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가 태어난 지 1천년 하고도 5년이 지났다.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정도했으니 여기에 1천년이 더해져 2018년, 그리고 5년을 넘어섰다. 당연히 담양과 광주, 전주와 여타 전라도의 모든 땅들이 새로운 천년인 2천 년을 향하고 있다. 전라도의 많은 지자체들이 캐치프레이즈에 시간적 개념을 넣어 새 천년을 앞세우는 이유다. 

옷깃을 여미는 경건한 자세로 전라도 1천 년, 나아가 우리나라 근대 1백년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전라도 1천년 하면 고려조 474년(918~1392), 조선조 518년(1392. 7. 17~1910. 8. 29)으로 기산하여 도합 992년이니 어림잡아 1천 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크게 어긋난 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전라도로 정해진 역사적 기점을 일컫는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 14년인 995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일원을 ‘강남도’라 하고, 전남, 광주 일원을 ‘해양도’라 하였다.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이 때 ‘강남도’와 ‘해양도’ 두 도를 합쳐 당시 큰 도시였던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개칭하였다. 이어 2백여 년 후인 1314년엔 경상도, 2백40년 후인 1356년엔 충청도, 뒤이어 강원도, 평안도, 경기도 등이 탄생했다.

2018년은 전라도가 정도한 지 1천년이 되는 해였다. 이에 3개 광역 단체(광주시·전남도·전북도)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24억 원을 투입해 ‘전라도 천년사’ 역사서 편찬작업에 나섰다. 주관단체는 전북도 출연기관인 전북연구원이 맡았다. 전라도 천년사는 총 34권으로 총서 1권과 고대부터 현대 시기별 통사 29권, 도백 인명사전 등 자료집 4권 등으로 구성되었다. 집필진이 무려 213명에 달하고 자료조사 연구원 등을 합하면 6백여명이 무려 5년간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이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전라도 바닥에서 학자도(심지어 사람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문제는 편찬을 앞둔 지금부터다. 당연히 국민과 전라도민, 대중 일반의 평가를 받아야 할 차례다. 과연 주관 연구기관은, 참여 연구진은 천년사 작업이라는 그랜드 프로젝트에 전라도민으로서의 자존감과 주체성을 갖고, 한편으로 같은 분야 여타 집필자의 연구작업에 관해 난상토론을 거쳐 완전원고를 만들었다고 자부하는가. 같은 분야 전문가끼리의 윤독은 수회에 걸쳐 순조롭게 이뤄졌는가. 

집필진으로 참여한 혹자는 연구성과물도, 논문도 아닌데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지 않은 일이다. 엄청난 인력과 큰 액수의 돈을 들였다. 역사기록은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시간적, 공간적 바로미터다. 과거를 반성해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비전을 펼치는 매트릭스다. 게다가 전 국가적, 민족적 사료이자, 여타 광역 단체가 향후 추진하게 될 천년사에도 영향을 줄 만한 전범(典範)이다. 

2022년 말 집필이 완료된 “전라도 천년사”가 2023년 후반기 출간을 앞두고 있다. 때맞춰 역사적 사실의 재확인, 관점과 시각 등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는 여론이 일어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이다.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접수하고 8월 공청회를 열어 최종 마무리를 한다고 전한다. 한 일간신문에서 재야 역사 전문가와 함께 진단한 문제점은 호남 지역사에 대한 폄하, 고대사 왜곡, 일본 식민사관 기술 태도 여부, 중국 동북공정 추종 등으로 요약된다. 

고대사 왜곡 부분은 단군조선 부인(3권 44쪽), 고조선 건국시기 부인(3권 43쪽), 고조선 강역(경계·변방·봉역·영역의 의미를 갖는 강토의 구역)을 한반도로 국한(3권 44쪽 지도), 전라도는 문화가 가장 늦게 발달한 낙후지역(1권 15쪽), 전남 해남을 왜가 백제에게 하사한 침미다례 라고 조작(3권 342쪽), 야마토왜의 땅인 임나 4현이 전라도에 있었다는 주장(4권 55쪽) 등이다.

한편 사대주의 관점 및 친일 잔재에 관한 지적도 있다. 고려는 일본이 왜곡한 내용 그대로 사용(만주·평안도·함경도 삭제. 7권 281쪽 지도), 조선은 인조반정 극찬(16권 21쪽), 예송논쟁을 조선은 독립국이 아니라 명나라 신하국이라는 사대주의 서인(노론)관점 서술(16권 50~51쪽), 전라도 사람이 아닌 김장생·송시열 문묘 종사를 장황히 노론 관점에 치중해 서술(16권 75~81쪽)한 내용 등이다. 

그는 이러한 진단에 덧붙여 “가장 안타까운 것은 책의 주요 역사관이 고대 전라도가 왜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로, 이는 일제 지배주의 관점을 추종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물론 재야 역사 전문가의 시각과 관점이 팩트와 무관하게 경직되고 편협하다는 재반론도 있다. 하지만 의견의 반영 여부와 무관하게 완성도를 높여나간다는 측면에서 일부러 공청회까지 마련된 만큼 얕은 물도 깊게 건널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범례나 각주 등 기술적인 장치도 요청된다.

광복 78주년 오늘 다시 대한민국이 새겨들어야 할 전언이 있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전쟁에 항복하며 일본으로 되돌아 가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족히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는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그들은 서로 이간질을 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 진행되는 편 가르기, 갈라치기에 대한 섬뜩한 경종으로 울린다. 

(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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