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꿈, 소쇄원의 소쇄처사> 제62화

 양산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날 늦게 면앙정 형님이 파직되어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산보는 송순 형님이 2.3년 전부터 김안로의 미움을 사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가 듣기로는 2년 전에도 동궁에 있었던 작지변의 규명으로 김안로의 원한을 산 일이 있었다고 했다. 박시 모자가 동궁 사건에 무고되어 양사에서 이를 청살하려하자, 송순은 그 일이 김안로의 계책임을 알고 이의 불가함을 주장하여 김안로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지난해에는 또 김안로가 채무택 허항의 무리들과 소란을 선동하여 현류를 배척하자, 송순이 분연히 그들의 포악을 면박한 일이 있어 김안로의 미움을 샀다고 하였다. 당시 김안로와 채무택 . 허항 등은 유림을 무고해 화를 입히는 일이 자주 있었고 많은 분규를 일으켜, 이들 세 사람을 정유삼흉이라 부를 정도였다. 유림들 중에서 이들 세 사람한테 밉보이면 기어코 화를 당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걱정 말거라. 기촌은 생각이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다. 김안로의 권세가 꺾이면 곧 복직이 될 것이니라.”

양산보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말씀대로 송순 형님은 복직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송순이 임억령과 함께 창암촌에 찾아왔다. 송순은 파직을 당해 고향에 내려왔으면서도 얼굴빛이 밝고 맑아 보였다. 임억령은 동복현감 재직 중에 모친상을 당해 해남으로 돌아가 초막에 거처하고 있다가 지난겨울 상복을 벗었는데, 송순이 파직을 당해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고 했다. 송순과 임억령은 눌제 박상이 담양부사로 있을 때 문하에서 공부한 동문으로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고모님도 뵙고 또 그동안 언진 아우가 지은 전각도 구경할 겸 서둘러 왔습니다.”

송순은 고모인 송 씨 부인에게 절을 하고 나서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먼저 전각부터 구경하고 싶다면서 방에서 나왔다. 송순과 임억령은 양산보를 따라 지냇등을 넘었다. 등성이를 넘자 숲 속에 제월당과 광풍각 지붕이 거대한 날개처럼 펼쳐졌다.

“이만하면 무이구곡, 아니 이덕유의 평천장, 왕유의 망천장이 부럽지 않겠구만. 별서를 경영하려면 왕유를 본받아야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언진을 본받아야겠구만 그려.”

송순이 걸음을 멈추고 원림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형님 도움이 없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 나보다는 자네 처남인 사촌 힘이 컸지.”

송순은 그러면서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며 제월당 쪽으로 내려갔다. 햇빛은 맑고 봄을 불러오는 바람은 낮게 숨을 들이켰다. 제월당 가까이 갈수록 대숲 일렁이는 소리와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송순은 제월당 앞뜰에 서서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제월당 앞 2단으로 만들어 놓은 매대에 매화나무에 꽃이 멍울져 햇살 속에서 반짝였다. 

“하서가 붙여준 당호입니다.”
“하서가 언진을 주무숙에 비유했구만 그려. 마땅히 아래 전각은 광풍각이겠구먼.”
“예.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당호지요.” 

임억령의 말에 양산보는 얼굴을 붉혔다.

“자네의 인품에 대해 하서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송순은 제월당 뜰에서 계곡 쪽 담 가까이 다가가 광풍각을 내려다보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두 전각에 낮은 담장이며 작은 통로와 덧문이 아기자기해서 좋네. 그러니까 제월당에는 산과 숲과 바람을 넣었고 광풍각에는 물과 물소리를 넣었구만 그려.”

세 사람은 광풍각 마루에 걸터앉았다. 제월당에서보다 물소리가 한결 잘 들렸다. 봄 가뭄이 계속되었지만 골짜기의 눈이 녹아 물소리가 제법 힘차게 귓속을 때렸다. 그들은 일어서서 폭포며 너럭바위 등 물이 흐르는 계곡을 내려다보더니 언덕으로 올라서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대봉대 쪽으로 내려갔다. 

“ 나무들도 잘 골라서 심었고 담도 아담하게 잘 쌓았네.”
“집 안에 심은 나무를 보면 주인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 헌데 자네 지금도 봉황을 기다리는가? ”

송순이 대봉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뚜벅 물었다.

“기다리는 낙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지요. 저에게는 기다림이 희망입니다.”
“조심하게. 자네는 정암 선생의 제자가 아닌가. 자네가 기다리는 봉황 때문에 자칫 화를 입을 수도 있음이야.”
“설마요. 있지도 않은 봉황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문제지. 자네가 참새나 학을 기다린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형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헌데 기다리는 봉황이 오기는 할 것 같은가? ”

임억령이 물었다.

“무작정 기다린다고 해서 어찌 날아오겠는지요. 아직은 봉황이 알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무슨 뜻인가? ”
“그저 그렇다는 것입니다.”
“듣자니 자네 얼마 전부터 강학소를 만들어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고 있다던데...”
“예, 그들 중에 영특한 아이가 몇 있지요.”
“그렇다면, 이제 무작정 봉황을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자네가 봉황을 만들어서 세상에 날려보겠다는 생각인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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