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귀농하려 했으나,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생각이 바뀌었다.”

"can you speak English?" 라는 물음에 "Yes l can."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40대가 몇이나 될까.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중 한명이 여인섭씨다. 그는 광양제철소 단지 내에서 영어학원을 경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육 열풍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런 탓에 여인섭씨의 학원도 수강생이 나날이 증가했고, 수입도 갈수록 늘었다. 그런데도 그는 과감히 귀농을 결심했다.

“노후에 귀농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시기를 앞당기기로.”
어머님 때문에 귀농을 앞당기기로 했지만 고민이 컸다. 한참 잘 나가는 학원을 정리하기가 아까웠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자 그의 아내가 나섰다.
“잘 될 때 정리해야 멋진 거 아냐? 어차피 갈 거라면 빨리 갑시다.”

아내는 남편이 학원을 정리하기도 전에 먼저 시댁으로 가서 시부모님의 방울토마토 농사를 흔쾌히 거들었다. 평소, 아내는 시골생활을 동경했다. 일반적으로 시골출신의 여자들은 고생을 많이 해서 싫다고들 하는데 아내는 달랐다. 화순이 고향인 아내가 그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그도 1년 후 무정면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패배자라는 시각이 나를 자극했습니다.”

이왕 귀농했으니 짧은시간에 궤도에 올라서고 싶었다. 부모님께서 경작하고 계신 하우스 800평에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낡은 비닐하우스 두 동을 매입해 멜론도 경작했다.
“귀농하면 실패해서 온다는 인식이 많잖아요? 그게 아니라고 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시각을 바꾸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습니다. 패배자라는 시각이 나를 자극한 것이었지요.”

의욕적으로 멜론을 재배했지만 출하시기가 문제였다. 그가 처음으로 수확한 멜론이 하필이면 수박 출하시기와 맞물렸다. 경험이 없어 출하시기를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작황도 좋고, 첫 수확물이라 기대를 안고 도매시장에 냈다. 하지만 각화동 도매시장에서 4개들이 한 상자 경매가가 겨우 8천원이었다. 차 떼고 포 떼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불복하고 상품을 회수하여 돌아왔다.

막상 가져왔는데 판로가 아득했다. 동생과 지인에게 일일이 연락하여 사정을 이야기했다. 공무원인 동생이 직장 게시판에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직거래’에 약간의 자신감이 붙어 인터넷에 올렸다. 인터넷에서도 대박이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멜론’을 치면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타났고 주문이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구매후기도 칭찬일색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폭주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자 불만이 늘어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검색순위에서도 밀렸다.

그렇게 멜론을 모두 판매하고, 그는 재배 품목을 늘렸다. 토마토가 나올 시기가 되면 의사 얼굴이 새파래진다는 속설이 있는 방울토마토는 기본이고, 비타민 함량이 석류보다 다섯배나 높은 탓에 성인병과 피부 노화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 하여 여신의 과일로 통하는 백향과(패션프루트), 소비 트랜드를 이끌어가는 애플수박까지 재배하게 되었다.

품목 다양화뿐만 아니라 농장규모도 점점 확대했다. 패배자라는 시각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것이었다. 그가 내심 세운 계획은 3년 이내에 타인의 시각을 바꿔놓겠다는 것이었다.

계획을 현실화시키려고 멘토를 직접 찾았다. 그가 찾은 멘토는 젊은 농부였다. 젊은 농부가 신기술 습득력이 높다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은 적중했다. 그는 멘토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도 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이나 선도 농가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정보를 얻었지만 젊은 농부는 확실히 그런 면에서 앞섰다. 그는 멘토가 귀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찾아다녔고,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 피땀을 흘린 것이었다.

“담양좋고 여름하나니”

어느 순간 그가 생산한 품목이 인근 농부보다 다양했다. ‘신소득 작물’에 대한 관심과,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작물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노력 때문이었다. 그 중 하나가 애플수박이었다.
그가 애플수박에 관심을 가질 때 인근은 물론, 관내에서 관심을 가진 농가가 드물었다. 설령 관심을 갖더라도 재배하려는 시도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사실 새로운 품종을 시도하기란 모험에 가깝다. 성공한다 해도 판로 문제가 있으니 함부로 시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도전했다. 물론 책과 인터넷 검색으로 이론을 습득하고 발품을 팔아 선도농가에서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하다 보니 품목이 다양해진 것이다.

품목이 다양해졌으니 농장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가 처음 떠올린 이름은 용비어천가 일부를 차용한 ‘꽃됴코 여름하나니’였다. 이 이름으로 생산품을 판매하려고 군청을 방문했다. 군에서 디자인한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담당자가 이름을 보더니 ‘담양좋고 여름하나니’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담양이란 인지도 높은 지명도와 어감 등을 고려하여 추천한 이름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수락하고 바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럴싸한 이름으로 직거래에 나섰다.

“직거래가 장점만 있는건 아닙니다. 운송 중 발생한 훼손을 우리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구요. 제대로 알지 못해 항의하는 전화도 옵니다. 한번은 모자이크바이러스가 언론을 탔어요. 우리 상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애플 수박의 단면을 잘라본 고객이 바이러스에 감염된게 아니냐고 항의 전화를 했어요. 아내가 차분하게 대응하더군요. 사진을 다양한 각도에서, 클로즈업해 촬영해 보내라고 하여 구체적으로 비교하며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순간의 실수가 한 작기를 망칩니다.”

그는 귀농 3년 만에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그의 귀농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지인이나 친구들은 지금 부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한 마디씩 한다.
“니 직업이 가장 좋다!”
그의 부부도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귀농 초기에는 수입이 한꺼번에 몰려 어려웠다. 매월 일정한 수입이 있어 계획적인 소비가 가능했는데, 그렇지 못해 어려웠다. 그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여 그걸 극복했다.

그리고 도전의식 때문에 육체적인 수고도 덜었다. 그는 KT에서 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물인터넷의 첫 고객이었다. 말하자면 마루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거의 매일 사물인터넷의 개선점을 담당에게 전했다. 그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함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게 개선을 해놔야 이용 농가들이 편리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의무감으로 거의 6개월을 사물인터넷의 단점 보완에 매달렸다. 저가면서 효과 높은 사물인터넷이 드디어 완성을 이루었다. 덕분에 휴대폰으로 간단히 처리할 일이 많아졌다. 가성 대비 엄청난 인력 절감이고, 노동력 절약이었다.

▲양액 공급 여부를 알 수 있는 경광등

그가 단기간에 궤도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뚜렷한 전략 때문이다.
“실수가 한 작기를 망칩니다. 저는 성공보다는 망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한 번 망치면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리고 남들이 수확하는 걸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려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수란 게 힘든 것도 아니거든요. 문을 닫지 않는다든지, 온도나 양액 공급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등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기술을 요하는 것이라면 실수라고 안 부르지요.”

“폭넓은 대인 관계가 장점이다.”

그는 학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교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대인 관계가 무척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귀농하고 보니 만나야 할 층이 다양했다. 대부분 귀농하면 대인관계가 줄어드는데 그는 반대인 셈이었다. 그런 변화가 즐겁기 그지없었다.
“폭 넓은 대인관계를 하다 보니 엄청 즐겁더라구요.”
일이 힘들어도 낙천적인 아내가 버티고 있으니 오래 가지 않는다.
“맨날 늦게 끝나는 거보다 낫잖아요?”

그는 아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생활보다는 지금이 홀가분하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바쁘다. 기술원에서 교육도 밭고, 신소득 작물이 무엇인지 발품을 팔고, 멘토도 만나고, 작목반도 만나고, 이웃도 만나고, 지인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작물도 돌봐야 한다. 하루하루가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그런 바쁨이 오히려 삶의 활력소다. 살아있다는 증거 같다. 모든 게 아내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귀농을 강력히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일손을 거든 아내에게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여준다.
(귀농인 여인섭 연락처 : 010-3327-1124) / 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자

강성오 농업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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