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칼럼
전고필의 문화에세이(48)전고필(문화기획가, 영암문화재단 대표이사)

담양 문학의 힘을 챙겨야 할 시간

한 해가 가고 또 한살이가 시작되는 새해다. 
설을 지내고 보름을 맞이하니 겨우내 잠잠했던 마을들이 기지개를 켠다. 이마적에 당산나무에 둘러서서 풍물을 치고 제를 지내던 모습은 도통 찾을 길 없다.

농경에 기반한 2000년의 역사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을 터이다. 초등학교는 비워지고 통합되고 마을 안에는 빈집이 버즘처럼 박혀 있는 현실은 비단 남도만의 것이 아니다. 

마을회관에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밥상을 함께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반가워했지만 이제 그 밥을 짓는 막둥이의 나이가 60세도 넘은 70대가 새댁 축에 낀다는 말이 서글퍼지는 시간이다. 이제 사람을 통해 지역의 터무니를 기억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컴퓨터와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활용하면서 사람들의 말수가 줄어 들었다. 

새해 전 간행된 담양문화원의 담양의 전설과 관련한 책자를 보면서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채록의 대상이 예전처럼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지만 그럼에도 특정 지역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방식이 과거처럼 길게 부연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짧고 단답형으로 구술하고 있음이 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담양의 전설을 이전에 조사하고 단행본을 냈던 시절에 견주어 보면 서사의 구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소멸은 결국 이야기의 소멸이고 그 소멸은 서사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고영직 문학평론가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얼마 전, 타지에 사는 담양출신의 한 선배와 통화를 하는데 그 선배의 담양을 기억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특히나 담양장이 서는 날 관방제림의 풍경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데 이것은 숫제 롱 테이크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우린 분명 언어를 주고 받는데 전화기와 전화기 사이에 스크린이 있어서 그도 보고 나도 보는 것 같았다. 

“아우님. 할머니가 담양장을 가시네. 2일은 작은장이니 7일 큰장을 가면서 휘적휘적 관방제림을 걸어가시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함께 가며 장에서 챙겨올 군것질 거리며 밥상으로 올라올 새로운 반찬을 기대하는 것이네” 

불현 듯 손택수 시인의 “묵죽”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강쟁리에서 태어나 어릴적 부모님과 이주하여 부산에서 성장한 손택수 시인은 유년의 기억, 수구초심의 마음을 시어로 다양하게 표현해왔다. 시가 말씀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유를 나는 그 시인을 통해 더 절실히 느꼈었다. 

“습자지처럼 얇게 쌓인 숫눈 위로/소쿠리 장수 할머니가 담양 오일장을 가면/할머니가 걸어간 길만 녹아/읍내 장터까지 긴 묵죽(墨竹)을 친다/아침 해가 나자 질척이는 먹물이/눈 속으로 스며들어 짙은 농담(濃淡)을 이루고/눈 속에 잠들어 있던 댓잎파리/발자국들도 무리 지어 얇은 종이 위로 돋아나고/어린 나는 창틀에 베껴 그린 그림 한 장 끼워놓고/싸륵싸륵 눈 녹는 소리를 듣는다/대나무 허리가 우지끈 부러지지 않을 만큼/꼭 그만큼씩만,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2003년 호랑이 발자국이란 시집에 발표한 이 시는 그야말로 영화의 라스트신 처럼 가족을 위해 뚜벅 뚜벅 걸어가며 그가 남긴 발자국에서 눈이 녹아가며 삶도 흙속으로 스미어 가는 것 같아 처연하면서도 장엄한 장면이어서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양의 삶과 대나무와 영산강과 관방제림을 이렇게 담아낼 수 있는 언어의 기능은 또 한켠에서 기록의 자원으로서 힘을 비축하고 한없이 확장할 수 있는 못자리가 되어 준다.

고재종 시인의 “한재초등학교 느티나무”가 갖는 아우라는 교과서의 수록을 넘어 이 나라의 당산나무와 느티나무가 한반도에 사는 이들의 정신세계와 실재적 삶에 어떤 영향으로 더불어 살아왔는지를 내포하고 있다. 하니 이 나무를 마치 성지순례 하듯이 찾아주는 이들이 그치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마치 면앙정 송순의 십년을 경영하여 라는 삼언시가 이 땅에서 비움의 건축이라는 테제의 콘텍스크로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디아스포라와 실향민보다 더 지독한 고향의 멸실은 소설가 문순태 선생님의 징소리에 잘 드러나 있다. 소설의 중심은 장성호라고 하지만 그것이 동시대에 지어진 담양호, 광주호, 나주호와 다르지 않음에서 수몰민의 서사에 대한 가장 큰 울림이자 공감의 언어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고흥분이지만 남도의 밤 식탁이라는 시는 마치 담양사람의 생애를 다 담아있는 울림이 있다. 해남사람 황지우시인은 고서의 명옥헌에 연접해 살며 여름날 온갖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지 않으면 안될 명소로 만들어 놓았다. 

열거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문인들이 존재하는 담양이 인문적으로 풍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마르지 않은 샘물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시간이 언박싱으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담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광호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