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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길,마당도 예쁜 강쟁리

담양뉴스는 지역사회와 더욱 가깝고 밀착된 마을뉴스, 동네뉴스, 골목뉴스 서비스 제공을 위해 '뚤레뚤레 동네한바퀴' 코너를 신설하고 마을의 자랑거리와 소식,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합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마을은 우선적으로 취재, 소개해드립니다.
(취재문의 : 담양뉴스 381-8338 또는 양홍숙 군민기자 010-2352-9563)/편집자 주

*마을을 지켜오신 김기진 이장님 부부

담양뉴스 신문에서 정보를 얻어 지난 5~6월에 ‘문화재 이야기꾼 양성과정’에 참여했다. 
담양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서였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담양군이 주최하고 (협)천년담양문화제작소가 주관하며 담양뉴스가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담양생생문화제작소가 주관했다. 수료를 한 지금은 현장에 가서 방문자들 대상으로 해설하는 실전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인생 경험자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도 좋지만, 배운 다음 현장에서 실제로 활동을 해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이곳에서 박선화 선생님을 만났다. “담양에 언제 오셨어요?” “6개월 됐어요.” 저는 3년 되었으니 제가 귀촌 선배네요. “저는 담양 강쟁리에서 태어났어요. 도시에서 살다가 친척 집이 빈집으로 남아있어서 수리하고 이사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남편이 썩 내켜 하지 않았지만 지금 은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환경 활동을 20년 해오셨다. 광주 북구 일곡동 토종 씨앗 나눔과 일회용 사용을 금지하는 친환경 장터인 ‘한새봉 개굴장’을 일군분 중 한 분이다. 선생님은 성격도 활달하고 싹싹해서 좋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 더욱더 빨리 친근감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강쟁리는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강쟁리는 담양에서 제일 큰 마을로 105호가 살고 있다. 마을 가운데쯤 지나가다가 닭장과 밭 그리고 넓은 집 담장에 빽빽이 심어놓은 과실수가 눈길을 끌었다. 다가가 보니 금성댁이 아드님과 이야기하면서 콩밭을 메고 계셨다.

*논일, 밭일에 언제나 열심이신 금성댁

“둘째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해서 나한테 쉬라고 한디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누워 있다가 답답해서 나왔소.” “젊어 보이시는데요.” “시아제와 동서가 우리를 미워했는갑서. 당신들은 제금나서 살다가우리 부부가 부모님이랑 농사를 지어놓으면 다 가져가버린께, 우리가 제금난다고 했드니 집에 와서 이것 저것 간섭합디다. 그러더니 쌀 40키로만 주고 나가라라고 해서 내가 갖고있든 폐물을 다 팔아서 자전거랑 리어카를 샀제. 참말로 쉬지않고 열심히 살았제.”

*마을전경
*집도, 마당도, 길도 에쁜 강쟁리 마을

금성댁 집을 둘러보니 트로트를 틀어준 축사와 농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농기구 그리고 900평이 넘는 집터 담장을 에워싼 가지가지 과실수들이 정말 열심히 사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을 방문 전에 강쟁리를 검색해보니 이장님이 유명인사였다. 사업할 때는 낮에는 밖에서 일하고 아침저녁과 주말에는 이장업무를 보시면서 30년 이장직을 맡고 계셨다. 방문 날 제주도에서 하수처리장 방문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오래 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담양군에서 하수처리장이 필요한데 어떤 군에서도 하겠다고하는 곳이 없어서 안되겠다 싶어 우리 마을로 유치를 했죠.

그런데 처음에는 하수만 이야기하더니 나중에는 인분까지 처리하겠다고 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어요. 내가 유치하자고한 일이니 제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겠다고 하면서 하수처리장의 여러 가지 민원소지가 있는 문제들을 처리하다 보니 이렇게 20여년이 흘렀어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마을 분들이 한 번도 하수처리장에서 발생되는 문제들로 인한 시위를 하지 않은 것이예요.” “마을을 돌아다녀 봤는데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던데요.” “당연하죠. 지금은 문제들을 해결했으니까요.”

“활동이 많으신 이장님 덕분에 손님치레 등 일이 엄청나게 많으셨겠어요. 어떻게 참으셨어요?” “19살에 시집와서 밥 지으면서 친정쪽 보면서 울곤 했어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젊어서 보따리 싸서 나간 적도 있어요. 나 지금 손님 데리고 가니 식사 준비하소라고 말하면 급하게 밥반찬을 만들어 내야 했어요. 남편이 담양읍 이장 단장 맡으면서 돼지 6마리 삶았을 때 기억이 생생해요.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야겠다고만 생각했죠."

"제가 철이 없어서 집사람 손님치레가 힘들다고 생각 못 했어요. 몇 년 전에 둘째 딸이 심각하게 이야기해서 집에 사람 불러들이는 일을 멈추게 되었죠.”라고 웃으셨다. 
“시댁 식구들은 어땠어요?” “한번은 남편이 신을 사왔는데 시누이가 난리를 쳤어요. 그 이후로는 무엇을 사든 3개 이상씩을 샀죠. 시아버님은 다른 며느리보다 유독 저에게 일을 많이 시켰어요. 제가 순해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서 그랬나봐요. 그 많던 손님 접대, 2만 평 농사, 자의로 시동생 조카 3명 돌보기까지 했어요. 그때는 우리 아이들까지 다 농사일을 도와야 했었지요. 지금은 조용히 지낼 수 있어 좋아요.”

두 분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신혼부부처럼 정답고 아름답게 보였다./ 양홍숙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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