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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60호 '미암일기'가 있는 마을동네한바퀴(26) 대덕면 장산리
마을회관 앞 이장님과 마을 주민

지난 12월과 1월 폭설과 영하 17도까지 견뎌냈었는데 최저기온이 영하 7도인 오늘 바람끝이 유난히 매섭게 느껴진다. 그사이 따스한 날씨가 있어 왔기 때문일까? 다른 마을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가 지금 고추모종 일이 한창인 관계로, 급하게 이 마을 방문으로 변경했는데 바로 수락해주신 조달주 이장님께 감사드린다.

추운 날에도 마을회관 양지바른 쪽에 어르신 두 분이 계셨다.
대덕면 장산리는 세대수 30호 중 절반이 도시에서 귀촌한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반의 이주민이 함께 살고 있다면 기자가 지난 1년간 방문했던 마을 중 이주민 비율이 가장 높다.
마을 입구에는 ‘미암(眉巖)박물관’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큰 연못 한가운데 모현관(慕賢館:등록문화제769호, 조선시대의 문인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고문서를 보관하던 곳으로 1957년 후손들이 지음) 건물이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마을 중앙을 흐르는 넓은 계곡 같은 냇가에는 옛 여인들이 손을 호호 불며 많이 들락거렸을 빨래터 흔적이 있는 넓은 바위도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보니 이주하고 싶은 마을임이 느껴졌다. 숲속 여기저기에 새로 지은 집들이 보였다. 

“이주민들과 소통은 어떤가요? 이장님.” 
“우리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고 이주민들은 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라 서로 문화가 다르죠. 그래도 울력에는 참여합니다.” 
“이주민들 울력 참여 유도에 성공하셨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하셨어요.” 
8년 이장님 내공이 느껴졌다. 

미암사당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고풍스런 한옥건물의 미암 박물관에는 1577년 미암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선조 임금이 직접 입혀주신 방한복과 신, 미암 선생 시문집 목판 396판(보물260호), 2품 이상이 타는 초헌(수레), 교지 등 문화재가 많이 전시되어 꼭 한번 와 봐야 하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전기톱 소리가 났는데 바로 미암 유희춘(1513~1577) 선생 15대손(유근영 님)이 인부와 함께 나무 정리하고 계셨다. 이분은 직장(전, 담양군 공무원) 생활하는 와중에도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어머니(현재 91세)께 인사드리는 효자 중 효자라고 한다. 지금은 퇴임하셔서 더 많은 시간을 어머님과 함께하시리라. 인상 역시 좋으시고 겸손하셨다. 
종가집 뒤편에 미암사당(전라남도 민속문화재 36호)이 있는데, 미암사의 벽화는 미술사적으로 그 가치가 높다. 사찰벽화는 많으나 유교적 건축물인 사당에 벽화가 그려져 있기는 매우 드물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벽화중 백학도는 미암의 고고한 절의를, 등룡도는 현관으로 등용되는 화려한 관도를, 봉황도는 일가의 화려한 출세도를 상징한다. 
미암사당은 현종 10년부터 영구불천(永久不遷: 영원히 제사 지내다)의 묘로도 지정되었다. 

미암박물관
모현관과 미술관 카페

마을 맨 위쪽으로 올라가니 둑이 상당히 높은 저수지가 나왔다. 
거기에서 예쁜 마을을 감상한 후 내려오는 길에 박물관 옆 하얀 집 ‘미술관 카페’에서 마당 정리하는 주민을 만났다. 
“차 한 잔 마실 수 있나요?” 
“아니요. 지금은 정리 중입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사시나요?” 
“지금은 광주에서 살고 자녀들이 주말에 이용하고 있어요. 이곳에 요양원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마을에서 안 된다고 해서 민박을 할까 합니다.” 
“좋겠네요. 정원에 앉아서 ‘모현관’이 있는 연못을 바라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고 휴식이 되는 느낌이예요.” 
집 안쪽에는 탁구장 노래방 농구 골대 등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이 놀러와도 좋을듯 싶었다.

한편 ‘미암일기’는 유희춘 선생께서 19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조정에 불려가서 이조참판으로 재직한 후 부인(조선시대 4대 여류시인 송덕봉) 고향인 담양에 돌아와 돌아가시기 2일 전까지 10년간 썼던 기록이다. 이 일기는 일상생활·국정에 대한 견해 등이 기록되어있는 개인의 일기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선조실록을 복원하기 위해 미암일기가 참고자료로도 쓰였다. 현재 ‘미암일기’는 11권이 보존되어있다.
특히 미암 선생의 부인 덕봉 송동개(1521~1578)는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 문인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지만 안타깝게도 문집이 전해지지 않는다. 덕봉 선생은 유교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당시에 여성으로서 드물게 호를 사용했다. 장산리는 이렇게 볼거리·이야기 거리가 많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가서 산책도 하고 공부도 할 만한 곳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암 선생과 부인이 서로 화창했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양홍숙 전문기자

<남편이 아내에게>
동산에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음악 소리 쟁쟁 울려도 관심 없다네.
좋은 술 고운 자태엔 흥미가 없으니, 오직 책 속에서나 참맛을 즐기려오.

<아내가 남편에게>
봄바람 좋은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 달빛 아래서 타는 거문고도 한적하다네.
술 한잔이면 시름 잊어 호탕해지는데, 당신은 어이해 책 속에만 빠져있나요?

돌담과 대나무 숲 마을길
선산유씨 종가
연계정
500년 된 당산나무
이주민들의 전원주택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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