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본지 칼럼위원)

   ·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 前대인예술시장 총감독

누구나가 그렇듯이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거나 물끄러미 주저앉거나, 사람들을 피해 다니거나 미친 듯이 질주하거나 질펀하게 술을 마시며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본다. 어딘가에 있을 묘안을 찾기 위해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현실을 돌파한다. 밥 한 그릇이라도 배불리 먹고자 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삶의 질을 어떻게 고양할 것인가에 고민하던 시대로 이행하고 뒤 이어 나만의 생애를 색다르게 구축하고자 하는 시대로까지 돌입해 있다. 그런 나만의 생애는 개별적 취향이 존중받고 관심과 응원을 받는 시대로 왔음을 의미한다.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한 담양은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대응력이 남달랐다고 볼 수 있다. 너른 뜨락에서 생산되는 벼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도시근교로서 하우스 농업에 일찌감치 눈을 떴고, 심지어 딸기에게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아 일찍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전조딸기를 생산해 냈던 저력도 있다. 지천으로 솟아나는 대나무를 이용하여 실생활에 가장 필요한 소쿠리나 방석이나 돗자리, 삿갓 등으로 제작하여 팔도에 공급했던 역사도 지니고 있다. 농업기술과 손기술이 담양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을 때 또 한켠에서는 전국민의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3차산업인 서비스업에 접근했다. 이런 개안의 선구자중의 한분을 필자는 두 분을 꼽고 싶다.

그 첫 번째는 고인이 되신 이해섭 선생님이시다. 평생을 고문서에 집중하며 담양 역사의 거시사와 미시사를 들춰내고 알리는데 애쓰신 생애였다. 선생님이 주도해서 만들어낸 향사의 맥을 비롯한 다양한 번역본과 마을 유래, 전설 등이 오늘 담양의 아이덴티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초석이자 정신사의 우물과 같은 역할을 하게 했다. 담양의 문화원에서 이 뒤를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불광불급의 세계에 동승하기에는 역부족인게 현실이다. 담양의 인문에 심취하고 이를 업으로 삼으며 맹진하는 일련의 학자군을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시급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이해섭 선생님을 통해 배워나가야 한다.

두 번째로 꼽고 싶은 분은 고 신복진 선생님이시다. 진실을 담은 앵글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삭막함 속에서 역사의 실체와 만나려 하셨던 분이자, 대나무의 미학을 사진을 통해 알리고자 노력하며 마침내 금성면의 봉서리에 대나무골 테마공원까지 만드셨던 선구안을 가지셨던 분이다. 식재료로서, 생활도구로서 쓰임을 바라보다 중국산, 필리핀, 베트남산의 죽제품과 플라스틱이 급습하자 두손두발 다 놓아버린 한반도의 대밭 담양이 진퇴양난의 처지에 이르기도 전에 선생은 대나무를 심미적 관점에서 활용하고자 스스로 대숲을 키워 나가셨다. 오늘 죽녹원은 신복진 선생의 오마주라고 말해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지자처럼 눈을 틔운 사람, 오롯이 한 생애를 한곳에만 집중하며 성취해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지금 담양에 누가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토록 배움여행의 성지로 각광 받으며 농촌재생, 관광명소로 알려진 유후인은 온천관광이 쇠락해가자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었다. 오늘 현재의 일을 해결하기 힘들고 속수무책인 상황에서도 유후인 사람들은 얼굴 맞대며 오늘이 어렵다고 내일까지 어렵게 가선 안되니 우리 아이들이라도 제대로 공부시켜서 지혜를 가지고 유후인을 지켜나가게 하자고, 서둘러 세상의 곳곳에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성장한 아이들은 유후인을 살릴 방법을 찾았고 속속들이 유후인으로 모여 번성했던 옛 시절을 향수로만 여기지 않고 새로운 유후인의 활력을 부여했다.

결국 사람의 일이란 것이다. 대처로 나가 일가를 이룬 이들이 많지만 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관심을 유발하고 함께 도모하는 동기부여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화급한 일이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이 또 있다. 인생의 휴지기를 보내기 위해, 자연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창작여건을 구축하기 위해 등등 많은 이유로 저명인사들이 담양의 수북이나 대전, 창평, 대덕 등으로 이주해 왔다. 담양이 인구 7만의 자족형 도시를 지향한다는 비전안에는 이분들에 대해 어떻게 환대하고 함께할 궁리가 있어야 한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값진 경험과 삶의 지혜를 도시재생과 인문도시 담양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되도록 앞장서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 하나 요즘의 젊은이들은 자기 삶의 공간을 바꿔보는데 익숙하다. 스펙이나 학점, 외국어 등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서열화하고, 미래까지 흔들리게 한다지만 역사는 필남필부가 써 왔다. 평범함 속에 내재된 비상함을 우리는 삶속에서 가까이 접해왔다. 그런 DNA를 담양에서 가장 슬기롭게 활용해 보자.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기회, 도약의 기회 등이라는 유혹의 언어로 쓰담길의 20개 공간을 제시하지 말고, 그냥 뭘해도 좋으니 살아 볼 사람들, 해도 해도 안되는데 그래도 무언가 해볼려고 하는 이들에게 개방해 보자. 기회의 땅, 관용과 포용의 땅, 씨앗을 죽녹원처럼, 관방제림처럼 숲으로 만드는 은근과 끈기의 저력을 사람을 맞이하고 성장시키는데 활용해 보는 것이다. 다시 또 얘기한다. 도시재생은 사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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