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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66) 황종림 담양부사

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66) 황종림 담양부사 
철종때 ‘관방제림’ 보수, 오늘날 명소 자리매김
남쪽-남희정, 북쪽-관어정 지어 양로·교육 장려

담양부사를 지낸 황종림의 자는 천오(千五), 본향은 창원으로 생몰년은 미상이다. 

순조 16년(1816)에 병자년 식년시 생원시에 급제했으며 1843년 옥천군수를 지냈고 이후 담양부사를 비롯 홍주목사(1857년), 가산군수(1858년) 등을 역임했다

황종림은 담양부사 재임시 철종 5년(1854)에 담양의 명소 ‘관방제림(官防堤林)’을 다시 축조하고 나무를 추가로 조성하면서 현재 자연생태관광자원으로 담양의 명소가 된 관방제림의 모습을 갖추는 계기를 만들었다.

관방제림은 인조 26년(1648) 당시 담양부사를 지낸 성이성 부사가 수해를 막기 위해 강 옆으로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제방이며 이후 담양부사로 부임한 황종림 부사가 보완했다.

또, 담양부사 재임시 담양읍 관내에 북쪽엔 관어정, 남쪽엔 남희정을 지었다. 두 정자를 지은 목적은 양로(養老)와 교육(敎育) 이었으며 노인들로 하여금 강학(講學)과 향약(鄕約)의 시행처로 사용하게끔 했는데 향약의 시행처로 정자가 사용된 것은 매우 중요한 사례이다.

남희정은 1925년에 고쳐지었고, 1981년에는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88올림픽 고속도로 옆으로 옮겨 재건했다. 

한편, 남희정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 ‘양샘’이 있었는데 당시 황종림 부사가 담양읍 남산 산록에 ‘남희정’을 건립하면서 허허벌판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정자 건립에 종사했던 목수와 백성들의 식수로 사용한 것이 양샘의 최초 발견이라고 전해진다. 

양샘은 조선시대 황종림 담양부사에 의해 발견돼 260여년 동안 담양읍민들의 우물로 사용되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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