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문화도시 사업의 중단을 보면서

국정과제로 문화도시 정책의 수립과정은 쉽지 않았었다. 저마다 지향하는 문화가 다르고 이를 펼쳐내는 방식 또한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정부 당국은 문화부분에 투여하는 재원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90년대 말부터 최고의 앨리트 관료들이 모여진 곳이 기재부와 문화부라고 했었고, 이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임직원들의 자부심도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내면서 문화부는 급속하게 그 위상을 침탈 당했다. 정권을 농락하는 이들의 입맛에 맛게 정책 지형은 변화하고 이에 항거하면 좌천을 하거나 굴욕을 주는 태도로 일관되어 많은 이들이 정든 문화부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했던 탓이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법정 문화도시 30곳을 5년 동안 지정해 나간다는 공약을 실현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당장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이를 해소할 방안도 만만치 않은 정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도시를 향한 현장의 열망은 언제 그 정책이 시작되느냐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다.

2018년과 2019년의 일이다. 지지부진한 문화부는 결국 문화도시 사업은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고, 이를 여러 경로로 파악한 현장의 활동가들은 이를 강 건너 불구경 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지역문화계의 피폐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대한민국 지역사의 확장점을 그을 수 있는 터닝포인토 로써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담양에 책방 문을 열고 잠자코 있던 내게도 이런 소식과 함께 한번 모여서 정책 제안을 하고 우리 열망을 전달해야 되지 않겠냐는 요구들이 이어졌다.

대인예술시장 일을 통해 전국의 문화활동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했던 나로서는 외면하기 어려운 터라 담양군 문화체육과와 문화재단과의 협력을 받아 담양에서 지역문화 활동가를 모시고 정책 토론을 벌였다. 문화도시에 대한 현장의 이해와 요구는 정말 간절하고 시의성을 가지고 있었다.

농림부나 해수부, 행안부, 국토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지역을 대상화하여 사업을 하면서 건물을 올리고, 가로를 정비하는 일을 해도 도통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국책사업들은 문화와 만나면서 시너지를 얻고 생동감을 가지며 그야말로 지속성 있는 사업으로 변신하는 사례를 지역의 활동가들은 수없이 생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문화는 주체가 아니라 변방이거나 장식용으로 소모되는 것이 이제껏의 현실이었으니 이를 문화도시의 이름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런 담양에서의 발언이 문화부에 고스란히 전달되고, 활동가들은 담양에 이어, 대구, 춘천, 포항 등에 잇달아 모이면서 문화부가 주체적으로 문화도시 사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계기를 형성했던 것이다.

담양군도 이에 따라 문화도시를 향한 사업단을 만들고 이제껏 현장과 정책 사이를 오가며 줄기차게 일해 왔었다. 법정문화도시 준비계획서에서 한번 미끄러지고, 두 번째에 계획서가 통과되고, 계획에 따른 예비도시 현장의 이행에서 또한번 미끄러지고 최종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5차 문화도시 지정은 없고, 다음 버전으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곧 현장 실사를 앞두고 엎어 버리는 이런 정책 현장을 본적이 없기에 말문이 막히는 일이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이러한데 정작 이런 사업을 수행하는 문화도시추진단과 워킹그룹, 주민조직은 어떻게 이를 바라보고 있을 것인지 정말 숨이 막혔다.

누군가 한반도가 생긴 이래 가장 훌륭한 정책이 바로 주민이 중심이 되어 삶의 문화를 저변에서 중심으로 옮기고 공유하는 “문화도시”사업이라고 했는데 이제 허언이 되고 말았다.
물론 현 정부는 2.0 버전의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퇴로를 열어 놨다.

이런들 정작으로 그간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던 정책을 처음으로 바텀업 방식으로 바꾸려 노력했던 문화도시 정책이 살아날지 의문이 인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 보다 더 쉽게 완주코스를 목전에 둔 최종문화도시 선발 자체를 무산시킨 정부이기에 이제 신뢰감 보다는 배신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

대체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난 세월 현장을 다니며 동분서주했던 문화부 직원들을 마주했던 것이 꿈만 같아진다. 이제 살아가는 길은 지방정부의 문화정책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욱 간절한 시간이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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