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그 후 당 공천을 받아 시의원에 당선되었고 지금은 꽤 규모가 큰 식품회사를 경영하면서 환경단체 지역 회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작년 겨울방학 때 중3이 된 딸이 찾아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아내의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갓난아기 때 헤어져 열네 살이 된 딸을 다시 만난 문인주는 감격보다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여 심신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딸의 말로는 엄마가 아빠 있는 곳을 알려주면서 찾아가보라고 하여 왔다고 했다.

다행히 딸은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내가 딸에게 특별히 아버지를 나쁘게 말하지 않은 듯싶었다. 하기야 그들 부부는 이념적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을 뿐으로 서로를 비난할 처지는 아니었다. 딸은 이제야 아빠를 찾아오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딸의 그 말에 문인주는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동안 딸을 만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그가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딸을 잘 키워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루 동안 머물고 간 딸은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안부전화를 했다. 전화 내용은 별일 없느냐, 몸 건강 조심하라 는 등 사무적일 정도로 극히 간단했다. 딸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아빠의 휴대폰에 입력해주었지만 문인주 쪽에서 먼저 전화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전화를 하면서도 딸은 엄마를 바꿔주지 않았다. 엄마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물론 문인주 쪽에서도 아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문인주는 여름방학이 되기를 기다렸다. 방학이 거의 끝나가는 대도 딸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번 전화로 여름방학 때 꼭 오겠다고 하더니, 다른 일로 바쁜 모양이다.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여 언제 올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어쩌면 엄마하고 해외여행이라도 갔을지 모른다. 작년 겨울, 딸을 만나기 전에는 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간절하게 딸을 기다리게 되었다. 딸의 전화가 올 때쯤이면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기 마련이다. 아내와 헤어져 이곳으로 내려온 후 그는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애타게 딸을 기다린다. 나이가 든 탓일까. 그에게도 이제 기다림은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다음날 문인주는 아침 일찍 최 선생 집으로 갔다. 최 선생은 진주 걱정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눈이 떼꾼해졌다. 문인주는 그에게 양산보를 꿈에 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요즈막 최 선생은 오직 진주 걱정뿐이어서 다른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인주는 최 선생을 자전거에 태우고 면사무소가 있는 연천으로 갔다. 두 사람은 다시 마을의 골목 구석구석을 살폈다. 최 선생은 계속 목청껏 진주를 외쳐 불러댔다.

“아따 시끄러워 죽겠구만, 도대체 누구를 찾는 게요? ”
마을 안쪽 막다른 골목에서, 60대 안팎의 근육질 얼굴의 남자가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을 하고 청대문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신경질적으로 내 뱉었다.
“개를 찾고 있습니다.”
문인주가 어색한 웃음을 떠올리며 비교적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니, 사람이 아니고 개라고? ”
근육질 남자가 길바닥에 가래침을 칵 뱉으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우리 진주는 사람보다 더 소중한 개요.”
“사람보다 더 소중한 개라니? 개는 개제, 사람보다 소중하다니 원.”
“어디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간듸? 개만도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는구만. 당신은 사람 아니오?”

최 선생과 근육질 남자 사이에 오가는 말투가 서로 삐딱하게 엇나갔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괜히 싸움으로 번질 것만 같아 문인주가 최 선생 팔을 붙들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에도 최 선생은 더욱 목청을 높여 진주를 거듭 외쳐 불러댔다.

연천 마을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예상했던 대로 진주는 찾지 못했다. 문인주가 유기견센터에 가보자고 했으나 최 선생은 어제 저녁에 본 검정개가 진주가 틀림없다면서 계속 연천에서 더 찾아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문인주는 최 선생을 연천에 남겨둔 채 혼자 광주로 나가는 225번 군내버스를 탔다. 그는 유기견센터에 가서 진주와 비슷하게 생긴 개가 있으면 분양받아올 생각이었다.
 
문인주는 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나가서 시청에 문의하여 유기견센터를 알아보고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갔다. 시 외곽 산자락에 자리 잡은 유기견센터에는 백 여 마리의 개들이 가시 울타리 안에 엉켜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세상 한 귀퉁이가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진주는 그곳에 없었다.

“여기 들어온 지 열흘 넘은 개들은 이미 살처분 되었습니다.”
센터를 지키고 있던 오십대의 깡마른 사내가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문인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침 생후 3개월쯤 된 검정개 한 마리를 분양받아 서둘러 오는 길에 면사무소 앞에서 내렸으나 최 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최 선생은 집에도 없었다. 문인주는 최 선생 집에 검정 강아지를 묶어놓고 사료와 물부터 주었다. 갈색 빛이 감도는 털 색깔이며 쫑긋한 귀와 걀쭉한 얼굴, 분홍빛 눈자위, 긴 꼬리가 사라진 진주와 닮은 데가 많은 개였다. 문인주는 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사료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검둥이는 허겁지겁 사료를 먹다말고 이따금 고개를 들어 문인주를 찬찬히 쳐다보곤 했다. 그를 쳐다보는 검둥이의 눈이 깊고 슬퍼보였다. 개의 눈에서 슬픔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마도 검둥이는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오늘부터 네 이름은 진주다. 이제 다시는 버림받는 일이 없을 게다.”
문인주는 진주의 눈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진주는 한동안 그와 눈을 맞췄다. 눈으로 그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생 처음으로 개와 눈을 맞추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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