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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0) 최부

담양알기3/ 담양의 역사인물(70)
세계3대 중국 기행문 <표해록>의 저자 최부
미암 유희춘의 외조부, 석천 임억령의 스승

*금남표해록

최부(1454~1504)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로 본관은 탐진이다. 자는 연연(淵淵), 호는 금남(錦南)으로 나주 출신이며 진사 최택의 아들이다. 

담양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의 스승이며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등 ‘일동삼승’으로 일컫는 누정을 왕래하며 당대의 명사들과 시문을 논하고 교류했다. 

김종직의 제자로 1482년(성종13) 진사로 문과에 급제, 교서관의 저작박사, 군자감 주부, 수찬 등을 지냈다.

1486년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 호당에서 사가독서 한 뒤 교리로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1487년 제주추쇄경차관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부친상으로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 표류해 온갖 고초를 겪고 반년 만에 귀국했다. 

성종의 명으로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 3권을 저술, 중국 연안의 해로·기후·산천·도로·관부·풍속·민요 등을 소개했다. 

최부의 표류기 <표해록>은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이자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버금가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널리 읽혀져 도쿠가와 시대에 여러 가지 판본과 사본이 통용됐고, 일본어 번역본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까지 출판됐다. 

특히, 수차(水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 뒤에 충청도 지방의 한해 때 이를 이용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

1492년(연산군3) 성절사의 질정관으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점필재집을 장서(藏書)하고 붕당을 조직해 국정을 비방했다는 죄로 단천에 유배됐고 1504년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으나 뒤에 신원됐다. 시호는 충열(忠烈)이다며, 유고로 금남집(錦南集)이 있다.(자료출처: 담양의 역사와 문화/2001년 담양군 발행 외) /담양뉴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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