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무지개와 세 주부의 놀이터  - 삼무루지 농장

▲삼무루지 농장의 세주부 농사꾼

“퇴직 후를 고민하다 새싹삼을 알게 되었어요.”

UN이 18세부터 65세까지 청년, 79세까지를 중년으로 새롭게 분류했다. UN 분류에 따르면 79세까지도 한창 일할 나이다. 퇴직하고도 뒷바라지해야 하는 가족이 있다면 퇴직 후를 심각히 고민할 것이고, 부양가족이 아니라도 혈기왕성한 사람이라면 뭔가를 하려 할 것이다. 조기 퇴직해도 재취업이 쉽지 않으니 재능을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창업이나 생소한 분야까지 기웃거린다. 하지만 낯선 분야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농사를 생각하기도 한다. 유년시절의 짧은 경험 때문일 터다. 그렇지만 농사는 가볍게 생각할 분야도, 쉽게 결정할 분야도 아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 거금을 투자해 농사지으려는 결정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업주부라면 더더욱 힘든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선뜻 내린 세 주부가 있다.

“남편이 퇴직하고 나서 할 일을 찾았어요. 미리 대비한다는 차원으로 우리가 직접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새싹삼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은 새싹삼 재배 설명회를 듣고 바로 결정했다. 새싹삼을 재배하기로. 삼에 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른 채 결정했으니 실로 무모하고 대담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남편의 충고 따위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냈다.

▲농장 내부

“남편도 퇴직 후 할만한 일을 들먹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꿈꾸는 것은 대부분 적게 일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에요. 세상에 그렇게 쉽게 돈 버는 방법이 있다면 누군들 실패하겠습니까? 그래서 남편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셋은 의기투합하여 준비에 들어갔다. 부모님 땅에 6천만 원씩 투자하여 240평 규모의 농장을 지었다. 농장만 지으면 목돈 들어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종삼 때문에 오천만 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그만큼 농사에 문외한이었다. 그러니 설명회 때 알게 된 멘토에게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다. 셋은 멘토가 시킨 대로만 했다.

종삼을 식재하는 날이었다. 멘토는 땅바닥에 던져놓아도 잘 사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셋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보기 좋고 튼실한 종삼만 식재하고 그저 그런 종삼은 바닥에 던져놓았다. 멘토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래도 살 줄 알았다. 식재 이틀 뒤 멘토가 와서 보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던져 놓아도 살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었지, 던져 놓아도 산다는 말이 아니라고 했다. 바닥의 던져진 종삼은 결국 살리지 못했다.

식재를 하고 이십여 일이나 지났을 것이다. 삼이 멘토 말대로 자라지 않은 듯했다. 멘토에게 자문하니 물이 부족하다고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라고 했다. 그들은 분무기 하나를 사와 일일이 분사했다. 하나로 하다 보니 능률이 떨어져 두 개를 더 사와 셋이서 분사했다. 장시간 하다 보니 손가락이 아팠다. 그렇다고 진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멘토에게 자문했다. 멘토가 와서 보고는 어이없어했다. 멘토가 말한 스프레이는 농업용 스프레이지 다리미질할 때나 쓰는 가정용 스프레이가 아니었다.

스프레이는 다음 날 사기로 했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혹시라도 하루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셋은 인근 아저씨께 경운기를 몰고 와 살수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셨다. 그런데 고압으로 살수한 탓에 새싹삼이 한쪽으로 죄다 기울어졌다. 태풍 때 휘몰아친 폭우를 맞은 듯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광경이었다. 초기에는 그렇게 좌충우돌식 영농을 했다.

“셋이라서 극복했어요.”

새싹삼은 힘을 요하거나 힘든 노동력을 요하는 품종은 아니다. 식재기에 집중적으로 노동력이 필요한데, 팔십 전후의 연세 드신 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부탁하면 망설이지 않고 수락하신다. 그럴 때는 사회적기업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방문객에게 브리핑하는 세 주부 농사꾼

근로 환경도 좋고 조건도 좋다. 물론 더 좋은 작물도 있겠지만 평균 이상은 되리라고 확신한다. 삼이 좋아하는 온도가 사람이 좋아하는 온도와 비슷하니 건강을 크게 해칠 요인이 없다. 아홉 시에 출근하여 네 시쯤 일을 마치고 다섯 시에 퇴근한다. 며칠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판로 걱정도 없다. 초기에는 지인 판매나 인터넷 판매에 비중을 두었지만, 지금은 많아야 30% 정도고 나머지는 도매로 낸다. 종삼 식재 후 두 달 이내에 세배 이상 받을 수 있으니 수익률도 좋다. 수출 상담도 진행 중이다.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고, 동업하는 순간 친구 관계는 끝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셋이기에 평탄한 날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성격도, 체력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셋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간은 일을 해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셋이니까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또 셋이니까 극복할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이 마찰이 생기면 한 사람이 중재하고, 한 사람이 너무너무 힘들어하면 둘이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 기쁨은 세 배가 되고, 고통은 삼분의 일로 줄어들었어요.”

“인삼은 말년의 무지개.”

▲종삼

▲출하 직전의 새싹삼

삼은 음지 식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음지에서 기른다. 굳이 음양을 따진다면 여자는 음에 해당한다. 음성적인 것이 또 있다. 민달팽이가 그 주인공이다. 민달팽이는 야밤에만 이동해 이파리를 갉아먹어 새싹삼에 피해를 입힌다. 삼에다 농약을 칠 수 없으니 셋은 작은 손전등을 들고 동이 틀 때까지 민달팽이를 잡은 적도 많았다. 그런 노력 탓일까. 새싹삼에 도전한 지 이제 3년 차인데, 지금은 가장 잘 키운다고 한다. 새싹삼으로 전국을 누비는 멘토가 한 말이다.
이제는 멘토가 아니라도 간단한 문제는 해결할 수준에 도달했다. 기본적인 매뉴얼을 능수능란하게 적용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변동을 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조언을 구한다면 적절한 처방전을 내릴 수도 있다. 앉으면 눕고 싶다고, 기술이 궤도에 오르니 편리함이 생각났다. 한때 스마트팜의 도입을 고민했지만 끝내 도입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삼과 대화를 나누는 게 하나의 큰 즐거움이니 그걸 포기할 수 없었다.

“일의 시작이 대화예요. 너 많이 자랐다? 언제 시집보내지?”
새싹의 대답을 들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 느낀다. 무럭무럭 자라서 빨리 시집가고 싶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남편들이 농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은퇴 후에도 할 일이 생겼다는 착각 때문인지 얼굴에 근심도 없다. 은근히 물어오기도 한다. 퇴직하면 농장에서 일해도 돼? 그때마다 대답은 단호했다. 안 돼.

지금의 셋이 좋다. 죽이 척척 맞는다. 수다를 떨면서 일할 수 있고 누군가가 제안하면 농장을 떠나 여행도 다니고, 문화생활도 누린다. 그런 삶에 남편들이 끼어들어 분란이 생길지도 모른다. 남자들이 해야 할 만큼 힘든 일도 없다. 그냥 셋이면 족하다. 장시간 농장을 비울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웃에게 부탁하면 되고 또 몇 번 부탁하기도 했다. 남편들이 끼어들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새싹삼은 그들에게 어떤 것일까.
“인생의 터닝포인트입니다.”
“노후의 좋은 놀이터지요.”
“말년의 무지개랍니다.”

애당초, 지금의 땅에서 꿈꾸었던 삶은 그게 아니다. 그 땅에 방갈로 형 요양원 몇 동을 지어 말년을 보낼 예정이었다. 큰돈을 벌려는 생각이 아니고, 놀 수 없어서 구상한 계획이었다. 요양원에서 소소한 일을 하면서 말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새싹삼이 꿈을 백팔십도로 바꿔버렸다. 그것도 사전 조사나, 꼼꼼한 준비 과정도 거치지 않고 덜컥 결정했다. 돌이켜보니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그런 담대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들도 없을 것이다. 그런 결정이 없었다면 아직도 은퇴 후를 고민하며 계획에 수정을 가하거나, 실행에 옮기려는 준비 과정을 밟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싹삼의 성공에 힘입어 그들은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바로 앞에 한과 공장도 있고, 담양에는 볼거리가 많으니, 볼거리와 먹거리를 접목한 관광코스를 만들 생각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조사하거나 연구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삼을 재배했듯, 언제 팔 걷어 올리고 전격적으로 코스 개발에 나설지 모른다. 좌충우돌 하더라도 셋이라서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날을 위해 지금은 농장을 놀이터 삼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귀농 '삼무루지 새싹삼' 연락처 : 010-7572-9468) /특별기고=강성오 농업전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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