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전기도 안 들어오고 확성기 방송도 없던 시절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동산에 올라 동네일을 알리거나 종을 쳐서 소식을 전했다. 농사철에 비가 안 오면 하천을 굴착하고 물을 찾아내어 도랑을 내고 물을 대는 일에는 마을 전체가 공동 작업을 했다.
아무리 바쁜 농번기에도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3일 동안 일손을 멈추고 모두 장례준비를 했다. 음식을 만들고 먼 동네까지 부고를 전하는 파발마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다녀오는 그런 장례준비에 온 동네 사람이 참여하였다. 그렇게 시골은 울력이라는 공동 작업 속에서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정다운 시골 마을을 만들었다.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하는 일을 말한다. 마을 공동체에서 노동이 필요할 때 보수를 받지 않고 서로 도와주는 것으로 마을 사람은 누구나 강요는 없어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울력은 협동 노동방식이기는 하지만 무보수의 노동력 봉사라는 점에서 도움을 받는 만큼 도움을 주어야 하는 두레나 품앗이와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울력은 마을 단위 공동체에서 적용하고 품앗이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어 일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돈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나타나고 노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울력과 같은 봉사적 노동방식은 어느 날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덩달아 후한 시골인심도 도시보다 더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시골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힘든 인생 여정을 마칠 때가 다가오면 시골출신들은 귀촌을 꿈꾼다. 녹음의 푸름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덮인 길을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낭만을 꿈꾼다. 그만큼 우리 세대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힘들게 달려왔기에 이제는 어딘가에 포근히 안기고 싶은 그런 꿈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명절이면 시골에는 현수막이 걸린다. 귀향을 환영하는 동네 토박이들의 진심어린 보고픈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런 시골이 이제는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라는 마음이 사라졌다. 한 푼 더 벌어 잘살기 위해서는 나도 잘되고 너도 잘 되어야 한다는 협력의 마음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다. 또한 시골의 빈집으로 귀촌하는 도시민들의 다른 생활 습관과 다른 삶의 모습은 시골 동네에 이방인의 모습으로 보여 지고 있다. 법을 넘어 관습과 전통으로 이끌어 나가는 동네 운영을 법의 잣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런 이방인들로 인해 동네가 시끄러워지는 일도 발생하는 시대가 왔다. 귀촌 장려활동으로 빈집은 줄고 시골 인구는 늘어나겠지만 거주지만 시골일 뿐 일상생활은 도시민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 많다면 정겨운 시골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요즘 시골은 겨울 하우스 농사를 위한 시설 준비에 한창이다. 과거에 비해 인력은 없고 인건비는 오르는 농업에 울력은 일석이조의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면 매년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하우스 비닐 교체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한다면 순식간에 낡은 비닐을 걷어내고 새 비닐을 씌워버릴 수 있다. 이런 울력은 자연스레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끼리 감사의 마음을 갖게 만든다. 울력을 통해 소통하고 땀을 흘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울력의 부활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지도자의 리더십과 행정지원이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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