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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19화)양진영 작가

 

 

<19화>
■ 안골포의 눈물비

안골포는 웅천(진해)과 마주보는 포구로 사방이 두루 보여 천연의 요새다. 웅천의 남산에는 임란의 선봉장으로 각종 협상을 이끌었던 코니시 유키나카가 거성을 쌓은 곳으로 왜란 때 납치된 피로인의 절반이 여기에 머물다 일본으로 끌려갔다. 

야스하루는 임란이 시작되자마자 안골포의 높은 언덕에 성을 쌓고 7년 내내 여기를 거점으로 해 북진과 남하를 거듭했었다. 안골포와 웅천이 마주 보이는 좁은 만에는 늘 수백 척의 전함과 어선이 떠 있었고 매일 수백, 수천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실려 갔다. 창평에서 납치된 몽린 일가가 야스하루의 아타케부네(대장선)에 실려 안골포에 도착한 것이 여드레 전이었다. 그곳에는 관선(중간크기 배)과 소조(작은 배)가 오백여 척이나 모여 있었다. 왜병들과 그들이 끌고 온 조선인들로 포구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일본에 데려갈 피로인들이 탄 배는 도주를 막으려고 해안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바다 위에 띄어 놓았다. 

은개와 그녀의 몸종 노릇을 하고 있는 어머니, 혜란이는 야스하루가 머무는 산성에서 지냈지만 그곳이 비좁아서 몽린과 몽인은 육지의 피로인이 머무는 초막에 배치됐다. 그나마 비가 새는 초막에서 지내는 사람은 나은 편이었다. 대다수 피로인은 카와라라는 배 밑바닥에서 지내야 했다. 그곳은 배가 바다에 떠다닐 때 풍랑을 견디도록 땔감이나 식량을 쌓아두는 창고였다. 어차피 그들에게 피로인은 짐짝이나 다름없었다. 소나 말 대신 들판에 내보내 막일을 시키거나 허드렛 일 하는 하녀로 데려가는 것이니까. 

“저기 왜놈들 배가 둥둥 떠 있는 웅천 포구 뒤편 언덕에 가면…… 쉬잇! 까마귀 떼 같은 것들이 죽 늘어서 있는 디…… 글쎄 그것이 죄다 시신들이오. 시체더미란 말이오. 세상에나.”
이틀 전에 깽이 바다로 부역을 나갔다가 돌아온 춘동이가 혹여 염탐꾼이 들을까 봐 퉁방울눈을 두리두리 굴렸다. 왜병들이 먹다 버린 누렁이 대구 껍질을 입 속에 넣고 질겅댔다. 함께 다녀온, 혀꼬부랑이인 질을동이 마른 침을 삼키며 떠듬거렸다.
“그, 그, 그놈들이 안 데려갈 노인과 병자들을…… 죄, 죄 죽여서 겹겹이 쌓아두었다오. 산짐승들이…… 밤, 밤, 밤마다 뜯어 먹어서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참혹하다고 합디다.”
“흐미, 말도 마소. 내 엇그제 끌려온 창녕 교생에게 들었는데 경상좌도 고을마다 송장이 고샅에 가득하다 하오. 배가 고파 사람 고기까지 먹는 자가 있다 하니 시방이 바로 아귀도 세상이오.” 춘동이 등판에 기대어 졸고 있던 강수가 어깨너머로 속닥거렸다. 

억새를 엮어 지붕을 씌운 막사가 비좁다 보니 새우잠을 자야 했다. 몽린은 새벽까지 뒤척이는데 옆에서는 어제부터 실성한 듯 보이는 덕남이 아버지가 하루 종일 아들 이름을 불렀다. 왜적들이 아홉 살밖에 안된 애를 설사를 한다는 이유로 바다에 던졌다. 목마르다고 칭얼대는 덕남이에게 비린내 나는 구정물을 준 것이 탈이었다. 금방 웩웩 토하고 풍차바지에 흰 물찌똥을 질퍽하게 지렸다. 오줌똥이 점점 묽어졌고 멀건 액을 싸면 이질이 돌아 죄다 죽는다고 아낙들이 수군거렸다. 그 냄새에 비위가 약한 몇 사람이 구역질을 해대니까 감시병 낯빛이 붉그락 푸르락했다. 그렇지 않아도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한 피로인들 초막에 돌림병이 퍼지면 큰일이었다. 한 병사가 다짜고짜 덕남이를 끌고 갯가 바위로 가더니 아이를 떠밀었다. 

“설마…… 저 애를…… 그럴 리가…….”
멍하게 보고 있던 어미는 눈알이 허옇게 뒤집히며 까무러졌다. 겨우 네 살이었던 덕남이 누이동생은 파도에 휩쓸려갔다고 했다. 식량이 부족한 왜적들이 젖먹이들 수십 명을 모래 사장에 부러 모아 두었다.
“어린 것들이 썰물에 쓸려 가면서 엄니, 엄니하고 우는 소리가 오후 내내 끊이지 않았다오.” 누군가 같은 이야기를 되뇌이면 어린 몽인이는 경련하듯 떨었다. 덕남이가 빠졌을 때도 성난 너울에 떠다니며 한참이나 아버지를 불렀다. 
“이제 남은 길을 하나뿐이여. 코니시 부대에서 오는, 그 기리시탄(천주교) 신부를 따라가서 예수인가 뭔가 그놈들의 신령을 믿는 수밖에 없단 말이여.”
예전부터 인근의 코니시 부대의 군막에 들락거렸던 강수가 바람을 잡았다. 그곳에는 남만에서 믿는다는, 천주교 교리를 배워서 세례를 받으려는 조선인들이 모여서 교리를 배우고 있었다.
“니 말이 맞다. 진즉 기리시탄이 된 중놈 봐라. 어제 보니까 신수가 훤하더라. 유생인 양 뒷짐 지고 다니는 꼬락서니 하고는. 나원참.”
“아예 이름도 바꿔서 남만식으로 미구엘이라고 부른다데.”
“사노비 주제에 왜놈 군관들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린다네.”
“큰 출세구먼, 출세여. 아암, 조선에서라면 어림도 없었지.”

말구멍이 열린 피로인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누구나 말로는 잔미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미구엘이 부러웠다. 기리시탄이 되면 비 안 새는 거처에서 자고 하루 세끼를 꼬박 먹었다. 왜인들이 눈을 부라리지도 않았고 힘든 노역도 면했다.
“그렇기는 하나 신주까지 싹 불태워야 한다는디…… 혹여 조상님한테 천벌이라도 받지 않을지.”
“아따, 그놈의 십자가인가 뭔가 나무 쪼가리 하나 목에 건다고 무슨 일 있겠나. 부모님 제사는 그자들 몰래 슬쩍슬쩍 지내면 될 것 아니여.”  
“맞네. 죽고 나면 제례가 무슨 소용인가. 우선 목숨줄을 이어야지.”
막사 입구에 드러누웠던 남정네들이 구시렁댔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너나없이 마음은 코니시 부대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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