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田 송희자의 【꽃차이야기】(37)
담양뉴스는 2022년 새로운 생활문화 코너로 우리 지역에서 꽃차전문가로 활동중인 茶田 송희자 님의 ‘꽃차이야기’를 월2회 가량 게재합니다. 茶田 송희자 님은 ‘茶田(차밭)’ 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차와 우리 꽃을 소재로 오랜 시간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책을 펴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꽃차 전문가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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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무더위를 잊게하는 쑥꽃차

들녘으로 나서는 저녁시간이다.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곳이 일터인지 여행지인지 잠시 혼동이 된다. 여름이 깊숙이 젖어들 때 일몰은 늘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저녁산책 겸 나서는 농장 점검은 농부에게 습관이자 일상이다. 키가 훌쩍 커버린 쑥을 바라보며 먼 어릴 적 여름밤이 생각이 났다. 불빛도 가물거리는 밤이었지만 모기들의 아우성에 쑥대를 꺾어 모기불을 피워주시던 어른들의 모습이 불연 눈앞으로 지나간다. 그때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던 향을 다시 맡아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뜨거운 여름 밤, 끈끈한 습기에 쑥향이 전해지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쑥을 오늘 길 위에서 마주했다. 몇 가지 툭툭 꺾어 뒤로 안았다.

쑥이라 하면 단오에 쑥을 채취해 쑥떡을 해먹고 그 이전에는 어린쑥을 덖어 차로 음용하였다. 따라서 보통 어린쑥만 먹는다고 인식하지만, 여름쑥도 매력이 있다. 키도 크고 곁순도 새로 나는 시기라서 곁순을 채취해서 9번 덖으면 여름 하늘 은하수의 물결을 보는 듯 깊은 향을 음미할 수 있다. 

25년 전 문학기행으로 늘 매장을 찾아주시던 교수님이 캐나다 토론토에 계신 지인을 소개해주셨는데, 매년 만들어내는 여름쑥차를 전량 구매해 가셨던 기억이 난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한 번씩 한국에 오시면 직접 내방하시어 여름쑥차를 고집하셨다. 살다보면 어려운 시기도 있기 마련. 어느 해던가 12월 31일 내리는 눈이 참 쓸쓸하고 춥게 느껴졌던 날, 마음도 무너지던 오후를 보내던 중 매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지인 분으로부터 ‘차(茶) 덕분에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는 안부전화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후,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었다. ‘일어서는 거야, 다시 하는 거야’를 되뇌며 가슴이 뭉클해왔고, 담담하고 묵직한 쑥의 향은 그렇게 나를 일으켰다.

쑥은 사랑 받는 존재다. 여름쑥의 곁순이 나오고 나면 이후에 쑥꽃으로 꽃차를 만든다. 사람들은 어린쑥을 보고 나면 거의 다시 볼일이 없다보니, 쑥을 보고도 쑥인지 아닌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관심만 가진다면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차의 재료이자 약재이며 향이다. 연녹으로 꽃봉오리가 커지면 개화가 시작된다. 꽃은 이때 채취하여 꽃차를 만드는 것이 좋다.

채취한 쑥꽃은 훑듯이 손질하여 가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준비한다. 전기팬에 온도를 1에 놓고 덖는다. 한 번 익혀 꺼내서 식히고 다시 넣어서 덖는다. 3~4번 덖은 다음 5번째부터는 수분이 날아가서 표면이 건조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때부터는 손으로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꽃의 조직을 깨뜨리는 작업을 함께해야 한다. 쑥꽃은 봉오리가 터질 때 화기가 밖으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조심하여 덖어야 한다. 8번째 덖을 때는 건조가 많이 된 상태이므로 계속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 형태가 보존되지 않고 가루가 많이 생기므로 유의한다. 잔여 수분을 날려준다고 생각하고 덖어서 마무리하면 된다. 

쑥꽃차 한 스푼을 300ml 다관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2분간 우려내어 마신다. 살짝 쌉쌀한 맛도 나고 무엇보다도 쑥향이 훅하며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번째 우린 맛은 쓴맛이 적어지며 단맛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맛도 향도 편안해진다.

이렇듯 쑥의 잎에서 맛볼 수 없는 부드러움과 단맛, 편안함을 쑥꽃에서는 느낄 수 있다. 또한 쑥꽃에 박하차 한 꼬집을 넣어 함께 우리면 조금 더 상쾌하고 은은한 맛과 여운을 만끽하며 마실 수 있다. 국내 기준 쑥꽃은 현재 드랑쿵쿨루스쑥(Artemisia dracunculus L.)만이 꽃을 식품의 원재료로 인정하고 있는데, 잎과 달리 꽃은 현재로서는 모든 종류의 쑥꽃이 식용 가능한 시점은 아니라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쑥은 혈액순환을 도와 몸속의 냉기와 습기를 해소하여 부인병 예방효과로 예로부터 사랑 받아왔다. 쑥꽃은 이렇듯 훑어서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스틱형태로 만드는 방법도 멋스럽고 좋다. 아름다움을 담아 우리고 싶다면 스틱꽃차도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코끝이 시원해진다. 지난 해 만들어두었던 쑥꽃차에 박하차를 더해 우렸더니 주위가 향기로워진다. 더위가 하늘을 찌를 때, 쑥꽃차 한 잔으로 속을 따뜻하게 달래면서 건강한 여름나기를 해봐야겠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걷고 오가는 길 위에서 마주할 수도 있으니, 오늘도 쑥꽃향에 흠뻑 젖어보자.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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