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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뉴스 창간4주년 기획연재Ⅲ(소설)/소쇄원의 피로인(제24화)양진영 작가

(제24화)
■ 안골포의 눈물비

“망개 만신이 자복했다네.”
소문이 피로인 수용소에 삽시간에 퍼졌다. 남정네들이 갯가 돌더미에 나란히 앉아 똥을 싸면서 수런거렸다. 바로 앞 갯벌에서 먹이를 찾다 지친 백두루미들이 간간이 뚜루룩뚜루룩 울었다.
“피 묻은 신칼이 나왔으니까 버틸 도리가 없었을 것이야.”
“그나저나 왜 덕남이 애비가 아니고 무녀가 그 왜놈을 죽였을까?”
“근디 쪼매 이상한 것이…… 다 늙은 할멈이 우찌 젊은 놈 배때지에 올라타 칼을 꽂았을꼬. 신들린 무당이 쎄긴 쎄네.”

잡담하던 강수는 누렁개에게 엉덩이를 쓱 내밀었다. 피로인 수용소에 양반이 대변을 닦던 대나무 주걱이 있을 턱이 없었다. 볼일을 마친 뒤에 항문을 들이대면 개가 똥 찌꺼기를 핥아먹었다. 왜적들은 소, 돼지보다는 개나 고양이 고기를 즐겼다. 약용으로 쓴다고 포로를 시켜 개를 길렀다. 길쭉한 혓바닥이 날름날름 불알을 스칠 때마다 오싹했다. 이것들이 내 거시기는 안 깨물까? 강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래를 쳐다보다 버럭 소리쳤다.  
“아따, 이놈이 왜 이리 똥구멍을 오래 빤다냐! 사람 죽겠다.”
“으하하…….”

십여 명의 웃음이 갯둑을 타고 흘렀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깔깔댈 수 있나 보다. 오늘 하루 살아있는 것만도 고마우니까. 망개 할멈도 시방 미소 지을까…… 덕남이 아버지 대신 죽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지.”
근래에 말수가 뜸해진 몽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뒤에서 수캐가 어서 궁둥이를 들이대라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사나흘 전에 덕남이를 갯바위에서 밀었던 왜적이 살해됐다. 명치에 굿을 할 때 쓰는 신칼이 꽂혀 있었다. 피로인 막사를 감시하다가 새벽녘에 살해됐다고 왜병들은 수군댔다. 몽인이는 모두가 잠든 인시쯤 소피보러 나왔다가 그 시신을 보는데 신칼이 없었다. 망자는 졸려서 잠든 듯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그때 맞은 편 막사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비단뱀이 풀숲을 스치듯 사르륵사르륵 발뒤꿈치를 끌었다. 어룽거리는 형체를 보고 상대방도 까무룩 놀라서 멈칫했다. 손에 든, 월도를 닮은 신칼을 보고서야, 아! 망개 할머니구나, 눈치챘다. 그 칼은 옆면이 초승달처럼 넓적해서 무당들이 굿할 때 쓰는 기물이었다.

“쉿! 어서 들어가. 여기서 어슬렁거리면 큰일 나.”
망개는 뻣뻣이 굳은 아이의 등판을 떠밀었다. 그녀는 뒤통수에 대고 엄포를 놓았다. 
“애야, 너는 아무것도 못 본 것이야. 혹여 입을 열면 각다귀 같은 왜놈들 칼에 도륙이 날 것이야.”
엉겁결에 막사로 돌아온 몽인이는 무서워서 웅크린 채 날을 샜다. 그리고 다음날 왜병을 죽인 죄로 망개가 끌려갔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덕남이를 떠민 놈이 무녀도 없애려고 호시탐탐 노렸다느니 뒷간에 다녀가는 망개를 욕보이려 했다느니 온갖 뜬소문이 떠돌았다. 할멈이 이미 죽은 왜적 가슴팍에 칼질을 한 내막은 몽인이만 알았다. 그때 그녀가 종알대던 말을 몽린에게 전해주었다. 
“이놈을 이대로 두면 범인이 나올 때까지 죄다 죽일 것이야.”

그곳은 감옥이라기 보다는 소 외양간 같았다. 간짓대 예닐곱 개를 엮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거적데기 한 장을 달랑 씌웠다. 그나마 구멍이 숭숭 뚫려서 비가 줄줄이 샐 듯싶었다. 겨울이었더라면 홑겹 무명저고리와 치마만 걸친 망개는 오그라져 죽었을 것이다. 미구엘은 망개 귀에 꽂힌 화살촉을 뺐다. 귓속에서 울컥 핏덩이가 쏟아졌다. 왜국에서는 죄수가 소리를 못 듣도록 그런 것을 찔러 넣었다. 
 “먹고 죽어야 화색이라도 좋다 했소. 좀 드시오.”
 은개는 늘어놓은 음식을 맛보라고 재촉했다. 조밥 덩이, 약과, 오색 경단, 탁주…… 난리통에 어디서 구했는지 제법 맛깔스런 것들이 눈에 띄었다. 다른 피로인들도 아침은 죽 한 그릇, 저녁은 주먹밥 하나로 버티었다. 좁쌀은 모래가 반이고 반찬거리라는 꼭지미역은 썩은 냄새가 풍겼다. 하물며 며칠 내에 죽어야 할 죄수야 이를 말인가. 누런 흙에 보릿겨 한 줌 섞은 황토떡으로 연명하고 있을 터였다. 은개는 할멈 앞으로 조밥을 슬그머니 밀며 권했다.

“먹어야 힘이 나고 뻗대는 것이오. 어서 드시오.”
“아씨 말도 맞소. 내일 죽더라도 오늘 배부르면 아니 즐겁겠소.”
망개는 밥 덩이를 서걱서걱 씹었다. 사형수치고는 얼굴빛이 밝고 행동거지가 안존했다. 곧 처형될 것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할멈은 죽는 것이 두렵지 않소?”
몽린은 망개가 좋아한다는 수수 막걸리를 사발에 따르며 물었다. 무당은 천인이어서 비록 수용소이지만 양반집 도련님에게 존칭을 썼다.
“죽어보아야 저승을 안다고 하지 않았소. 우리 무녀들은 현세를 더럽혀진 땅, 부정한 곳으로 여기오. 그래서 항용 내세를 그리워하고 언제라도 그곳으로 가려 한다오. 우리는 신의 영매이고 노상 접신하는 자들이오. 그러니 저승이 확연히 있다고 믿고 때로는 그곳을 보았다는 무당도 있소. 그러니 어찌 죽는 것을 서러워하겠소.”
“그래도 한번 떠나면 못 오는 길인데.”
“이 마을을 지나 가다 보면 저 동네에 이르듯 이승을 떠나면 다음 세상이 있는 것이오. 육신이 썩어도 내 혼은 신령이 돼 불멸할 것인데 죽는 것이 무어 그리 대수겠소. 더군다나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내 목을 바쳐 그 죄를 씻어야 할 것이오. 그래야 제삿밥이라도 제때 얻어먹는 귀신이 될 것이 아니겠소. 호호호…….”

망개는 봄철에 화전놀이 나온 부녀자인 양 마냥 웃었다. 사후 세계를 믿으면 죽음도 저렇게 편한가? 몽린은 좀 화난 얼굴로 바닥에서 솟구치는 새 움을 쥐어뜯었다. 
“만신이 죽이지 않은 것은 왜인도 이미 알고 있소.”
“그게 무슨 말이오? 누가 그런 소리를…… 도련님 동생이오?”
“…….”
“그 애가 내 그렇게 타일렀거늘…… 기어코 발설했구나. 아이고, 이걸 어쩌나.”
망개는 은개의 손을 잡고 매달렸다. 
“아씨, 잘못하면 우리 이웃이 떼거리로 죽소. 덕남이 애비도 애미도 다 죽게 될 것이오. 아씨밖에 없소, 입막음할 사람이.”
“이미 그렇게 했소이다. 야스하루 성주님께 간청해서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소.”
“한데 분명코 내 신칼로 그놈을 찔렀는데 왜인들이 어이해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오?”

몽린은 여전히 잡초를 뽑으며 답했다. 새우잠이라도 편히 자라는 애틋한 마음씨였다.
“왜승이 의원을 겸하는데 할멈이 찌르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고 말했소. 생전에 칼날에 베이면 상처 부위에 선홍색 피가 어려 있고 살이 넓게 부어 오른다고 합디다. 속살 무늬도 어지러이 뒤섞여 있어야 하고. 한데 그 왜병은 베인 살이 흰 빛깔이고 피가 흘러 맺히지 않았다고 했소. 칼날이 파고든 곳이 오므라들지도 않았고 속살이 가지런하게 끊어졌답디다. 다 죽은 뒤에 누군가 찌른 것이라던데.”
“…….”
“왜승 말로는 굉장히 검센 장정이 젖은 천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아 질식사시켰다고 합디다. 그러면 시신 눈동자가 튀어나오고, 입 속에 핏물이 고이고, 물똥을 질퍽하게 지린다고 하더이다. 죽은 왜인이 똑 그랬소. 그가 병으로 급사한 것으로 위장하려 했던 듯하오.”
“…….”
“그것은 사냥꾼이 살아있는 짐승의 생피를 마시려고 고라니나 새끼 곰을 목 조를 때 쓰는 수법이라는데…… 누구 짓인지 그들도 대충 알고 있소. 은개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은 물론이오, 가족과 이웃까지 모조리 똑 같은 방법으로 살해됐을 것이오.”
망개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니 기뻐서 저러겠지. 은개는 할멈을 끌어안고 어깨를 토닥거렸다.

“이제 가면 언제 볼꼬. 무엇하러 그리 모진 죄를 뒤집어 썼소.”
망개는 손녀 품에 안긴 노파인 양 색색 숨 쉬었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스스로에게 이르듯 웅얼댔다…… 무녀들은 그저 단골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일이 기쁘다오. 신령님께 빌어 아픈 자를 치료하고 원귀를 위로해서 모두가 행복하면 그만이라오. 우리에게 신불은 불을 뿜는 용도 아니고 악한 자를 벌주는 형리도 아니라오.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괴로운 심사를 달래주는 이웃 사촌 같은 존재라오. 옥황천존, 일월성신 같이 높으신 신령뿐만 아니고 걸립, 말명 같은 하찮은 잡귀까지 도움을 주는 신이라오. 모든 것이 신이고, 모든 신이 자애롭고, 모든 신이 똑같다오. 이 몸이 모시는 일월성신은 조선 귀신이고 부처님은 천축(인도) 귀신이고 천주님은 남만 귀신일 따름이오. 너나없이 자비심 넘치는 신령님이오…… 그래서 무당은 신불의 이름을 빌어 큰 신전을 짓지 않고 복채를 내라고 채근하지 않는다오. 큰 신당을 지어 허세를 부리는 무당을 보았소? 신도를 더 차지하려고 다른 교리를 욕하는 무녀를 들었소? 이 할멈은 그런 것은 올가미라고 여기오. 그 올가미에 걸리면 잘 지내던 이웃끼리도 적이 된다오. 나와 너를 구분하고 우리 교리와 다른 교리를 차별하게 된다오. 그런 신령님은 약이 아니고 독이 될 것이오. 망개는 사그라진 초의 심지를 손가락으로 잘랐다.

“이 노파는 내 삭신이 이 초와 같은 듯싶소. 이것은 제 몸을 태워야만 주위를 밝힐 수 있다오. 자신을 아낀다면 이웃에 빛을 줄 수 없소. 하여 기꺼이 녹아 없어진다오. 저는 신의 영매들은 이 초를 따라야 한다고 보오. 무당이나 승려나 남만 박수나 세상에 도움이 되라고 신불이 내려 보낸 심부름꾼이오. 사람들 발아래 나부죽 엎드려 디딤돌이 돼야 하오. 하여 이 노친네는 그동안 내게 엽전 몇 꾸러미나 두어 말의 옥수수가루를 나누어 준 이웃에게 은혜를 갚고 싶소. 그래서 죽을 날이 가까워져도 이리 안온한 것이라오.”
몽린은 간짓대 사이에 거미줄을 쳐 놓은 독거미를 낚아챘다. 그것은 다른 곤충의 몸에 독을 넣어 내장을 녹인다. 거미에게 체액을 빨린 고추잠자리의 껍질이 해쓱했다. 힘 없는 날벌레를 구원해 주고 싶어서 몽린은 거미를 발로 밟았다. 무녀의 구성진 창이 화해를 노래했다.

한없이 맑은 마음을 가지고 맘속 부정을 풀어내세
정한 맘씨로 원수가 있거든 내리 용서하고 잘 도와주세
길 모르는 사람 길 가르쳐 주고 불쌍한 사람 도와 주고
외로운 사람 벗이 되고 배고픈 사람 배불려 주세…….

담양뉴스  webmaster@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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