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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알기3/담양의 인물(23)사상당 이만유

담양의 역사인물(23)/사상당 이만유(1684~1750)

이만유 영정

 

이만유 신도비(월산면 화방리 봉명)

이만유(1684~1750)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영조 때 경상 좌수사를 지냈고, 1728년(영조4)에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반란군을 평정한 인물이다. 담양과의 인연은 관직을 물러난 후 담양으로 낙향해 말년을 보내고 사망, 담양 월산면에 묻혔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그의 영정이 담양 가사문학관에 보관중이다.

이만유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숙함(淑咸), 호는 사상당(四尙堂)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15대손이다. 이만유가 태어날 때 큰 비가 내리고 번갯불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모습이 괴위(魁偉)하고 눈빛이 벌과 같아 사람을 쏘아보는 광채가 있었다. 두 살에 옷을 입고 달리고 뛸 수 있었으며, 세 살에 육갑(六甲)을 외우고 수를 헤아렸으며, 네 살에 학당에 들어가 백일에 사략(史略) 초권을 마치고, 5세에 통감(通鑑) 9권과 이백당시(李白唐詩) 1백여 수를 외우니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며 신인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1719년(숙종45)에 무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의주 부윤과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1728년(영조4)에 도순무사에 올랐고,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자 도순무사 오명항의 관군과 함께 반란군을 진압했다. 이때의 전공으로 진무 이등공신이 되었으며 한원군(韓原君)에 봉해졌다. 1748년(영조24) 경상 좌수사를 지냈다.

이만유는 말년에 담양(현.담양읍 천변리)으로 낙향해 1750년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월산면 화방리에 있다. 담양 월산면 화방리 319번지 봉명마을에는 이만유 신도비(李萬?神道碑)가 있으며 비문은 1864년 우의정을 지낸 이경재가 지었으나 이때 바로 세우지 못하고, 1876년 담양 부사로 부임한 김성진이 이만유 후손들의 도움을 받아 세웠다.

한편, 이만유의 공을 기리기 위해 1899년에 건립한 사당 한원사(韓原祠)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도암에 있으며 유품인 장검·전통(箭筒)·활·교지·영정 등이 보관되어 있고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됐다. 이와함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8호인 이만유의 영정은 후손들이 담양군에 위탁, 현재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재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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