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마지막회

  시도해보지 않으면 더 큰 후회가 남는다. 일단 시도나 해보자. 그녀는 졸복을 통째로 끓이려다, 그래도 독성이 너무 강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과감히 배를 갈랐다. 졸복의 내장과 눈을 제거하고 핏기는 깨끗이 손질하지 않았다. 등뼈에 실핏줄 같은 핏기가 남아 있었다. 남편은 핏기까지 깨끗이 제거해야 독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녀는 의도적으로 핏기를 남겼다. 핏기를 제거해버리면 복어 독에 중독될 리 없을 테니, 간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녀는 핏기를 제거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렸다. 물이 끓는 동안에도 얼마나 많이 생각을 바꾸고 또 바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죽기 직전 시도나 해볼 걸 하는, 천추의 한을 남기지 말자였다. 해독제를 믿기로 했다. 믿지 않는다 해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택할 수밖에. 그녀는 간을 맞추려고 졸복탕에 소금을 넣고 대접에 탕을 퍼 담아 해독제가 놓인 쟁반 위에 올려 안방으로 가져왔다. 막상 탕을 먹으려니 갈등이 폭풍처럼 또 휘몰아쳤다. 그녀는 세뇌하듯 읊조렸다. 해독제가 있다. 잘못돼도 단지 석 달 먼저 갈 뿐이다. 금빛 찬란한 삶이 아니니 석 달을 더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눈을 감을 때, 시도라도 해 볼 걸 하는 후회는 남기지 말자.

몇 번이고 자신을 다독이고, 기도하고, 결심하고 나서야 그녀는 숟가락으로 탕을 떠서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소금이 덜 들어가고 양념을 하지 않아 싱겁고 밍밍한 탕이 입에서 한참을 맴돌다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녀는 또 갈등했다. 면역성을 길러야 하니 오늘은 한 숟가락만 먹고 내일은 두 숟가락을, 모래는 세 숟가락, 그렇게 차츰차츰 늘려갈까. 그러다가 어느 세월에? 주말에 딸내미도 온다지 않은가. 하루가 다르게 부어오르는 몸을 그때까지 만이라도 멈추게 하고 싶었다. 딸내미가 놀러 왔다 부어오른 그녀 몸을 보고 또 다른 고민에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게걸스럽게 대접을 깔끔히 비우고, 구토를 대비해 비닐봉지와 해독제를 옆에 놓고 반듯하게 누웠다.

한 시간이나 지났나. 혀끝에서 미세하게 절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 독이 퍼지고 있는 증상일 것이다. 기대와 불안감이 동시에 솟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독제를 집어 들고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여는 손의 감각이 평소와 다르게 무뎠다. 망설이지 않고 해독제를 벌컥벌컥 마셨다. 바닷물에 소금을 한 움큼 넣은 것처럼 엄청나게 짠맛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해독제가 위장까지 내려간 것일까. 갑자기 속이 뒤집혔다. 비닐봉지를 입에 대자마자 토사물이 쏟아졌다. 어제 먹은 것까지 역류하는 소리가 방안에 진동했다. 토사물로 비닐봉지가 묵직했다. 위장에 남은 독성이 모두 빠져나온 듯했다. 남자가 말한 일차적인 반응 같았다. 불안감보다 희망이 크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기운이 빠지고 어지럼증이 심해졌다. 반듯하게 앉아 있으려 해도 몸이 자꾸만 기울어졌다. 이게 명현반응일까. 아닌 것 같았다.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그녀는 소리쳐 그를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입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숨도 점차 가빠졌다. 그녀가 구역질하는 소리를 들었을까. 남자가 방으로 급히 들어와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는 어렵사리 고개를 흔들었다. 남자가 119에 전화를 걸어 복어 독으로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다며 긴급 출동을 요청했다.

“해독제라면서라우?”
그녀는 간신히 말을 뱉었다.
“맹신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토할 때, 중화제 성분까지 모두 나와 버린 듯하니 주사제를 개발해야겠어요.”
남자는 해독제 병을 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주사기가 있으면 해독제를 주사해주라고 말하고 싶은데, 남자의 행동을 보니 주사기가 있다고 해도 그녀 몸에 흔적을 남기는 짓은 하지 않을 듯했다. 경찰의 수사를 대비한 게 분명했다. 그래도 그녀는 말이라도 건네 보려고 입을 달싹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득 남자가 낚시가방의 명찰을 뒤집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자가 제약회사에 근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떳떳하다면 이름을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간암에 걸렸고, 병원 약이 듣지 않아 수소문 끝에 졸복 독으로 제조한 민간약을 구했지만, 먹일 자신이 없어 시험대상을 찾았을 것 같았다. 남자가 고른 시험 대상이 그녀였을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왜 이제야 생각난단 말인가. 그녀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남자를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명찰을 뒤집던 남자를 수상쩍게 여겼다 해도 그녀는 해독제를 믿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이승이 나을 테니까.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제 온몸이 굳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한 가닥 희망이 저 깊은 바다에 수장되었음이 느껴졌다. 순희로 불렸던 22년과 동구댁으로 불렸던 37년이 스쳐 지나갔다. 그 세월 모두 음습하고, 어둑하고, 아등바등했다. 외로움을 달래줄 남편도 없으니 더 이상 미련 같은 것은 없다. 딸에게 물려줄 것도 없고, 쓸 만한 것은 모두 챙겨 두었으니 가져가기만 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딸과 사위와 외손자들이 와서 볼 텐데, 너무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남은 식구들에게 마지막이라도 예쁘게 보여줄 걸. 그런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피곤할 때, 아파서 홀로 누워있을 때, 가슴이 텅 빈 듯 외로울 때, 암담한 현실이 오랫동안 온몸을 옥죄어 올 때, 남편은 어김없이 꿈에 등장했다. 그녀가 저승에 가면 틀림없이 마중 나올 남편을 생각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눕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그것뿐이다.  (끝)

* 강성오 단편소설 <졸복>은 이번호 제8화를 끝으로 마무리 되고 다음호부터 <균을 위한 발라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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