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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담양의 인물(17)노송당 송희경

담양의 역사인물(17)조선 최초의 일본행록 쓴 노송당 송희경(1376~1446)

노송당 송희경의 묘

송희경(宋希璟)의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정부(正夫), 호는 노송당(老松堂)이다 . 신평 신씨의 시조인 송구진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송현덕 이다. 조선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담양 봉산면 출신 면앙정 송순(1493~1582)이 송희경의 고손자 이다.
신평이 본관인 송씨들이 담양에 내려 와 살게 된 데는 바로 노송당 송희경에서 비롯된다. 원래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 일원에 살고 있었던 노송당은 말년에 담양으로 내려 와 정착하게 되면서 담양의 신편송씨 일가를 이루었다.

송희경은 고려말 우왕 때 충청도 연산(현.논산)에서 태어났다. 1402년(태종2년) 과거 급제 후 한림원 벼슬을 거쳐 사간원 정언이 되었으나 1404년(태종4년) 사간원과 사헌부의 마찰에 휘말려 담양에 유배됐다. 이후 관직이 복직되어 1409년에 사간원 헌납을 거쳐 예문관 수찬에 제수되었다. 1411년에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20년(세종2년)에는 첨지승문원사에 승진, 임명되고 회례사(回禮使)에 뽑혀 아시카가 막부가 있는 일본 교토를 다녀왔다.
이때 일본에 다녀온 일을 기록한 ‘노송당 일본행록(老松堂 日本行錄)’으로 펴냈다.
이 책의 내용은 주로 한시로 기록되어 있지만, 창작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산문으로 쓴 서문에 그가 접한 일본의 인물들과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송희경 일행은 1420년 윤정월 15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4월 21일 교토에 도착했고, 10월 25일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무려 9개월이 걸린 기나긴 여행이었다. 그가 일본까지 가기 위해 걸었던 노정을 보면 서울-이천-안평-가흥-충주-문경-유곡-덕통-선산-성주-청도-밀양-금곡-김해-동래-온정을 거쳤으며 가는 곳곳에서 느낀 감회들은 시로 표현되어 행록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 도착한 후 일본 관리들이 “그대가 가지고 온 서신은 연호가 어떻게 쓰여 있는가” 묻자 송희경은 “명(明)의 영락 연호를 썼다”고 하니 “그러면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며 “용집(일본연호)를 써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러나 공은 크게 꾸짖으며 “내가 죽음을 당하더라도 우리 임금의 글월을 고칠 수 없고 어찌 왕명을 소홀히 할 수 있겠냐” 하여 끝내 옥에 갇혔으나 며칠 동안 구금을 당하였어도 자세를 바르게 하며 조선과 일본의 교린관계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니 일본의 관리도 그 절의에 반하여 도리어 왜왕을 설득하고 국서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일본을 다녀온 이후 송희경은 1424년(세종 6년)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요청하여 함양목사로 나갔고, 이듬해 은퇴해 담양에 은거했다. 1446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봉산면 제월리에 모셨으며 구산사에 배향했으나 지금은 유허비만 남아있다. 현재 송희경의 묘는 봉산면 기곡리 면앙정 송순의 묘와 같은 곳에 있다./ 담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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