”
  “장군님, 얼른 오셔야 해요. 장군님이 안 계시니 집안이 적막강산이 되었어요. 절간 같아요, 절간. 밤이면 무섭단 말이에요 장군님.”
민경이가 허공에 대고 입속말했다. 민경이의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져 있었고, 핏기마저 보였다.
  
민경이는 마을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대역죄인이라고 다들 피했다. 혹시 잡혀갈까 봐, 집안 남자들이 화순으로, 장성으로, 곡성으로 죄다 숨어들었다. 덕령이 동생마저도 식영정에서 숨어 살고 있는데 집안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집에 발길이 끊긴 건 당연했다. 아낙들은 민경이와 마주치면 이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찾는 이 없으니 집이 절간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을 것이다.
  “아씨 마님, 장군님이 집에 와 계실지도 모르잖아요? 무등산을 넘어오실 수도 있잖아요? 꼭 이 길로 오신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집으로 가 보시게요. 장군님이 집에서 아씨 마님을 목 빠지게 기다리실지도 모르잖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등산길을 들먹였는데 민경이가 반응했다.  
  “참,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어서 가십시다.”
드디어 민경이가 발길을 돌렸다. 가파른 비탈길을 서슴없이 내려갔다.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는데, 아직도 기력이 남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체력을 비축해 힘이 남아도는 사람처럼 뛰다시피 하였다. 
  
성안마을에는 굴뚝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밥을 지으려는지 샘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이 있었다. 아낙은 민경이와 마주치자 이내 고개를 돌렸다. 민경이가 미쳤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아낙이었다. 집터가 너무 세서 민경이가 미친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은 장군님이 기를 눌러서 아씨가 온전할 수 있었는데, 장군님이 강한 기를 눌러주지 않으니 정신이 돌았다는 것이었다. 아낙 말에 수긍하는 이도 몇 명 있었다. 민경이 정신이 뚜렷하다고 해도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대역 죄인의 부인이라는 점 때문에, 기피하고들 하니까.
  
집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민경이가 앞장서서 올랐고, 능주는 뒤를 따랐다. 부리나케 올라 집에 들어섰지만, 쓸쓸함만 넘쳐났다. 덕령이는 보이지 않았다. 덕령이가 기다린다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 능주는 집이 텅 비어 있을 거라 예상했으니 실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경이는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황망한 표정으로 마을 앞 들녘을 보고는 이내 서둘러 장독 위에 정화수를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제 정성이 부족한지 잘 압니다. 하지만 어여삐 여기시고 장군님을 무사히 돌려보내 주세요.”
민경이는 한참이나 허리를 굽실거리며 빌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도 바로 앉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민경이는 문을 열고 나와 버선발로 대문 밖을 뛰어나갔다. 능주도 따라 뛰었다. 아낙이 물을 길으러 가는 소리에 개가 짖은 것이었다. 아낙은 민경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낙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버렸다. 민경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장독대 위에서 다시 빌었다. 적막감이 감도는 집안에 민경이가 비는 소리만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민경이는 한참이나 지극정성으로 빌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갔다.
  
개 짖는 소리가 또 들렸다. 민경이가 방문을 열고 냉큼 밖으로 뛰었다. 능주는 댓돌에서 민경이의 혜를 들고 따라나섰다. 버선발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정말로 미쳤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민경이가 집으로 돌아올 때 날카로운 자갈을 밟아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았다. 혜라도 신겨 드려야 그런 통증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혜를 들고 달려가니 어귀 저 멀리서 남정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중일 터였다. 손에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민경이는 남정네를 향해 뛰면서 외쳤다. 장군님이세요? 하지만 덕령이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민경이는 털썩 주저앉았다. 남정네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아씨 마님, 산신령님도, 천지신명님도, 조왕신도, 아니 장군님께서도 아씨 마님의 정성을 잘 아실 거여유. 분명히 꿈에 선몽을 주실 겁니다. 그러니 눈이라도 붙이셔요. 선몽을 받아야지요. 꿈에라도 장군님과 대화를 나누셔야지요.”
  “제 정성이 부족한데 어찌 현몽을 내리시겠어요?”
민경이가 낙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구먼유. 밤낮으로 치성을 드리는데 모르실 리 없지라우? 그걸 모르신다면 신도 아니랑께요.”
  “어떻게 초저녁부터 잘 수 있답니까? 장군님이 오셔셔 초저녁부터 자고 있는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어이없으시겠어요? 기다리지도 않고 자고 있다고 말이예요.”
  “아씨 마님, 지금 모습이라면 장군님께서 아씨 마님인 줄 모를 수도 있어라우? 가죽밖에 없는 아씨 마님을 보고 어떠코롬 아씨 마님이라고 생각하시겄소? 예전의 모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디 말이여라우.”
  “내가 그렇게 말랐나요?”
  “그렇다니께요? 장군님께서 아씨가 아닌 줄 알고 발길을 돌리시겄당께라우?”
  “설마 그러실라고요.”
  “장군님도 남자잖에요? 어여쁜 부인을 보고 싶지 아씨 마님처럼 새까만 얼굴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깡마른 여자를 품고 싶으시겄습니까?”
  “안아 주지 않아도 좋아요. 살아만 오신다면요.”
  “아씨 마님이 건강하셔야, 돌아오셔도 걱정하지 않으실 거 아닙니까? 아씨 마님께서 편찮으시면 월매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라고 도련님도 곧 오실 건디, 오시면 아씨 마님께서 맛있는 거 많이 장만해 드려야지라우. 글라라면 건강 잘 챙겨야 하지 않겄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능주는 광옥이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덕령이가 대역죄인라고 참형을 당했는데, 대역 죄인의 아들이라고 언제 체포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능주는 용안에 다녀온 며칠 후부터, 광옥이가 괘씸해 보였다. 외삼촌이 얼마나 잘해 드리기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단 말인가. 개나 소도 효도할 수 있다고 하더니, 개나 소보다 못한 자식이었단 말인가. 주워온 자식도 아닌데 어머니가 보고 싶지도 않다는 말인가. 그렇게 튼튼한 몸으로, 쉬지 않고 걸으면 하루에도 올 수 있을 텐데, 그런 시간도 내지 못한단 말인가. 능주는 광옥이가 몹시 괘씸했다. 광옥이가 반듯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허울만 보고 오판한 듯했다. 나중에야 민경이가 모종의 조치를 취했으리라 짐작했다.
  
민경이는 광옥이를 기다리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뜰히 챙겨주더니, 광옥이 이름조차도 들먹이지 않았다. 용안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바람일 때도 있지만, 광옥이는 찾지 않았다. 광옥이한테 한번쯤 다녀오라고 할 법도 했다. 민경이가 다녀오라고 할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능주도 광옥이가 그리워 그 말이 빨리 떨어지기를 바랐다. 말만 떨어지면 한달음에 달려갈 생각이었다. 민경이는 용안 쪽에 시선을 박아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광옥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씨 마님, 이제 혜를 신고 집으로 가십시다요.”
  
능주는 허리를 숙여 민경이 발 앞에 혜를 놓으려 했다. 그때였다. 민경이가 갑자기 집으로 뛰었다. 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을 것 같아, 귀를 기울였지만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쩐 움직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헛것이라도 보셨나? 능주는 혜를 들고 민경이 뒤를 따랐다. 기력이 쇠진한 민경이가 넘어질까 봐 능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달렸다. 만에 하나라도 넘어지면 쇠약한 몸이라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능주는 민경이가 넘어지면 몸으로라도 막으려고 바투 붙어서 따라갔다. 민경이 다리 상태를 보며 지근거리에서 민경이를 따라 갔다. 둘이 뛰어가는 소리 때문인지, 개들이 더 크게 컹컹 짖어댔다. 민경이는 더 속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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