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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Ⅴ(소설)추월산 길라잡이(50화/끝)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연재중입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                    

                              15. 1597년 11월

(제50화)
  민경이는 단지를 들고 기를 쓰고 일어났다. 
현생에 전해드리지 못했으니 내생에서라도 전해드리고 싶었다. 민경이는 절벽 앞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눈발이 굵어지고 있어 미끄러웠다. 민경이가 눈에 미끄러져 휘청, 했다. 행여나 깨질까 봐 민경이는 단지를 품에 꼭 안았다. 이내 일어서서 중심을 잡고 걸었다. 멈추라는 왜군의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타는 보리암이 눈에 들어왔다. 민경이는 내심 내장까지 얼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춥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몰랐다. 그래서일까. 불길이 멀게도, 무섭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바로 눈앞에서 활활 타오른 듯했다.
 
 불길 속으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은 따뜻할 것 같았다. 불길 속으로 날지 못하더라도, 불길이 번져 자기를 남김없이 태우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코는 물론이려니와 머리카락 한 올도 왜군들이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불길이 몸으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는 상상을 했다. 왜군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떠올리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왜군들이 손에 잡힐 듯 간격을 좁혀왔다. 민경이는 불길을 향해 휙, 몸을 날렸다. 조총소리가 셀 수 없이 들려왔다. 총탄에 맞은 느낌은 없었다. 사금파리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퍽 소리가 여명이 밀려오는 추월산에 울려 퍼졌다. 퍽, 퍽. 연이어 허공을 가르는 둔탁한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단말마조차 들리지 않았다. 총소리만 난무할 뿐이었다.
 
 보리암에서 시작된 연기가 계속 암벽으로 올라왔다. 
연기 때문일까. 총소리 때문일까. 총탄이 벌집 입구 암벽에 집중되어 벌이 깜짝 놀랐는지도 몰랐다. 동면에 들어간 벌들이 모두 깨어난 모양이었다. 벌들이 다투어 바위틈에서 나왔다. 총소리에 놀라 도망치려고 나왔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석청꾼이 훈연기를 피우고, 망치로 벌집 입구를 땅, 땅, 두드리며, 깨부수는 중이라고 판단해 때지어 공격하러 나왔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꿀단지에서 흘러나오는 석청의 냄새 때문인지도 몰랐다. 불타는 보리암에서 전해지는 열기에 봄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수천·수만 마리의 벌이 연기를 피해 직벽 아래로 모여들었다. 연기는 위로 올라가기 마련이라, 바닥에는 연기가 없었다. 
탐스러운 함박눈이 민경이 위로 소담소담 내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벌떼가 민경이를 에워쌌다. 함박눈과 벌들이 갈마들며 민경이에게 내려앉았다. 벌들이 바닥에 흥건한 석청으로 분주히 오갔다. 석청에서 날아올라 민경이 몸에 내려앉은 벌 떼가 끝없이 봉교를 뿜어내, 민경이를 빈틈없이 발라주었다.(끝) 

【에필로그】
김덕령 장군의 묘를 이장하려고 관뚜껑을 열었을 때, 장군은 육탈이 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관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378년 동안 관에 고여 있던 물. 사람들은 불로장생의 약수며, 만병통치의 약과 같다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병을 가져왔다. 당시에 흔하디흔한 삼학 소주병이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수십 병의 물을 받았다.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장 통보를 받지 못한 탓에 그 줄에는 민경(흥양이씨)의 후손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수십 명이 늘어선 긴 줄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 제50화를 끝으로 담양뉴스가 2020년 11월부터 3년 가량 신문과 인터넷(홈페이지)에 연재해 온 강성오 작가의 <추월산 길라잡이> 대단원을 마감합니다. 오랜시간 글을 제공해 주신 강성오 작가에게 거듭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추월산 길라잡이> 연재소설을 애독해 주신 독자, 군민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작가 프로필】
담양이 좋아 몇 년전 담양으로 귀농한 강성오 작가는 자신이 평소 꿈꿔왔던 작가의 꿈을 이루었으며 그동안 틈나는 대로 담양 관련 글을 써 왔다.
이번 2020담양 송순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추월산 길라잡이』는 우리 지역의 역사인물을 발굴하고 그에 얽힌 사연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역사와 사회상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 강성오는 필명 ‘무진’으로 완도가 고향이다.
담양으로 귀농해 원로작가 문순태 선생에게서 글쓰기를 사사했으며 <생오지 소설창작대학>을 수료했고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2012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2013년), 농어촌문학상(2014년),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2016년), 제10회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 수상(2018년) 등의 경력과 함께 무등문예창작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본지 농촌·문화예술 분야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며 담양의 농촌생태관광마을을 탐방하는 『농촌일기』를 시리즈로 취재하고 있다.

【프롤로그】
1596년에 요절한 김덕령 장군은 ‘대역죄인’ 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선산으로 가지 못했다.
선산이 있었는데도 멀리 떨어진 금곡동 배재마을 뒷산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78년이 지난, 1974년 11월 19일 장군의 묘를 선산으로 이장했다. 이날, 장군의 생가 마을인 성촌마을(현, 성안마을) 주민 몇 분과 파는 다르지만 광산 김 씨의 후손 몇 분이 이장을 거들었다. 그때 이장에 참여했던 분이 증언했다. 장군의 몸과 머리가 분리된 흔적이 있었다고. 그는 지금도 성안마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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