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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칼럼7-(1)/담양 원도심 활성회....담양다움담양 관광과 ‘의향’, 그리고 ‘스토리텔링’

■ 양성현(본지 기획위원)

    · 역사·문화스토리 작가
    · 전.내일신문 기자

 

 

 

 

바야흐로 ‘관광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도시의 역동성을 따지는 척도로 흔히 그 고장에 거주하는 인구수에다가 관광객 수를 따질 정도다. 관광경쟁시대를 맞아 담양은 과연 역동성이 넘치는 도시로 평가받을 만할까? 한 해 담양을 찾는 외부 관광객 수가 ‘7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인근 광주가 230만 명으로 한참 뒤지는 도시에 머물러 있는 것에 견주면 담양은 비약적이라 할만하다.
당연히 담양은 ‘역동성이 있는 도시’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담양은 관광을 위하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최형식 군수는 그동안 버려진 폐창고를 커피가 있는 멋진 문화공간으로 바꾸었고, 옛 주조장도 문화예술명소로 탈바꿈 시켰다. 또 정미소는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시장길과 대나무공예품을 만들던 곳을 멋진 명소길로 만들었다. 대나무도시 담양을 더 굳건히 했다.
옛 명소를 찾던 이전 관광 트랜드에서 최근 문화명소를 찾는 관광으로 탈바꿈한 것을 담양군은 일찍 간파한 것이 주효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천만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더 역동적인 담양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기대에서는 담양이 가지고 있는 자원에 관심과 애정을 보여 볼만하다는 것이다. 
해법은 새로운 관광을 만드는 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기존 멋진 관광지를 인문학 스토리텔링으로 맛깔나게 풀어가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겠다 싶다.
해법은 ‘사람’에게 있다. ‘우리에게’ 있다. 여기까지는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를 실행하기까지에는 약간은 고충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담양 관광에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담양은 관광으로 이끌 소중한 자산이 아주 많다. 우리 담양 사람들이 오히려 “이거 별거 아닌데” 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가졌던 고정 관념을 버리고 찾아보면 쉽게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가령 의병 관련 문화는 담양 관광에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담양을 ‘의향’으로 불러도 될 만한 대단한 것을 담양은 갖고 있다. 왜 담양을 ‘의향’의 도시라 불릴만한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담양은 전국의병의 대부분을 차지할만한 1만1천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담양회맹군을 이룬 고경명 연합의병부대는 6천명에 이르고, 담양에서 창의한 김덕령 의병부대는 5천명이나 됐다. 이는 몇 십 명에서 몇 백 명 수준에 머물러 있는 타 지역 의병부대 수를 압도할만한 수준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많은 의병들을 모을 수 있는 당시 담양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결국 사람들에게 있었다. 나는 ‘담양의 10정자에 주목하자’라고 말하고 싶다. 담양의 10정자는 담양의 군민이나 이곳에 관광 온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풍류를 즐기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담양의 10정자는 의병을 모으는 회합의 장소였다. 소쇄원의 주인이었던 양자징의 사위 안영이 의병에 출장한 것이 다 이런 이유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담양은 호남지역 21개 시군에서 정자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졌고, 이곳의 중심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 의병운동의 발전에 정신적, 물질적 기반이 되었다. 담양 정자를 중심으로 실천적 지식인들은 임진년에 의병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담양의 의로움은 ‘호남의 의로움’으로,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표 의로움’으로 확장된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 의병으로 올라가고, 또 1555년 을묘왜변으로 올라간다. 한말의병보다는 적게는 300여년, 많게는 360년까지 올라간다. 이들이 모두 ‘죽음을 각오한 의로운 길’에 기꺼이 나선 것은 “장차 있을 변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담양에서 출장한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병은 자보향리(自保鄕里 자기가 태어난 곳을 스스로 지킴)라는 향토방위를 초월하는 그 이상의 의로운 활동을 벌였다. 담양에서 출발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은 서울인 한양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출정한다. 금산전투에 나서고 진주로 왜군을 쫓아 전투를 벌였다. 향병(鄕兵)에 머물렀던 타 지역 의병과 다른 궤적을 남겼다.
목표한 한양 수복을 이뤄 냈지만 이들은 왜군을 그냥 돌려보낼 경우 장차 다시 침입할 것으로 보고 진주로 추격한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이런 큰 의로움으로 이룬 전투였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157명의 76%가 전라도 출신으로 알려졌다.
경상도 한복판인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경상도 출신이 14%에 머물렀는데 호남 의병들의 절대 다수가 의로움을 보여준 역사였다.

“담양은 그동안 가졌던 것들, 특히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할 때 담양의 10정자는 그런 의로움의 출발이 될 것이다. 이를 인문학으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렇게 풀어 가면 담양을 찾는 외지 사람들도 그저 담양의 10정자를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담양의 의병문화가 돋보이게 드러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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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현은 문화기획자이자 역사·문화·향토 스토리작가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내일신문 기자를 거쳐 요즘 지역에 숨어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 관광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양림동 걷다> <싸목싸목 걷는 광주12길> <한양도성 가는 길> <제주도 가다> <서울둘레길> <그길 걷다보면> <미술관 가는 길> <앙코르와트 4박5일> <그리운 맛 나주음식> <사암 박순>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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