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데도 말장난으로 위장하면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공천이 난무하는 요즘의 정치판, 국민의 건강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초강경 대립 상태인 정부와 의료계. 화재사고, 어선 전복사고 그리고 전쟁 관련 우울한 외신. TV의 뉴스를 보다 채널을 돌려 트롯경연을 보고 트롯이 끝나면 바둑채널로 간다. 트롯과 바둑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저녁 일상이다.

25차 농심배 세계 바둑대회에서 한국대표로 홀로 남아 6연승을 기록하며 한국 우승을 이끈 신진서의 대국 현장중계를 보는 도중 종종 해설자가 인공지능(AI)의 다음 착수 예측을 보여 주었다. 대국자가 AI 1차 지정자리에 착수하면 정확히 집었다 하고 2, 3차 지정 자리에 착수하면 뭐 그런대로 괜찮다 하고, 아주 다른 곳에 착수하면 아 어쩌나 하는 식이었다. 즉, AI가 정답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사실 처음 컴퓨터 바둑이 등장했을 때 비교적 단순한 장기나 체스는 몰라도 바둑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고 대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을 수 있을까 의심이 갔다.

그런데 세기의 대결이었던 이세돌-AI 대결에서 이세돌이 1승 4패로 졌지만 1승을 거둔 이후, 개선된 AI를 이긴 인간은 없었다. 자신이 이길 것으로 확신했던 이세돌은 물론 모든 바둑프로들도 이제는 AI를 바둑 교과서로 인정한다.

 착수의 자유가 보장되는 바둑에서는 ‘일수불퇴’라는 규정도 있고,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격언들이 있다. ‘아생연후살타’, ‘성동격서’, ‘반외팔목’. ‘사소취대’, ‘호구되는 곳이 급소’, ‘붙이면 젖히고 젖히면 뻗어라.’,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 등. 

이러한 격언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의 문제, 감정 컨트롤, 대국자의 실력 차이 등의 변수로 승패가 갈린다. 복기 과정에서 패한 대국자는 자신의 결정적 과오를 쉽게 발견해 낸다. 그리고 AI를 이용해 정답도 찾아낸다.

가끔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관념적 격언과는 동떨어진 정답도 있다. 그래도 바둑은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스포츠이다. 승패에 따른 재미와 감동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바둑에서의 패착은 발전의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인간 욕구의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헌법을 포함한 모든 법령 규칙들 모두 욕구의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종이다. 그런데 좋은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개판이 되고, 파업이 난무하며, 전쟁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스템에 의해 선택된 힘 있는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시스템을 곡해하거나 변경하는 시스템의 오용 또는 악용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유발한다. 최근 공천 정국에서 세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흔히 내미는 변명도 시스템 공천이다. 하지만 평가시스템에 이용되는 평가자료와 여론조사가 부실할 경우 당연히 부실한 객관성이 결여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이는 곧 난장판 정치로 이어진다. 

총선은 바둑과 다르다. 총선 결과는 국가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 더구나 정치적 실수가 사욕을 위한 시스템의 변질에 기인한 것이라면 사욕이 제거되지 않는 한 발전은 커녕 또 다른 실수가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번 총선이 끝나고 복기해 보면 패자는 패배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가 있었는지 자각할 것이다. 특히 ‘반외팔목’이라고 대국자는 알지 못하나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의 눈에는 쉽게 보이듯 공천 실수가 눈에 띈다. ‘사소취대’를 망각한 ‘소탐대실’이 역력하다. 

객관성이 결여된 정치 시스템에 객관성과 전문성을 부여할 방법은 없을까? 
정치시스템에 차라리 AI를 도입하면 어떨까? 역대 국내외 정치지도자들의 성년 이후 모든 언행과 성과를 데이터로 학습시키고, 응모한 후보들의 자료를 입력하여 인간 행복과 세계평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가장 적합한 후보를 단수든 복수든 AI가 추천하고 유권자가 최종 선택하는 방식.

작금의 사욕이 반영된 엉성한 공천시스템에 비해 공천 실수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과 함께 작은 기대도 해본다. 물론 선거의 재미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실수는 있어도 사람끼리 두는 바둑이 AI 바둑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것처럼.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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