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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담양의 인물(1) 김태원 의병장남면 무동마을에서 왜병 요시다 부대장 사살

본지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담양지역 의병활동 인사와 애국애족에 헌신한 분들을 기록한 담양군향토문화연구회 발행 ‘담양이야기(이해섭 著)’ 내용을 기획특집 ‘담양의 인물’ 기사로 지면에 소개합니다.
아울러 과거시대 담양이 낳은 훌륭한 인물, 유명한 인물을 이어 소개함으로써 담양인의 자부심과 자긍심 고취에 조력하고자 합니다. 본지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지면게재 인물들에 대해 추후 보완 취재를 통해 보다 상세한 기록을 '담양천년 특별기획Ⅱ' 편으로 지면에 보도할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남면 무동마을 기념비(담양을 아끼는 사람들-2005년 건립)

의병장 김태원의 총 한방에 쓰러진 일본군 요시다 부대장의 가슴을 관통한 그 총소리가 99년이 지난 지금도 무등산 자락의 산울림이 되어 귓전을 두드리는 것 같다.

김태원 의병장은 전남 咸平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이며 호는 죽봉(竹峯) 자는 준(準)이다.
고종 15년 무인(1878년) 9월 16일 태어나 1908년 4월 25일 31세로 전몰했다. 

김태원 의병장은 1907년 9월 장성출신 기삼연(奇參衍)과 호남창의대(湖南倡義隊)를 조직, 그 부대의 선봉장이 됐다. 김태원 의병장은 나주 부근을 본거지로 담양·창평·함평·장성·영광 등 각지에서 왜군을 기습 혁혁한 전과를 올린 맹장으로 유명한 분이다. 1908년 1월 1일(음력설날) 당시 창평군 외남면 무동촌에서 의병 토벌에 나선 악명 높은 왜병 요시다 부대장을 사살했다.

무동촌 일대에 잠복중인 김태원 휘하의 의병부대를 포위한 왜병은 먼저 선발대를 마을로 들여보내고 곧이어 요시다 부대장이 말을 타고 근처를 살피며 들어오는 것을 정포(精砲) 2명과 함께 돌담사이에 매복했던 김태원 의병장이 요시다를 명중시키고,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단숨에 달려가 칼로 찔러 즉사시켰다. 부대장을 잃은 왜병 1백여명은 모두 도주했고 의병들은 사기가 충천했으며, 요시다의 쌍안경과 권총 그리고 많은 총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밖에도 김태원 의병장은 1908년 1월 20일 함평 주재소(경찰지서)를 습격했으며 2월 20일에는 장성 토정리에서 적병 50명을 포살하였다. 또한 3월에는 나산에서 일군과 정면 충돌하여 20여명을 살해하고 수십명을 부상시켰으며 4월 25일 함평군 오산면 박동산에서 요통(腰痛)을 치료하고 있던 중 적의 기습을 받아 치열한 교전 끝에 부하 13명과 함께 순국했다.

선열유묵첩(先烈遺墨帖)에 김태원의 친필 편지가 실려 있는데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있는데 의기 남아가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겠느냐? 진중갈력(盡忠竭力)하는 것이 의(義)에 마땅한 일이요. 창생을 건지는데 뜻이 있을진대, 명예를 위하는데 있지 않다. 병(兵)은 죽을 곳에 웃음을 머금고 돌아가는 것이 옳으리라”
이는 동생 김율(金聿)에게 의거할 것을 종용한 편지다.

이같은 애국애족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김태원 의병장의 공적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담양군 남면 남초등학교 교정에 그 정신을 담은 비가 세워져 있고, 무동마을에는 지난 2005년에 지역 사회단체인 ‘담양을 아끼는 사람들’에서 건립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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