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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 담양의인물(4)하서 김인후

담양의 인물④ 하서 김인후 (河西 金麟厚, 1510∼1560)

▲식영정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의릉참봉 김령(金齡)의 아들로 장성 맥동 출생이다. 
담양과의 인연은 식영정 일원에서 면앙정 송순,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등 당시 명유들과 교류하였고 송강 정철이 시문을 익히는데 스승 역할을 했다.
 
하서는 10세 때 호남관찰사로 내려왔던 김안국을 찾아가 『소학』을 배웠으며 이어서 송순에게도 학문을 배웠다. 18세인 1527년 화순에 귀양 와 있던 신재 최산두를 찾아가 수학했다. 이 무렵 사서·오경뿐만 아니라 제자백가까지 섭렵하였으며 천문지리, 음양산수(陰陽算數), 율려척도(律呂尺度) 등에도 두루 통달했다. 1531년 사마시에 합격했으며 1533년 성균관에서 공부하며 이황과 교유했다. 1540년 문과에 합격하고 이듬해 김안국의 천거로 호당에서 사가독서했다. 1543년 홍문관박사 및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며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으며 이어 홍문관 부수찬에 올라 기묘사화 피화자의 신원을 청하기도 했다.
1545년 인종이 죽자 사직하고 귀향해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했다. 1556년 서경덕의 학문이 하학(下學)을 소홀히 하고 돈오(頓悟)로 이끌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으며 1557년 「주역관상도(周易觀象圖)」와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를 저술하여 성리설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다.

1558년 퇴계 이황과 태극도설(太極圖說)에 관해 토론하던 고봉 기대승이 와서 의견을 구하니 태극과 음양을 일물로 보는 이항의 설에 반대하는 기대승의 입장이 옳다고 대답했다. 또한 나정암(羅整庵)의 견해에 따르는 노수신(盧守愼)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비판하는 글을 써 뒤에 이황과 기대승이 노수신의 설을 반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 이론화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소학과 효경을 학문의 시작으로 강조하였으며 예학에도 조예가 깊어 주자가례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예서인 가례고오(家禮考誤)를 저술했다. 문인으로는 정철, 기효간, 변성온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하서집(河西集) 등이 있다.

하서 김인후는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과 곡성 영귀서원(詠歸書院)에 배향되었고 1796년에는 문묘(文廟)에 배향됐다. 송순 등 당대의 명유들과 교유하며 「면앙정삼십영」(1552년), 「소쇄원사십팔영」을 지었다. 양자징(소쇄옹 양산보 아들), 유경렴(미암 유희춘 아들), 일재 이항의 아들을 사위로 맞았고 조희문의 장인이다. 문집으로 『하서집(河西集)』이 전한다./자료정리=담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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