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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담양담양사람들)/ 담양의 문화예술인(3)대나무공예가 장석원(담양부채 전수자)
  •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9.03.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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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장인 부친 이어 천직이 된 죽세공예
담양 전통부채 전수하며 전통문화 보존 앞장

장석원 대나무공예가는 어려서부터 생업으로 죽세공예를 접했다. 한때 객지에서 직장생활도 했지만 죽세공예가 그리워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대나무공예를 생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김대석 부채명인을 만나 담양의 전통부채 접선(민합죽선: 쥘부채) 전수자로 우리문화 전승,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연히 김대석 명인을 만났습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우연을 가장하여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관심이 없으면 기회가 찾아와도 무시하거나, 기회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내버리기도 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아무나 잡을 수는 없다. 준비된 자가 아니거나 관심이 없으면 기회가 찾아와도 흘려보내버리기 십상이다. 기회는 그런 것이다. 그런 기회,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포착하여 일생의 전환점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장석원 대나무공예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김대석 명인의 전수기술로 제작한 담양 전통부채

그는 담양에서 태어나 줄곧 담양에서 자랐다. 담양은 대나무가 많고, 대나무 제품을 만드는 집이 많아 대나무와 친숙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가 참빗을 만들어 내다 팔았으니 간단한 재료를 준비하거나 자잘한 심부름을 하며 아버지를 거들었고 그런 탓에 대나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죽제품이 인기가 많아 놀 틈이 별로 없었다.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대나무를 만지고 살았다.

그가 대나무를 멀리 한 적도 있었다. 2년 정도였다.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이었다. 양말을 만드는 회사에서 부서 책임자로 일했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담양으로 돌아가 죽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이란 판단이 섰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접고 담양으로 가려느냐고 강하게 반대하는 아내를 겨우 설득하여 연어가 회귀하듯 담양으로 돌아왔다. 서른을 갓 넘은 나이였다.
담양에서는 형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나무로 돗자리나 각종 소품 10여 가지를 생산했다. 그는 형과 함께 부지런히, 그리고 재미있게 제품을 생산했다.

“그렇게 살다 우연히 김대석 부채명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김대석 명인은 道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이었다. 김대석 명인은 현재 유일한 접선장(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8-1호)이다. 접선을 합죽선이라고 한다. 합죽선은 민합죽선과 합죽선으로 나뉘는데 민합죽선은 서민들이, 합죽선은 상류층이 즐겨 사용했다. 김대석 명인은 민합죽선의 대가였다.
“우연히 알게 된 명인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명인도 저도 대나무 공예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대나무공예가 화재의 중심에 올랐고, 제가 성실하게 종사하고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접선장을 전수 받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타 지역 분들은 끝까지 할지 의문이 들었나 봅니다.”
그는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김대석 명인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고, 기회로 여긴 탓에 명인에게 지도를 받는 기회를 움켜쥐어 전수 장학생까지 되었다. 흔히 전수 장학생은 가족이나 친지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김대석 명인과 일면식도 없었던 그가 전수 장학생이 된 것은 접선장의 대를 이어가고자 하는 명인과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형이 상을 받으니 은근히 욕심이 생겼습니다.”

20여년 대나무공예에 종사하는 동안 상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형이 응모한다면 별다른 감흥이나 기대 없이 돕곤 했다. 그런데 형이 2006년 전국대나무공예경진대회에서 입선했다. 형은 2008년도에도 입선했다.
“형이 상을 받으니 은근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응모를 준비했고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정성껏 준비하여 2008년 황실공예 대전에 출품했는데 입선의 결과를 얻었다. 그때부터 거의 매년 수상 실적을 올렸다. 2010년에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에서 입선, 2011년에 대한민국 한양공예대전에서 특선, 2011년에 대한민국 통일문화대전에서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두 번의 영광이 이어졌다. 2013년에 한국문화예술 한중친선국제대회에서 대상, 2014년 한국문화예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다음 해인 2015년에는 영호남문화예술 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형을 보고 자극을 받아 출품했는데 심사위원들이 그의 작품성을 인장한 것이었다. 그의 형 또한 수상 실적이 화려하여 형제가 수상한 것을 모으면 14개나 된다.

“경진대회 주최 측의 취지에 부합하는 작품을 응모하곤 했는데 그래서 운 좋게 수상을 많이 했나 봅니다.”
그가 겸손하게 말했지만 운으로만 어떻게 상을 탈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그의 작품이 출중했을 터였다. 그에게 가장 큰 상인 대상을 수상했을 때의 소감만을 물었다.
“대상을 수상했으니 당연히 기쁘고 보람도 컸지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책임감과 의무감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대나무공예를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라는 메시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그런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대나무공예를 놓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대를 잇고 싶습니다.”

수상 실적이 화려하다고 해서 제품이 판매와 직결되지 않았다. 수상을 하지 못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현재 실정이 그렇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홍수처럼 들어오고, 간편한 플라스틱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라 대나무공예품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제품의 다양성에 신경을 쓴다.
공장에서 그의 일과는 8시에 시작해 5시 반에 끝난다. 말이 공장이지 작업장이다. 그는 작업장에서 30가지를 생산한다. 예전에는 대나무 돗자리,죽방석,죽시트 등 10가지만 생산했는데, 어떤 제품이 팔릴지 몰라 기존 죽제품 외에 최근의 트렌드에 맞춰 소품, 기념품 등을 추구하여 다양하게 준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 편히 쉴 틈이 없다. 게다가 함께 일했던 형이 아파 혼자서 생산한다. 집으로 돌아가도 생산은 이어진다. 여러 가지를 생산하다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바쁜 만큼 힘이 든다. 제품이 다양하다는 말은 재고가 많이 쌓인다는 말과도 같다. 나날이 불어나는 재고에 한숨이 늘어만 간다. 그렇게 심신이 지침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대나무공예는 나의 운명 같습니다. 그러니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운명을 다하는 날이 대나무공예를 놓는 날이 되겠지요.”
지친 심신에도 대나무공예를 생산한 것은 생계 때문만이 아니라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전승을 해야 하는데, 대나무공예를 이어갈 젊은이가 부족하니 힘이 닿는 데까지 생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지친 심신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접선장이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접선장을 만든다. 정성껏 만든 접선장을 들고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인 김대석 명인을 찾는다. 명인에게 어디가 잘 되었고 잘못된 곳은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자문과 지도를 받는다. 명인께서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듯 꼼꼼하고 자상하게 지도해 주신다. 명인도 접선장의 맥이 끊기는 걸 우려해서일 것이다.
“대를 이어가려고 선생님께서 자상하게 지도해주시는 걸 잘 압니다. 선생님의 바람대로 대를 잇고 싶습니다.”

대를 잇는 것은 숙제 같기도 했다. 그는 대나무공예와 접선장의 대를 잇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는 자주 생각한다. 내 뒤를 이어 누가 대나무공예와 접선장의 대를 이을까. 젊은이들이 꺼려하니 쉽지는 않을 듯했다. 그래서 과년한 딸에게 은근히 물었다. 대나무공예를 배울 생각이 있냐고. 딸은 단박에 거절했다. 아빠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산하지만 노동력에 비해 수입이 받쳐주지 않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자식도 마다한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일을 누구에게 권유한단 말인가. 이래저래 한숨이 늘어간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누구에게나 기회가 찾아올 수 있지만 아무나 기회를 잡을 순 없다. 그가 김대석 부채명인을 만나고, 전수 장학생으로 지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도 모른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기회가 주어졌으니 허투루 배울 순 없다. 형은 아파서, 딸은 관심도 없으니 혼자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걷기 위해 그는 동이 트기 무섭게 눈을 비비고 일어나,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작업장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강성오 문화전문기사

*대나무인테리어 시공(담양문화회관 로비)

강성오 문화전문기자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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