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제46화)                         

                              15. 1597년 11월

1593년 1월 27일 벽제관에서 있었던 명나라와 왜의 전투가 벌어진 후 4년 넘게 지루하게 이어지던 명나라와 왜의 강화협상이 끝내 결렬되었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유년에 재차 조선 침공을 명했다. 군사력의 우위에도 조선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의병 때문이라며 의병의 씨도 남기지 말고 소탕하라는 명령도 하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과물 확인을 위해 살상한 조선과 명나라 군사들의 코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임진년에는 일본 제5군의 부대장이었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정유년에는 일본 제4군 총대장이 되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수많은 양민을 노예로 팔아먹고, 전사자들의 코를 남김없이 베었다. 8월 16일 남원성 전투 때부터 본격적으로 코를 베었고, 소금에 절여 자루나 가마니, 통발 등에 넣어 코를 일본으로 보냈다. 코의 수는 논공행상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니 코를 베는 것에 혈안이었다. 일본에다 코 무덤을 만들 정도로 악독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끈 일본 제4군이 9월 16일에 장성 입암산성을 함락하고, 장성 필암서원까지 불태웠다. 장성현 인근인 진원현에서만 베어낸 코가 870개였다. 이를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냈는데, 9월 21일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으로 코를 보낸 왜군 무리가 담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휘하 장수 중 떡배에게 지령을 내린 장수가 선봉에 서서 추월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남댁! 처남댁!”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응회가 헐떡거리며 수리동산으로 오고 있었다. 김응회가 수리동산을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버니 왜 그러세요? 우리 장군님 오셨어요? 그래서 부리나케 달려오신 거예요?”
민경이가 들뜬 어조로 물었다.
  “그게 아니라요? 왜군이 쳐들어오는 중이래요. 왜군이. 어서 몸을 피하십시다!”
김응회가 숨도 고르지 않고 말했다. 남원성을 함락한 왜군이 장성의 입암산성까지 함락했다고 했다. 
  “장군님이 오실 텐데 어떻게 집을 비운답니까? 저는 집에 남아있겠습니다.”
민경이는 꼼짝 않을 태세였다.
  “의병의 씨를 말리라고 했답니다. 장군은 왜군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데 처남댁을 살려주겠습니까? 어서 피하십시다!”
  “제가 수모를 당하도록 장군님이 가만 계시지 않을 거예요.”

민경이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복장 터지는 소리 좀 그만 하시고 어서 내려갑시다. 제 어머님도 기다리고 계시고, 처남댁 올케들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둘러 내려가십시다.”
입암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과 피신하려고 가족이 모여 기다린다는 말에도 민경이는 발을 떼지 않았다.
  “올케들 잘 부탁드릴 게요. 다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실 텐데 먼저 가세요. 능주 아저씨도 따라가시구요.”
민경이가 완강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아씨 마님 혼자 남겨놓고 어찌 피신을 하겠습니까요? 함꾼에 가십시다!”
능주가 통사정했다.
  “저라도 남아서 장군님을 맞이해야 하잖아요? 어서 가시어요.”
  “아이고 복장이야. 처남댁이 남아있다는 걸 번연히 아는데 어찌 피신할 수 있겠습니까? 처남댁 때문에 다 죽어도 좋겠어요?”
  “그러니까 어서 가시어요. 저도 원망 듣고 싶지 않아요.”
민경이가 정말 간절히 호소하는 표정과 어조로 말했다. 민경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김응회의 가슴을 치는 몽둥이였다.
  “아이고야.”
김응회가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며 답답해했다.
  “처남은 안 온다니까요! 아니, 못 온다니까요!”
  “가짜 시신으로 거짓말하시더니 또 왜 그러세요?”
  “오메, 입씨름하다 시간 다 가겄네. 알았으니까요? 가면서 말씀드릴 테니, 일단 가십시다, 그려.”
  
김응회가 또다시 가슴팍을 두드렸다. 급한 나머지 좀처럼 쓰지 않던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노모님 다리도 불편해 빨리 걷지 못하실 텐데, 어서 가서 피신시키세요. 이러다 해 저물겠어요.”

민경이는 김응회 어머니를 걱정했다. 능주가 보기에 오히려 민경이가 걱정이었다. 
김응회 어머니가 연로하시긴 해도, 민경이보다는 정정했다. 거의 죽과 미음으로만 연명해온 민경이는 마치 미라 같았다. 눈 감고 꼼짝 않고 있으면 시난고난 병을 앓다 죽은 시신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수리동산에 오를 때는 기대감으로 그럭저럭 오르지만, 내려갈 때는 힘이 없어 넘어지기 일쑤였다. 사실 저런 몸으로 추월산까지 갈 수나 있을지 싶었다. 하지만 앉아서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민경이를 움직이게 하려면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덕령이를 들먹이는 방법밖에 없지 싶었다.
  
  “아씨 마님, 왜군이 장성에서 추월산을 넘어올 거잖아요? 그렇다면 장군님께서 왜군을 물리치시려고 추월산에서 매복하고 계실 겁니다. 그리로 가십시다요.”
능주가 간청했다. 능주는 추월산 미륵바위 석굴로 민경이를 피신시키고 싶었다. 물까지 있어, 당분간 피신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 같았다. 김응회도 추월산으로 가자고 민경이를 부추겼다.
  “맞아요. 왜군이 있는 곳에 장군님이 계실 거예요.”
민경이가 드디어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그러문요. 가서 장군님을 도와 왜군을 물리쳐야제라우.”
능주가 옳다구나, 생각하고 맞장구쳤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가서 장군님을 응원해야 하는데,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어서 추월산으로 떠나십시다.”
  
민경이가 날렵하게 비탈길을 걸었다. 
능주는 사람의 한계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혀를 내둘렀다. 민경이가 제대로 걷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민경이를 추월산까지 업고 갈 요량이었는데, 업지 않아도 산에 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가다가 기력이 소진되어 업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검불처럼 가벼울 테니, 업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집으로 급히 들어선 민경이는 다른 것은 일절 챙기지 않고, 단 하나만 챙겼다. 그것은 바로 석청 단지였다. 마늘을 재운 석청. 능주는 덕령이가 참형을 당한 후 석청을 따러 가지 않았다. 민경이가 석청을 따오라고 말할라치면, 능주는 바로 핑계를 댔다. 설사가 심하다거나, 고뿔 징조가 있다거나, 농사를 도운다거나, 옆 마을 장례를 도운다고 둘러댔다. 물론 거짓이었다. 
곧 쓰러질 것처럼 허약한 민경이를 두고 산에 갈 수 없었다. 민경이가 석청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익히 알고 있지만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덕령이에게 주고 싶어서 석청을 원했을 텐데 덕령이가 없으니 굳이 갈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덕령이가 죽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민경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만큼 민경이는 덕령이가 살아있다고 확신했고, 돌아오리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능주가 핑계를 대면 민경이는 바로 받아들였다. 
  
작년에는 연초부터 덕령이의 압송 소식에 경황이 없었고, 중후반에는 덕령이가 참형을 당했으니 산에 갈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저 단지 속 석청은 재작년에 때죽꽃이 질 무렵 추월산에서 따온 석청일 것이다. 최소한 2년은 넘었다는 말이다. 마늘을 오래 재울수록 효과가 좋다는데, 민경이는 석청을 보며 흐뭇해했을 것이다. 아니다. 부족하다고 아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빨리 드리고 싶어 안달했을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민경이는 하얀 석청 단지를 옥색 보자기에 싸서 소중히 들고 집을 나섰다.
  
민경이는 김응회, 김응회 어머니, 인경 오라버니의 부인, 원경 아우의 부인 뒤를 따라 힘겹게 걸었다. 다들 산으로 피신을 했는지 길에 행인이 거의 없었다. 능주는 민경이 뒤를 따랐다. 민경이 걸음이 위태위태했다. 바람 불면 훅 꺼지는 촛불처럼 보였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어떤 계기라도 드려야 낙오되지 않을 듯했다. 
 
  “아씨 마님.”
능주가 나지막하게 불렀다. 
  “왜 그러세요?”
민경이가 뒤돌아보았다. 눈이 움푹 들어갔고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얼굴에 핏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여전히 덕령이가 살아서 올 거라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내년 봄에는요.”
능주는 일부러 짧게 말했다. 한꺼번에 많은 말을 하다 민경이가 피로를 느껴 대화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다. 민경이가 말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전란도 끝나고 장군님도 돌아오시겠죠?”
  “아무럼요. 그러니 건강하셔야 해라우.”
  “그건 걱정 마세요.”
  “그래서 그란디라우?”
  “예. 말씀하세요.”
  “내년 봄에는 석청을 더 많이 따다 드릴께라우. 올해 안 땄으니 바위틈에 엄청 들어 있을 거구만요.”
  “정말요? 정말 그래 주실래요?”
  
민경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렇게까지 덕룡이를 생각하다니. 이런 급박한 상황에도 오직 덕령이 생각뿐이라니. 덕령이라는 말만 나오면 초인이 되다니. 민경이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천상의 여인이라면 이런 모습일까. 천사가 환생한 것일까. 아니면 선녀가 환생한 것일까. 능주는 목이 메었다. 이렇게 숭고한 민경이를 끝까지 지켜 주리라고 능주는 마음을 다잡았다. 
  
능주는 축축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고 말을 잇지 않고 뜸을 들였다. 추월산을 보았다. 집에서 추월산까지 절반은 넘어섰다. 그래도 저 멀리에 추월산이 있었다. 아직도 민경이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게 신이할 뿐이었다. 능주는 절벽의 석청을 생각했다. 떡배랑 둘이 따려다 실패했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 가슴팍에 안전줄을 묶어놓고 천천히 작업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용기도 생겼다. 다른 곳에서 석청을 따지 못하면 그리로 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석청을 따야 하는 이유가 없음에 안타까웠다. 능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씨 마님, 예전 기억이 나실랑가 모르겄네요?”
  “어떤……?”
민경이 반응에 능주는 또 뭉클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틀비틀 걸으면서도 질문에 대답하는 민경이 때문에 가슴이 찡했다.
  “집에서 한봉 한 적 있잖애라우?”
  “아, 그거요?”
민경이가 그때를 기억하고 있어 당시 상황을 굳이 환기할 필요가 없었다.
  “벌통으로 장수말벌이 침입했잖아요? 그 장수말벌을 물리치려고 수많은 꿀벌이 날갯짓을 해서 장수말벌을 쫒았잖애유?”
  “꿀벌이 너무나 많이 죽어서 제가 키우지 말자고 했지요. 그런데요?”
  “그 벌통을 열었더니 하얀 나비가 있더라니께요?”
  “나비가요?”
  “하얀 나비였당께요?”
  “…….”
  “나비가 죽었는디, 하나도 안 썪었당께요?”
  “그래요?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저도 첨에는 그란 줄 알었는디, 날개를 만져본께 파스라니 금방 바스라지더랑께요? 죽은 지 솔찬히 되었다 그 말이여라우. 그란디 희한하게 몸통이 썽썽하더랑께요.”
  “그랬어요?”
  “그때는 우연의 일치인 줄 알았어라우. ……그란디 그게 아닙디다.”
  “…….”
  “석청을 딸라다가 발견했어라우, 바위틈바구니에 벌집이 있었는디, 입구 뽀짝 안에 동박새가 죽어 있습디다. 비바람을 피하려고 들어갔다가 벌떼의 공격을 받은 모양입디다.”
  “오, 저런…….”
  “깃털처럼 단단한 부위만 빼고는요? 털이 홀라당 벗겨졌습디다. 그란디 그 동박새도 나비처럼 한나도 안 썩었습디다.”
  “왜 그랬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보았어라우. ……살이 썩으면 냄새가 나겄잖애요? 그라먼 꿀벌도, 여왕벌도 다들 숨쉬기 불편할 거 아니겄습니까?”
  “그야, 그렇겠지요.” 
  “그것 땜시, 벌들이 특수한 물질을 도포한 것 같애라우. ……냄새나지 마라고, ……썩지 마라고, 말이여라우……. 벌들이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 사니까 전영병이 생기면 몰상당하기 쉬울 거 아닙니까? 썩으면 병균이 생기니까, 썩지 말라고 특수한 물질을 바른 것 같애라우. ”
  “아!”
  
민경이가 짧은 감탄사를 토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능주는 입을 닫았다. 민경이의 걸음 상태를 확인하며 보폭을 맞춰 걸었다. 대화하느라 피곤함을 잊은 것일까. 민경이가 휘적휘적 걷긴 해도 업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업어준다 한들 등에 업힐 것 같지 않았다. 덕령이 등이 아닌데, 절대 업히지 않을 것이다. 민경이는 힘겨운 걸음으로 김응회와 그의 노모, 올케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아니다. 그분들이 민경이를 위해 천천히 걸은 탓이다. 민경이는 길을 걸으며 누구보다 많이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릴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엿보였고, 다시 추월산으로 돌리려 할 때는 맥 빠진 모습이 엿보였다. 능주는 김응회를 불러 세웠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바위에 앉아 쉬어가자고 했다. 김응회가 그러자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일행 모두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에 앉아 있는데, 삭풍이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능주는 쌀쌀함을 느꼈다. 피부가 뼈에 붙어 있으니 민경이는 더욱 추위를 느낄 것이다. 민경이는 움찔, 하며 한기를 털어내려 했다. 능주가 민경이에게 옷을 벗어드릴지 물었다. 민경이는 당치도 않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민경이는 요 몇 년 사이에 부쩍 늙어 보였다. 까맣고, 푸석한 얼굴, 강파른 몸피를 보면 사십 대로 보이는 중노인 같았다. 스물다섯이라고 하면 거짓말 말라고, 사람들이 눈을 홉뜨고 나무랄 것이 분명했다. 삭풍이 다시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민경이가 또 몸을 잔뜩 움츠렸다. 민경이를 걷게 해야 했다. 능주는 왜군이 곧 닥칠지 모른다는 핑계로 서둘러 가자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움직여야 민경이가 덜 춥다고 느낄 테니까.

추월산 기슭에 도착하자,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쌓일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린, 첫눈이었다. 민경이는 눈을 보고 직령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덕령이가 추위에 떨고 있을 것 같다며 애 닳아했다. 혹독한 추위와 직령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후회로 민경이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다리에 힘도 빠진 듯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석굴까지 못 오르지 싶었다.
  
  “아씨 마님.”
능주가 나지막하게 불렀다. 
  “또 왜요?”
  “제가 말이여라우?”
  “예.”
  “암도 모르는 곳에 있는, 석청 장소를 알고 있어라우.”
  “그러세요?”
여전히 기대에 찬 목소리였다.
  “한 번도 안 땄능께, 겁나 있을 거구먼이라우.”
  “어머! 잘 되었네요!”
  “거기가 어딘 줄 아시남요?”
  “아무도 모른다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 참, 내가 그랬제.”
  “아저씨도…….”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냐고, 능주를 밉지 않게 타박하는 투였다.
  “추월산에 있구먼이라우. 추월산에. 이따 올라가서 위치를 알려드릴께라우”
  “정말이요?”
  “그러니까 힘내서 꼭 보셔야 해라우. 장군님께 따 드릴 석청이 어디서 나오는지 꼭 보셔야 해라우…….”
  “그래야지요. 저도 아저씨를 따라 석청 따러 가보고 싶었어요.”
  
민경이가 아이처럼 해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쩌면 충격으로 백치가 되어버렸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민경이는 앞뒤조차 재지 않았다. 지금 피신 중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 듯했다. 추월산에 오르면 덕령이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 하나로, 지친 몸을 이끌고 매서운 추위를 참고 견디며 힘겹게 걷는 민경이 머리에는 오직 덕령이 생각뿐임을 어찌 모르랴. 능주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란디 조건이 있어라우?”
  “조건이요? 설마 안 가르쳐 주시려고 수 쓰는 건 아니시죠?”
  “아씨께 어찌 수를 쓰겠습니까요?”
  “맞아요. 아저씨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 참말이지라우?”
  “정말 죄송해요. 저 때문에 고생도 많으신데…… 사과드릴게요.”
  “사과 대신 약조를 받고 싶구먼이라우.”
  “무슨 약조요?”
  “그 석청은 장군님한테만 드릴라고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라우? 그랑께 아씨 마님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조를 해주셔야 해라우.”
  
민경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민경이는 능주를 향해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격에 겨운 표정이었다. 빨리 가자고 보채는 것도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도 같았다. 능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민경이가 사력을 다해 석굴까지 올라갈 것 같았다. 덕령이 기운이 민경이를 석굴로 인도할 것 같았다. 능주는 민경이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자신의 눈이 촉촉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민경이에게 보이기 싫었다. 능주는 추월산으로 시선을 던졌다. 추월산이 흐릿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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