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그물

불교에서 선시는 마음이 밖으로 나타나는 형상 곧 의경을 통해 불교적 진리의 심미적 깨달음이나 정감의 해방을 추구한다. 이 선시에서 강력하게 드러나는 게 대상의 진실을 향한 주관의 날카로운 직관과 이를 통해 선적 묘체 혹은 시적 신운을 획득해내는 놀라운 통찰력이다. 

천 길 물속에 낚싯줄을 드리우니            千尺絲綸直下水 
한 물결 일렁이자 일만 물결 이네           一派纔動萬派隨 
밤 깊고 물이 차가워 물고기는 물지 않고    夜靜水寒魚不食
달빛만 가득 싣고 빈 배로 돌아오네         滿船空載月明歸

당나라 때의 선승 화정선자의 선시이다. 얼핏 보아도 담백하고 그윽하며 고요하고 한가한 선취가 물신 풍겨나는 이 시는 고금의 선객들이 지향하는 깨달음의 경계가 잘 그려져 있다. 

고요하고 차갑고 달 밝은 밤에 홀로 낚시를 한다. 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 천길 물속에 낚싯줄을 드리운 어부는, 고요 적정 속에서 깊은 진리를 깨치고자 하는 ‘위대한 고독인’ 곧 선승이다. 한데 물속에 낚싯줄을 드리우자 일렁이는 물결 하나가 동심원을 이루며 계속 번져 나가 만파를 일게 한다. 이는 참선자의 고요한 마음자리에 한 생각이 일자 마치 낚싯줄을 따라 이는 물결처럼 일파만파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부는 낚싯줄의 입질에 온 생각을 집중시키는데 밤은 깊어가고 적막과 추위와 쓸쓸함은 무장무장 밀려들어도 고기는 물지 않는다. 이 역시 일파만파의 번뇌망상을 관조를 통해 잠재우고 다시 정진에 몰입하지만 은산철벽 속에 갇힌 고독감과 한랭함의 끝 모를 고투 속에서도 반야지혜 혹은 ‘한 소식’은 좀체 찾아오지 않는 선승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결국 어부는 낚싯줄을 철거하고 돌아오고야 마는데 그 빈 배에 밝은 달빛만 가득하다. 어쩌면 밤 깊도록 추위와 적막과 고독과 싸우며 소득 없이 돌아오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한데 선승의 입장에서 보면 어부가 낚고자 하는 물고기는 사실 깨달음의 반야지혜이다. 불교에서의 반야지혜는 연기와 중도를 깨쳐 얻는 ‘공(空)’이라는 진실이다. 그러니까 시에서 보면 그 공은 이미 천지를 가득 비추고 있던 ‘달빛’이다. 그런데도 선승은 깨달음의 요체가 어디 딴 데 있기라도 하다는 듯 일파만파의 번뇌망상 속에서 물고기가 잡히니 안 잡히니 하며 처절한 고독감과 쓸쓸함과 추위와 함께 치열한 고투 정진을 한 것이다.

결국 빈 배에 달빛만을 가득 싣고 돌아온다는 것은 한번 깨친 눈으로 보자 이미 있던 달빛이 곧 ‘공’이라는 직관이 임하고, 그것이 빈 배 가득 환하고 충만한 모습을 눈부시게 체험하게 된 것이다. 부연하면 빈 배 가득한 달빛은 관조의 대상이지 욕구의 대상이 아니다. 텅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채워진, 무와 유를 초월한 깨달음의 본래성이었던 것이다. 
  
다시 시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사실 평담하고 간촐한 이 시에서 마지막 “달빛만 가득 싣고 빈 배로 돌아오네”라는 시적 주체의 마음이 투사된 직관적 발견의 지혜가 없다면 이것은 평범한 낚시 행위의 시로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텅 빈 충만’이라고 할 수 있는 ‘빈 배 가득한 달빛’을 직관해냄으로 말미암아 이 ‘활구’ 하나가 전체 시를 선승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깨침의 미학을 대표하는 시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런 직관과 통찰력이 잘 구사된 시를 한편 보자.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정호승, 「하늘의 그물」

이 시는 소품 같지만 풍경과 인사(人事)가 잘 교직된 풍경의 철학, 풍경의 미학을 완성시킨 하나의 좋은 작품이다. 이 시의 첫 구절은 노자 『도덕경』 73장에 나오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는 구절에서 왔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누구든 빠져나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이 문장은 하늘이 태연히 침묵을 지키는 것 같지만 인간의 잘못은 모두 가려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하늘의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법의 그물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법의 그물을 피하여 자신의 욕망을 뒤쫓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죄는 언젠가는 하늘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그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이다. 그 기러기들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하나 둘 떼 지어’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한데 여기서는 기러기라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하나둘 떼 지어 날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어린 새끼를 보살피는 어미 새의 연민 어린 사랑, 하나 둘 떼 지어 날아가는 소박하고 평화롭고 단란한 가족의 정경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고 소박한 단란함을 비춰주는 데에는 환한 보름달이 제격이다. 어설픈 초승달이나 싸늘한 그믐달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미아비가 어린 새끼들 곧 자식들을 일평생 걱정하고 거두는 것은 하늘과 같은 일이고, 그런 자식들이 부모를 섬기는 것 또한 천륜의 일이다. 그러기에 하늘도 부모자식간의 일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가납(嘉納)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에서는 이런 어설픈 해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촘촘한 하늘의 그물을 만들어놓은 다음에, 그물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존재를 어떻게 새끼를 데리고 날아가는 기러기들이라고 단정을 했는가이다. 여기서 바로 직관과 통찰이 그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어느 가을밤 천지간에 휘황한 보름달이 가득 차 있는 마당에 시인은 서 있다.

텅 비었지만 보름달이 충만한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티 한 점 없이 맑아진다. 마음에 없는 죄까지도 전부 꺼내어 말갛게 씻어내고 싶은 달밤이다. 그런 맑음과 깨끗함이라면 웬만한 죄의 고백으로는 그 맑고 밝고 깨끗함의 형상인 보름달 속을 통과하기가 싶지 않을 것 같다. 죄라면 그 찌꺼기나 부스러기라도 모두 걸러져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한데 그런 죄의 닦음이 필요 없는 존재들이 있을 것만 같다. 생각해보니 찬 서리 치는 가을밤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줄지어 가는 기러기 떼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어떤 이유나 논리도 없이 그야말로 직관적으로 떠 오른 기러기들에 대한 형상이 놀랍게도 전반부의 일방적 자기주장을 개연성 있게 밑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어린 새끼를 보살피는 어미 새의 연민 어린 사랑, 하나 둘 떼 지어 날아가는 소박하고 평화롭고 단란한 가족의 풍경은 결코 변치 않을 천륜의 풍경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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