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후쿠시마 오염수

매일 같이 폭우가 쏟아지면서 핸드폰에 ‘산사태, 비탈면, 축대 붕괴 위험이 있는 곳을 피하고 가능한 외출하지 말라’는 행안부와 지자체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하루에도 몇 개씩 받았다. 

받은 문자를 지우는 데 급급하면서도 싫은 느낌보다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물론 이미 수십 명의 목숨이 희생된 사고가 발생하였건만 그래도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국가공무원들의 처절한 외침처럼 다가왔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대한민국헌법 제34조⑥항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TV 뉴스에서는 폭우 얘기와 함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얘기도 나온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바다에 내리는 독우(毒雨)와 같다. 지상에 내리는 폭우처럼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 역시 그 정도에 따라 큰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일본 정부나 우리정부가 주장하듯이 별 탈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문제는 피해 정도가 클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느냐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폭우 피해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사실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 온난화로 기후변화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을 과학으로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기에 대비책이 부족하여 피해가 큰 것이다. 

다행스런 것은 폭우를 예방할 수는 없어도 폭우 피해는 예방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전 사고는 과학적(확률적)으로는 예방 가능하다 할 수 있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도 사고율 1000만분의 1이하로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도 9.0의 지진이 몰고 온 15m의 해일이 원전 벽을 넘어 냉각수 펌프와 비상발전기를 모두 정지시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정(假定)에 기반한 과학의 약점이다. 더구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사람의 실수에 기인한 것이니 사람과 과학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원전 사고의 완벽한 예방 역시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탈원전 얘기가 나온다. 
정상 가동 중인 원전의 방사능 폐기물은 지속적인 방사능 방출 때문에 암석 동굴에 매장하거나 지표 깊숙이 매장해야 한다. 원전 사고에 의한 방사능 폐기물도 마찬가지다. 물론 방사능 오염수의 경우 다핵종제거시설(ALPS)로 걸러지지 않는 3중수소의 분리 추출에 큰 비용이 들 것이다.
 
핵폐기물을 비롯한 환경오염 물질의 해양 투기를 금하는 런던협약이 발효되어 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70여 국가가 이에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 러시아, 영국 등 핵폐기물 해양 투기를 몰래 자행하는 원전 운영 선진국들이 협약 준수에 소극적이다. 그러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폐기물 해양 투기 감시 기능도 미약하고, 적극적이지 않다. 실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처음으로 공개된 대량 핵 오염수의 해양 투기이다.

따라서 IAEA는 대량의 핵 오염수 해양 방류가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조사 경험이 없다고 할 수 있다. IAEA가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대해 절차의 정당성만을 강조하고 그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는 IAEA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승인이 실증적 객관적 근거보다 일본에서 수행한 소규모 모의실험(시뮬레이션, simulation)의 결과에 근거했음을 말해 준다. 

과학 용어에 질량 효과(mass effect)라는 것이 있다. 
실험실에서 행하는 소규모의 실험 결과가 대규모의 실제 결과와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대량의 핵 오염수 해양 방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운이 좋아 아무런 나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확증이 가능할 것이고, 만약 나쁜 결과가 나타나면 그때는 이미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후이다. 누구도 책임질 수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불가역적인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예방이 최고다. 
극심한 폭우에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경고나 사고를 내지 않았음에도 음주운전을 처벌하는 것이나 산에 갈 때 라이터를 지니지 못하게 하는 것도 모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자신은 매우 조심스러운 사람이어서 폭우에 휩쓸리거나 음주사고를 내거나 주머니 속의 라이터로 산불을 낼 확률이 거의 없는데 왜 하지 말라고 괴담을 퍼뜨리고 선동하느냐 따지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불가역적 파국의 심각성과 그 예방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막자는 것은 괴담과 과학의 충돌이나 신뢰 문제가 아닌 단순히 재해의 예방 문제이다. 예방하지 않고 재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보다 예방해서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대한민국헌법 제34조⑥항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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