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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아랫마을(하성,下城)당산제와 문인석에 얽힌 사연 흥미로운 하성리

▲마을전경

뚤레뚤레 동네한바퀴/
금성면 하성리는 지금은 30여호 미만에 불과하지만 예전엔 50호 이상 옹기종기 모여살던 그리 작지않던 마을이었다.
하성리 옛 이름은 당초 배 주(舟)에 나룻터 진(津) ‘주진리’ 였으나 조선시대 말에 금성산성 아랫마을이라 해서 하성(下城)으로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입주민은 임진왜란을 피해 피란 온 이천 허씨, 밀양 박씨 일족이 최초로 자리잡았고 피란터의 무사안일과 태평성대를 빌고자 마을 중요한 자리에 당산나무를 심고 당산제를 지내왔는데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 당산제로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마을민의 안녕과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형태로 지내고 있다.

하성리는 ‘금실좋은 마을’로 유명하며 여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네 어귀 우람한 당산나무에 온몸이 쌓여 마을앞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문인석(文人石)에 얽힌 이야기가 꽤나 흥미진진한데....이 문인석이 바라보는 들녘에는 돌로 만들어진 할머니 석인상이 서 있고 이 둘은 보통사이(?)가 아니라는 것.

이 마을 방극동 이장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문인석이 자리한 것은 대략 300년 이상 되었다는데 신기하게도 당산나무가 문인석을 품안에 보듬고 있어 마을 수호신을 보호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당산나무에 안긴 문인석

당산나무가 돌로 만든 문인석을 보듬고 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300여 미터 떨어진 들판에 서 있는 할머니 석인상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 또한 흥미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두 석인상이 마치 연인처럼 바라보는 모습이 ‘금실좋은 부부석상’ 으로 소문이 나 옛날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 마을사람은 물론이고 소문을 듣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 당산나무 아래 문인석과 들판의 할머니 석인상에 치성을 들인 후 아들을 낳은 사례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어떤 이는 아들만 셋을 낳기고 했다.
더욱 특이하고 흥미로운 것은 문인석을 품고있는 당산나무가 ‘연리지’라는 사실이다.
두 나무가 한데 엉켜있는 ‘연리목’을 가끔 눈에 띄나 한 나무가 형제자매처럼 가지가 엮여있는 ‘연리지’는 보기 쉽지 않은데 이 마을 당산나무는 문인석을 보듬고 있는데다 가지까지 연리지 형상을 보여주고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아무튼 하성마을의 문인석은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 태평성대와 함께 인재를 키워 과거급제하는 문인과 관료들을 많이 배출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담아 300여년 전에 마을 어귀 당산나무 밑에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마을민들의 뜻대로 수백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을에 좋은 일을 많이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선비와 문인, 관료가 많이 나왔고 현재는 이마을 출신으로 공직에 나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인석’의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기자는 방극동 이장이 전해주는 마을유래와 문인석, 당산나무에 지내는 당산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금성산성을 품고있는 산성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 사이로 난 좁은 마을길을 따라 뚤레뚤레 동네한바퀴 마실을 다니며 마을풍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보았다./ 장광호 기자

▲참깨 타작중에 담소를 나눈 마을 할머님들(장성댁, 팔덕댁, 백동댁...)
▲효행을 칭송한 마을 국씨 제각(심효제)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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